[Under My Skin] 의 투어 스페셜 에디션
1. 2004년, 데뷔 앨범을 1,400만장 판매한 거물 소녀의 컴백
Q) 이 앨범을 듣게 될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기 원했죠?
에이브릴: 무언가를 말할려고 노력하진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저를 위해 곡을 만들었어요
Q) 새로운 노래를 만들 때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에이브릴: 제 생활, 제 경험. 전 제가 만난 사람들의 얘기, 그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곡을 써요.
Q) 당신을 마케팅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나요?
에이브릴: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진 않아요. 전 그냥 스스로에게 충실해왔고 사람들이 절 좋아한다면 바로 그게 이유겠죠
Q) 린킨 파크와 작업한 돈 길모어랑 작업했지요. 그리고는 에반에벤스의 벤 무디랑 작업을 했습니다. 위대한 록커가 되고 싶나요?
에이브릴: 전 그냥 훌륭한 곡을 원했고, 록을 좋아합니다. 그것 뿐이죠.
Q) 지금 느낌을 말해주세요. 특별한 소녀, 록계의 새로운 스타… 뭐 이런 느낌이 있나요?
에이브릴: 좋아요. 그냥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발매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어떤 인터뷰에서건 에이브릴의 답변은 철학적이거나 장황한 법이 없다. 19세의 에이브릴은 아직 어리다. 같은 또래에 데뷔했던 “풍선껌 팝 음악”을 하는 팝 가수들과 비교했을 때 에이브릴이 다른 점이라면 어느 자리에서건 “I like to rock”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엘에이 리드(LA Reid)에 의해 발굴되었을 때, 에이브릴은 데뷔 앨범을 위해 좀 더 대중적인 곡들을 녹음해야 했지만 그 무렵에도 본인의 취향은 “Unwanted”나 “Losing Grip”같은 좀 더 록적인 비트가 강한 곡에 가 있었다고 말한다. 라는 데뷔 앨범 단 한 장으로 한국에서만 25만장 판매(한국에서 2003년에 가장 많이 팔린 팝 앨범이며 2002년에 12만장, 2003년에 13만장이 판매되었다), 일본 150만장 판매, 전세계 1,400만장 판매의 경이적인 인기를 얻은 에이브릴 라빈은 그래서 2번째 앨범을 녹음하는 동안에는 1집에 비해 좀 더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을 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것이다. 그 결과 앨범의 사운드는 좀 더 강해졌고, 개인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개인적인 앨범이며 좀 더 성숙한 앨범”이라고 에이브릴은 앨범에 대해 짧은 코멘트를 남긴다. 19세는 아직 소녀라고 불리는 게 더욱 자연스러운 나이지만, 에이브릴은 확실히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있는 성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2. 2003년 국내 판매 1위- “현상”이라고 불러야 할 에이브릴의 인기
에이브릴의 등장과 순식간에 생겨난 팬들은 일종의 “현상”이었다. 2002년, 기타를 메고 나타난 17세 소녀는 앨범 1장으로 전세계를 평정했다. 사실 10대 가수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획사에서 섭외한 춤 선생이 가르쳐 준 춤과 기성 작곡가들이 만들어 준 댄스곡이나 R&B/ 힙합곡으로 데뷔하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 있는 최근의 대중음악계에서 이쁜 척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완벽한 하드 록은 아닐지언정 강렬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구사하는 가수가 있다는 건 분명 신선한 발견이었다. 에이브릴이 뮤직 비디오나 무대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연출된 것이 아니라, 10대 후반 소녀가 갖고 있는 반항적인 감성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었다. 록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10대 소녀들은 자신 또래의 여자가 거침 없이 무대에서 소리를 지르고,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걸 보고 대리만족을 얻었다. 게다가 에이브릴이 데뷔 초기에 불렀던 노래들은 그 누구든 따라 부를 수 있을만큼 멜로디가 쉬웠다. 그 덕분에 외국에서 수백만 수천만장을 판매하는 팝스타들이 단 몇 천장을 팔지 못해 맥을 못 추는 불모지 한국에서도 에이브릴은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팬 집단을 거느릴 수 있었다. 2002~2003년에 기록한 데뷔 앨범 판매량 25만장은 국내에서 팝 앨범으로는 기록적인 숫자다. 기계처럼 춤 추고 항상 밝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오빠”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에이브릴에게 있었고, 더구나 그간 에이브릴의 대체재를 국내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에이브릴이 데뷔한 지 약 2년이 지났지만, 그간 국내외적으로 아이콘이라고 불릴만큼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낸 스타가 태어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점령하고 있는 수만명의 팬클럽 회원들은(다음에 있는 에이브릴 카페 회원수는 약 5만 5천명이다.) 에이브릴의 앨범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에이브릴은 한국을 아주 잠시간 방문한 전력도 갖고 있다. 아시아 투어 도중 한국에 잠시 들려 선보인 라이브 공연(2003년 1월 27일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은 매진은 물론, 심각한 안전문제가 대두될 정도로 자리를 꽉 채운 팬들이 마음껏 열광한 공연이었다. 에이브릴에 열광했던 건 비단 비슷한 또래 집단만이 아니었다. 림프 비즈킷의 프레디 더스트는 “I Love Avril”이란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서기도 했고,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원로들은 2003년의 그래미 시상식에 에이브릴을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려 놓으며 막 출발한 싱어송 라이터를 격려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3. 2002년, 에이브릴의 데뷔
