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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맨’에 대한 고찰

송기봉 |2006.11.15 23:00
조회 107 |추천 0
 


 'X맨’에 대한 고찰 ‘X맨’은 원래 돌연변이 인간들의 존재적 고민을 담은 할리우드 SF 영화의 제목입니다. 뭔가 의미심장하고 어두운 느낌이 묻어나는 이름이죠.

 

하지만 요즘 신세대에게 ‘X맨’은 총천연색 단어입니다. 발칙한 장난 혹은 게임을 연상시키는 단어라고 볼 수 있죠. 도대체 ‘X맨’은 무엇일까요. ‘X맨’을 아십니까? ‘X맨’은 최근 신세대와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 오락 프로그램의 코너 이름입니다. ‘강호동의 천생연분’(MBC)의 성공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과 교배해 탄생시킨 것이다. 여기에다 자신들 내부에 숨은 1명의 스파이를 찾아내는 ‘미스터리’의 서사적 장치를 끌어왔죠.

 

 ‘X맨’으로 지목된 연예인은 표 안 나게 게임에서 지거나 자기 편에 불리한 행동을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죠. 당초 ‘X맨’은 2003년 11월 시작된 SBS 오락 프로그램 ‘실제상황 토요일’의 한 코너인 ‘X맨을 찾아라’로 출발했다. 짧은 시간 내에 인기에 가속도가 붙자 ‘X맨’이라는 독립된 이름을 내걸고 2004년 10월부터 같은 방송사의 ‘일요일이 좋다’란 프로그램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죠. 하나의 인기 코너가 프로그램을 갈아타면서 확대 재생산되며 명맥을 이어가는 희한한 경우다.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이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일요일이 좋다’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MBC 간판 오락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누르고 20%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조사에선 ‘네티즌이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 1위에 오를 만큼 신세대 사이에선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중·고생들은 교실에서 이 코너의 형식을 장난스럽게 빌려온 ‘X맨 놀이’를 하느라 난리고,

 

‘X맨’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연예인이라면 자신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죠. 신세대로부터 ‘연예인 종합 선물세트’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이 코너는 다양한 유행어와 신조어의 진원지로 지목받을 만큼 신세대의 ‘언어세계’를 지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X맨’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돼버렸고 심지어 ‘사건’을 지나 이젠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큼 신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면서 다양한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죠.

 

 자, 그럼 ‘X맨’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X맨’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게임은 단연 ‘당연하지’입니다. ‘당연하지’는 거두절미하고, ‘연예인 말싸움’입니다. 연예인 두 명이 서부의 총잡이처럼 마주보고 선 뒤 독설(毒舌)의 총알을 날리는 게임이죠. 2004년 5월 ‘X맨’에 긴급 수혈된 이 게임은 1년6개월이 넘도록 롱런하면서 찬사와 비난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비수 같은 한마디를 던지면 상대는 어떤 모욕을 당하든 일단 “당연하지!”라고 수긍한 뒤 상대를 역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이 과정에서 상대의 시선을 피하거나, 대답을 못하거나, 질문을 하지 못하거나, 웃거나, 얼굴이 뜨거워지면 진행자(개그맨 유재석)로부터 가차 없이 패배를 선언당합니다. 여기서 ‘당연하지’ 첫 회를 다시 볼까요? 유경미 아나운서 : “너, 바람둥이지?” 개그맨 강호동 : “당연하지! 네 선배 중에 윤 아나운서라고 있지. 걔 성질 더럽지?” 유경미 : “당연하지! 너, 하루에 열 끼 먹지?” 유 아나운서의 승리로 끝난 이 대결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이어진 그룹 ‘쥬얼리’의 멤버 이지현과 유 아나운서의 대결은 시청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 유 : “언니, 화장발이지?” 이 : “당연하지! 너, 눈 수술했지?” 유 : “당연하지! 언니는 코도 했지?” 이 : “당연하지! 너, 무좀 있지?” 유 : “당연하지! 언니는 치질 있지?” 이 : “당연하지! 너, 속눈썹 떨어진 거 알지?” 실로 ‘여자 잡는 게 여자’란 속설을 여지없이 증명해주는 흠집 내기 한판이었습니다. 종국엔 “너, 발냄새 나지?”라는 이지현의 송곳(?) 같은 한마디를 끝으로 팽팽하던 대결은 막을 내렸죠. 이때부터 이지현은 ‘당연하지’로 이름을 날리며 ‘퀸 오브 당연하지’란 별칭을 얻었죠.

