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보졸래 전날 해 보는 보졸래 이야기

윤화영 |2006.11.15 09:38
조회 31 |추천 1

근래의 화두는 단연 ‘와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직업의 특성상 간단하게는 이번 추석에 할 선물에서부터, 길게는 요식업종 종사자들의 업장용 와인리스트에 대한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실로 가희 ‘와인 춘추전국시대’이자 ‘wine actually’라는 영화를 찍을 수 있을 지경이다.

 

한국에 이렇게 와인 붐이 분지는 그렇게 길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 보여준 것과 동일하게 우리나라 역시 밟고 있는 전철이 있으니, 이 두 가지야말로 와인 문화에 시동을 거는 열쇠이자, 거기에 속도를 가해주는 촉매인 ‘레드 와인과 심장병에 대한 관심’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이번 호의주제인, ‘보졸래 누보’이다.

 

누구는 2년 이상 숙성한 묵은지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오늘 오후에 갓 버무린 것절이를 선호할 수도 있다.

 

와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친구와 술은 오래된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지만, 와인의 경우는 애당초 장기숙성용으로 양조된 것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누보(nouveau, 영어의 new에 해당하는 불어 형용사)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런 와인들은 숙성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가 될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와인문화가 들어온 지 어언 4~5년이 되어 간다. 그러면서 참 아쉬운 점은 제대로 ‘즐기기’ 위한 와인문화보다는, ‘자기 과시용’ 와인문화로 흐른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금액의 와인을 마신다’를 보여주기에 더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저가’로 취급되는 보졸래 누보가 찬밥 대우를 받고 있다.

 

“전 보졸래 누보 좋아해요”라는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의아해 하는 눈초리로 나를 본다. “그렇게 좋은 와인 1년에 몇 백병씩 맛보시는 분이 왜 보졸래를…”. 아마도 그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왜 그렇게 비싼 와인을 업으로 맛보면서, 그 보졸래 따위를 좋아합니까?’일 것이다.

 

난 보졸래가 주는 그 특유의 를 너무 좋아한다. 보졸래는 비록 ‘누보’이지만,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학교 동창들처럼 묵은 친구들과 맛을 함께 맛을 보는 게 제격이다. 아직 풋풋하고, 병 밖으로 나오기를 부끄러워하는 그 녀석들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옛날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노라면,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이 보졸래 마냥 가볍게 피식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족들과도 이번 봄에 서운했던 이야기, 이번 여름 피서 이야기, 내년의 계획 등을 무겁지 않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바로 그런 와인, 보졸래 누보. 이게 바로 라고 할까.

 


금년 2006년의 프랑스 날씨는 그다지 포도 재배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해일수록 보졸래 누보 특유의 높은 산도와 과일 향이 더 강해지니 금년 11월 셋째 목요일에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상큼한 이 보졸래 누보를 맛보는 것은 어떨지. 게다가 시차 덕분에 일본과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와인의 코르크를 열 수 있는 ‘특권’을 받았으니.

 

사실 이런 성격의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말린 쏘세지류이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맞춤에 가장 중요한 건은 두 물질의 텍스츄어의 차이이다.) 육포처럼 말린 고기이긴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돼지의 지방이 아주 풍부하기에, 이런 상큼한 와인과 썩 잘 어울린다. 사실 한식과 어울리기 그다지 쉽지 않은 대표적인 와인이 보졸래 누보 계열인데, 지금 막 떠오른 것은 자갈치 시장의 선술집에서 양념에 재우지 않고, 단순히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해서 석쇠에 구운 참치뱃살이나, 새우젓을 조금 자제해서 돼지 머리나 족발과 함께 맛을 보셔봄도 괜찮을 듯. 아니면 단순하게 그냥 포테이토칩만으로, 혹은 친구들과 피자 한 판 시켜 왁자지껄하게 보졸래 누보 분위기를 즐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참고) 단, 같은 보졸래지만 Moulin à Vent이나 Morgon등은 아주 성격이 틀리니 구매시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