10대 가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던 시점에서 17세라는 나이는 뉴스거리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에이브릴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첫싱글 ‘Complicated’가 2002년 여름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생겨난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미국에서 조심스럽게 발매된 데뷔 앨범은 6개월 이상 앨범 차트 10위권에 머물며 2002년에만 미국 내에서 500만장을 판매했다. 봄에 앨범이 발매되어 이미 많은 판매량을 올렸던 에미넴의 판매량을 바짝 뒤쫓는 수치였다. 싱글로 커트된 4곡은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일본에서도 발매 3개월만에 80만장을 기록하고, 1년간 15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지만 이런 에이브릴이 한국에서 금방 스타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에이브릴이 2002년 9월에 국내에 발매가 되자, 순식간에 인터넷에는 에이브릴을 외치는 팬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에이브릴은 단 3개월만에 국내에서 10만장을 판매했고, 2003년에 걸쳐 총 25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 MTV와 롤링 스톤즈 등 주요 매체들은 이 새로운 아이콘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차세대의 거물이란 칭호는 이 무렵 생겨나기 시작했다. MTV 뮤직 비디오 수상식, 즉 VMA(Video Music Awards)는 데뷔한 지 불과 몇 개월된 에이브릴에게 최우수 신인상을 선사했다. 이어 에이브릴은 MTV의 메탈리카 트리뷰트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자신의 라이브 공연을 담은 DVD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4. 1984년, 에이브릴의 탄생
에이브릴 라빈은 1984년 9월 27일생.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이 시사하듯 그녀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12살 때 에이브릴은 아버지의 기타를 빌려 레니 크라비츠의 ‘Fly Away’를 반복 연습하면서 하나의 음악을 마스터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10대 초반에 이미 작곡과 기타 연주를 할 수 있었던 에이브릴은 캐나다 레이블 [Nettwerk]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떠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마침내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로 잘 알려진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다. 에이브릴 라빈은 뉴욕을 경유하여 LA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를 만나 멜로디 좋고 듣기 편한 팝/록 넘버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데뷔 앨범 의 출발점이었다.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은 에이브릴의 데뷔 때 세인들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었던 선배 뮤지션이다. 에이브릴 역시 앨라니스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출신이고, 둘은 강한 사운드로 데뷔했고 싱어송 라이터이며 데뷔앨범이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에이브릴은 인구 5,000명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 출신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지만 노력과 자질 없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기타와 보컬, 작곡에 대해 내내 꾸준히 공부를 해왔고, 교회 성가대와 각종 축제에서 라이브를 위한 목소리를 다듬어 왔다. 과거 아리스타 레코드의 경영자이자 프로듀서인 엘에이 리드를 만난 건 매우 운이 좋은 셈이었지만, 동시에 엘에이 리드에게도 큰 행운이었다. 그녀의 오랜 꿈은 이루어졌다.
5. 10대 시절을 정리하는 어둡고 개인적인 앨범 “Under My Skin”
'17살 소녀가 만든 풋풋한 앨범'이라는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 무언가 다듬어지지 않고 설익은 듯한 분위기를 풍겼던,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겁 없는 당돌함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매력을 한껏 배가시켜주기도 했던 [Let Go]는 이제 에이브릴 라빈이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쥬얼(Jewel), 미셸 브렌치(Michelle Branch), 넬리 퍼타도(Nelly Furtado) 같은 여성 싱어 송라이터 계보를 잇는 가장 확실한 대안임에 분명하다는 확신을 시켜주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Complicated', 'Sk8er Boi', 'I'm With You', 'Losing Grip' 같은 히트곡에 힘입어 음악적으로나 음악외적으로 대단한 이슈를 양산했던 [Let Go]는 '얼굴 반반한 사람'에 대해 일단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는 락 팬들보다는 일반 대중에게 더욱 큰사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Under My Skin]은 전체적으로 좀더 매니아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만한 요소가 짙어 그녀의 음악적 욕심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거물 소녀'라 그런지, [Under My Skin]의 프로듀서로는 총 네 명이 선정되었다. 린킨 파크(Linkin Park), 굿 샬럿(Good Charlotte), 이브 6(Eve 6)의 프로듀서로 최고의 주가를 날리고 있는 돈 길모어(Don Gilmore)를 중심으로, 마블러스 3(Marvelous 3)의 부치 워커(Butch Walker)가 여러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주고 있고, 에이브릴 라빈과 같은 캐나다 출신 밴드인 아워 레이디 피스(Our Lady Peace)의 레인 메이다(Raine Maida)와 셀린 디옹(Celine Dion), 핸슨(Hanson) 등의 앨범에 참여한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가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네 명의 프로듀서는 각각 자신들의 스타일을 강조하는 한편 에이브릴 라빈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서도 고심하고 있는데, 이는 팝과 락의 경계에서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의지와도 같은 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네 명의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Under My Skin]에는 감각적인 작곡가도 참여하고 있는데, 앨범의 주체자로서 에이브릴 라빈과 에반 타우벤펠드(Evan Taubenfeld)는 물론이거니와, 에반에센스(Evanescence)를 이끌던 벤 무디(Ben Moody), 캐나다의 유명한 싱어 송라이터 챈털 크레비어주크(Chantal Kreviazuk) 역시 본 앨범을 빛내주고 있는 인물이다.