 

그의 주특기는 상대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거나 상대의 약점을 정면으로 들춰내는 것입니다. “너, 화장실 변기 막힌 적 있다며?”(그룹 ‘베이비 복스’ 출신 윤은혜에게) “너, 여자만 보면 ‘전진’하지?”(그룹 ‘신화’ 멤버 전진에게) “너, 근육은 키웠는데 쓸 데가 없지?”(그룹 ‘터보’ 출신 김종국에게) 이후 이지현은 “말발이 환상적이다” “언니, 싸가지 없는 모습이 진정 매력적이에요” 등의 각종 찬사(?)를 들으며 급부상했습니다. 이 코너에서 그녀가 보여준 ‘싸가지’ 없는 공격들은 모두 알알이 모아져 ‘퀸 오브 당연하지 어록’이란 간판을 달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죠. 특히 가수 윤은혜와의 대결은 마치 머리끄덩이를 잡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이는 여자들의 모습이 포개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지현은 앞니가 유난히 크고 몸집이 큰 윤은혜의 외모를, 훤칠한 윤은혜는 키가 작은 이지현의 키를 ‘밥’으로 삼았습니다. 이 : “너, 앞니 귀여워 보이려고 일부러 심은 거지?” 윤 : “당연하지! 너, 놀이기구 탈 때 키 제한받지?” 이 : “당연하지! 너, 수영장 가서 물에 떠보는 게 소원이지?” 윤 : “당연하지! 너, 지프는 높아서 못 타지?” 이 : “당연하지! 너, 얼마 전엔 이빨로 기차까지 끌었다며?” 윤 : “당연하지! 넌 아직도 분유 먹는다며?”

 

이 : “당연하지! 넌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도 밥 먹는다며?” 결국 위태롭던 두 여자의 대결은 이지현의 승리로 끝났고 이지현은 ‘퀸 오브 당연하지’의 자리를 늠름하게 지켜냈죠. 이런 인신공격이 점차 문젯거리가 되자 ‘당연하지’ 코너의 폐지를 주장하는 인터넷 카페 모임이 생길 정도로 안티 세력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씨름 천하장사 출신으로 이 코너의 보조 MC를 맡고 있는 강호동에 대해 퍼부어진 ‘한마디’들은 적나라한 인신공격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너, 얼굴에 뽕 넣었지?”(김원희) “네 오줌보로 애들이 축구하지?” “너, 남 웃기려고 살찌지?”(공형진) 얼마 전 ‘카지노바 도박사건’으로 연예활동을 중단한 그룹 ‘컨츄리 꼬꼬’ 출신의 신정환도 “너, 어깨가 점점 좁아진다며?” “너, 폴라티 입으면 목 부분이 어깨에 걸쳐진다며?” 하면서 어깨가 좁고 얼굴이 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들춰내는 독설을 웃음으로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 까무잡잡한 피부에 터프한 여성 이미지를 지닌 그룹 ‘샤크라’ 출신 황보는 “너, 흑설탕으로 팩했냐?”

 

“너, 상반기 예비군 훈련 갔다 왔냐?” 같은 직격탄을 맞아야 했습니다. 당장 상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모자랄 만큼 가슴을 찢어놓는 말들이 오가는, 이 보고 듣기에도 민망한 코너에 신세대는 왜 열광할까요. 신세대가 지칭하는 ‘올짱’이 뭐냐고요? 얼굴 잘생기고 몸도 좋고 키도 크고 학벌도 좋고 집안도 좋고 돈도 있는 그야말로 ‘모든 걸’ 갖춘 남자이지만, 단 하나는 꼭 없어야 한다네요. 그건 바로 ‘싸가지’입니다. 신세대는 잘나고 싸가지 없는 남자에게 진한 매력을 느낀다는 거죠,

 

신세대는 연예인들이 서로 험담하고 깎아내리면서 ‘별’이 공공연하게 가졌던 권위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에서 일종의 쾌감을 얻습니다. 또 나이차가 얼마든 상대를 무조건 ‘너’라고 불러야 하는 ‘당연하지’ 코너의 규칙은 나이나 선후배 관계를 따지기 귀찮아하고 심지어 이를 고루하게 여기는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죠. '당연하지’에서는 ‘신화’나 ‘동방신기’ ‘쥬얼리’처럼 한 그룹을 이루는 멤버들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쥬얼리’의 멤버 박정아와 이지현은 상대의 외모나 나이를 정면으로 들먹이면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박 : “너 때문에 우리 팀 평균 신장이 낮아진 거 알지?”

 

이 : “당연하지! 언니 때문에 우리 팀 평균 연령이 높아진 것도 알지?” 신세대는 이런 자중지란을 보면서 ‘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권위를 스스로 깨뜨려버리는 멤버들의 모습에 열광하죠. 역시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습니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다! 사실 ‘당연하지’ 코너는 형식 면에서 볼 때 청소년층에 깊이 침투해 있는 흑인 힙합 문화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바로 ‘배틀(Battle)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전세계 힙합계를 휩쓴 백인 래퍼 에미넴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신의 성장과 출세 과정을 그려낸 영화 ‘8마일’에는 ‘배틀’이라는 독특한 경쟁방식이 등장하죠.

 

무대에 나온 두 사람이 1대 1로 랩 대결을 펼칩니다. 서로 상대가 던진 랩을 이어받아 랩으로 반격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서바이벌 게임이죠. 이기지 못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배틀’의 대결 형식은 짜릿한 승부의 쾌감을 안겨줍니다. ‘당연하지’에는 바로 이런 ‘배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1대 1 맞짱을 뜨는’ 형식이죠. 신세대에게 ‘리그전’이란 무의미합니다. 평균점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번이라도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게 현실인데 말입니다. ‘당연하지’는 아무리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 우수해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 한 번의 ‘배틀’에서 패배하면 그것으로 마지막인, 벼랑 끝 삶을 살고 있는 청소년의 뿌리깊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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