에이브릴 라빈은 새 앨범에 대해 보다 성숙하고(Mature), 어두우며(Darker), 깊이 있다고(Deeper) 말하고 있다. 에이브릴 라빈이 데뷔 앨범 제작에 한창 열을 올렸을 열 여섯, 열 일곱 나이이면 남들은 똑같은 일상으로 채워진 학교에서 지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이지만, 그녀는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형 스타로 클 수 있는 자질을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했고, 이것은 차후에 자신을 뮤지션으로 바라보지 않는 부정적 시각과 싸워 이기기위한 준비 작업이나 마찬가지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에이브릴 라빈의 관심은 어떤 특정한 이슈나 음악 외적인 돌출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음악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맞추어졌던 것이 당연하며, 바로 그 점에서 그녀는 [Under My Skin]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성숙하고 어두우며 깊이 있는 앨범'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가 2년 동안 준비한 새 앨범이 과연 얼마나 음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 것이다.
[Under My Skin]은 전체적으로 [Let Go]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에이브릴 라빈식 팝/락을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보다 어둡고 락킹한 음악을 만들고 싶은 바람에 맞물려 전작에 비해서는 락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있으며, 특히 전작의 'Losing Grip' 같은 미들 템포 트랙들이 많아졌다. 첫 싱글로 발표된 'Don't Tell Me'는 'Complicated'를 잇는 분위기에 보다 헤비한 감성을 추가한 곡으로, 10대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는 에이브릴 라빈의 현재 마음 상태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 외에도 [Let Go]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트랙은 많은데, 맨 처음 등장하는 'Take Me Away'나 'My Happy Ending'은 'Losing Grip'의 후속곡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경쾌 발랄한 'He Wasn't'는 'Sk8er Boi'의 그것과 다름 아니다. 또, 'How Does It Feel', 'Nobody's Home' 역시 'Complicated'와 유사한 형식의 곡으로, 보다 내면적이고 차분해진 에이브릴 라빈의 성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지금 말한 곡들은 모두 차후에 싱글로 발표해도 될 정도로 탁월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He Wasn't'는 새 앨범에서 보기 드물게 경쾌한 분위기를 가진 편이라 에이브릴 라빈의 발랄함을 좋아했던 팬들에게 큰사랑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에이브릴 라빈이 내세우고 있는 새 앨범만의 특징은 초반부보다는 후반부에 위치한 곡들에게서 좀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정적인 허무함이 느껴지는 'Forgotten'이나 음울한 분위기가 표출된 'Fall To Pieces', 멜로디를 강조하고 있지만 헤비함을 잃지 않은 'Freak Out' 같은 곡을 듣고 있으면, 과연 그녀가 팝과 락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으로 더 많은 무게 비중을 두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봉환, 음반 해설지에서 발췌)
6. 2004년 5월, 일본 발매 개시
좀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연륜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에이브릴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과 2년 안에 에이브릴은 발전된 음악을 갖고 돌아왔다. “Complicated” 같은 히트곡이 “록인척 하는 음악”이라며 평가절하 했던 일부 골수 록 팬들과 기존의 에이브릴을 좋아하는 팬들을 일거에 만족시킬 수는 없겠으나, 에이브릴은 자신의 음악적인 목표를 향해 한발짝씩 전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에이브릴 라빈의 장점, 즉 듣기 좋은 멜로디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데뷔 앨범의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음악적 성숙을 꾀했다는 점에서 에이브릴의 이번 앨범은 성공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에이브릴의 앨범을 발매한 일본에서는 55만장이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미국에서는 “Don’t Tell Me”가 첫 싱글로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7.[Under My Skin]의 스페셜 에디션
연속 3년 한국을 찾는 “록의 프린세스” 에이브릴 라빈. 최초의 세계 투어 ‘The Bonez Tour’ 의 일환으로 3월 23일 한국 공연이 확정된 에이브릴 라빈이 세계 투어를 기념하기 위해 새 앨범 [Under My Skin] 의 투어 스페셜 에디션을 발매한다.
기존의 CD에 라이브 트랙 4곡이 추가된 CD와 MTV를 통해 방영된 ‘Under My Skin Diary’, 이번 세계투어의 뒷 애기를 담은 ‘The Bonez Tour Documentary’, 그리고 뮤직 비디오 3편이 수록된 DVD로 구성된 스페셜 에디션은 어느 때보다 알찬 내용으로 한국의 팬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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