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우리 젊은이들이여. 오늘이 축제의 밤이 되기를...
어김없이 입학시험을 치르는 날은 추웠다. 우리 선배 때도 그랬고, 우리 때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시험을 앞두고 떨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땅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다 경험한 바이지만, 이 시험이라는 것이 생사람 잡는다. 아무리 배짱 두둑한 사람이라도 시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법이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학위 논문 자격시험을 본 날, 이젠 그 지긋지긋한 시험으로부터 이라는 생각으로 마음껏 밤새 폭음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게 끝인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수능고사를 치르는 젊은이들에겐 지난 12년 간 온갖 시련을 겪어내며 지내온 그 시절의 모든 것이 단 하루로 그 결과로 맺어지는 날이다. 어쩌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불행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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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엄마는 새벽 같이 일어나 잠자는 딸아이를 조심스럽게 깨운다. 잠결에 ‘왜냐’고 묻는 딸아이를 어르며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보챈다.
짜증을 부리며 잠자리를 떨치지 못하는 아이를 무심코 바라보려 애쓴다. 한 동안 엄마와 딸 간에 벌어지는 실갱이와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기서 내 연민의 정이 작동하면 안 된다고 되 뇌이면서.....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다가 조간을 펼쳐든다. 그러다 베란다로 나가 죄 없는 담배나 묵직한 입술로 이겨댄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여 한 숨 쉬듯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내 쫓는다.
그저 소풍가듯 떠나는 딸아이를 배웅하면서, 신통치 못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침착하라’, ‘마음을 안정하고, 잡생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 숙연 부동(肅然不動) 무애안정(無碍安定) - ‘못 푼 문제에 집착하지마라’.....
그게 딸 아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늘 보던 시험인데, 오늘이라고 뭐 다를 게 있느냐’ 하는 투다. 어쩌면 그에겐 타의적으로 주어진 축제일 수도 있다. 당연히 마쳐야 하는 하나의 통과 의례 쯤으로 받아들이는 지도 모르겠다.
‘후배들이 문 앞에서 기다려... 갔다올게 ..’ 지 에미 아비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 우리도 그랬겄지 뭐.’늘 밤늦게 들어와 수험생 딸을 돌봐주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던 제 엄마의 신세타령을 듣는 것으로, 그리고 그 미안함을 과외비 몇 푼 벌어다 준 그것으로 상쇄하려던 우리 만남은 ........
이렇게 오늘 아침 수능 기념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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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아들딸들아! 주어진 조건이 그렇다면 그 조건 속에서 살아 견디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너희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은 거짓이고 위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에 마냥 속을 일은 아니란다. 실상 이 땅의 사회적 구조는 시험과 성적순, 그리고 학벌이 지배하는 나라란다. 부모의 능력과 재산이 자식의 학벌을 마련해주고, 한 인간의 운명을 젊은 시절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짓는 나라라는 것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난 지금도 지방대학에 다니는 어떤 한 젊은이가 '허무노인'이란 아이디로 '학벌없는사회' 자유 게시판에 남긴 글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지금 와서 공부하면 뭐 할 거야'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 나이 스물 하나. 만으로 치면 열아홉이고 한국 나이로 치면 이미 예순을 넘겼다. 그런데 공부하면 뭐 할 거야.
그냥 이 대학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나한테 뭘 더 바래.
한국 같은 학벌신분 나라에서. 이미 인생은 다 끝났으니 모두 노년을 분수대로 정해진 운명대로 견뎌가며 살면 되는 거야.
슬픈 가슴, 기타나 치면서 띵까띵까 위로하며 말이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은~ 피하리~ 젊음이~ 긴긴~나라로~20살 되도~ 인생 끝나지 않는~좋은 나라로~ "
열아홉의 젊은이를 예순으로 둔갑시키는 대한민국은 잘 나도 한참 잘난 나라임은 틀림없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양 최대, 세계 최고만을 고집하는 대(大)- 한민국은 위대(偉大)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40년이란 세월을 냉큼 넘어가게 하는 요술을 부리지 않는가?
이것이 한 젊은이가 마땅히 겪어야만 하는 정해진 운명일까? 만일 운명이라면, 누가, 아니 무엇이 이런 운명을 미리 정했는가? 무엇이 한창 때의 젊은이로 하여금 삶의 존재 이유와 근거를 망각하게 하는 '허무'를, 그것도 '때 이른' 허무를 맞이하게 했는가?
도대체 백발의 노인이 아니라, 한 젊은이를 '검은 머리를 한 노인'으로 만드는 이 나라를 우리는 조국이라 부르고 또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나라가 도대체 민주공화국일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무엇이 스무 살에 인생을 끝나게 했는가? 한창의 젊은이를 노인으로 만들고,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해서 슬픔에 빠지게 하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은~ 피하리~ 젊음이~ 긴긴~나라로~20살 되도~ 인생 끝나지 않는~좋은 나라로~ "라고 노래하게 하는 나라, 우리는 이 나라를 무엇이라 불러야만 하는 것인가? 절망을 넘어 처절한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이 나라가 건강한 사회를 가진 온전한 나라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사는 사람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허무노인'처럼 열아홉 살에 겪어야만 했던 그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졌었다. 지금도 그 늪에서 우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기점으로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속에서 '허무노인'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일 수 있다.
이 땅의 젊은이를 '조노증(早老症)'에 걸리게 하는 학벌주의를 마침내 생산해 내는 오늘, 그 오늘은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수험장으로 몰아세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불행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일찍 늙어버린 젊은이들'을 회춘(回春)시켜 다시 '청춘 예찬'을 노래하는 젊은이들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학벌 없는 대-한-민-국, 차별 없는 대-한-민-국
영원하리라, 다시 태어나도, 태어나고 싶은 땅
죽어도 나를 묻고 싶은 땅,
내 자식을 낳고,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싶은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고, 이제부터 '모든 것이 자유'라고 외치는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어제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쇠사슬은 사라지고, 입에 입을 맞춰 새 세상을 노래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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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딸. 오늘을 즐겨라. 축제의 깊은 밤이 될 수 있을 만큼 즐겨라. 지난 시간 너를 억눌렀던 모든 세상의 온갖 잔소리로부터 해방되어 너희들 세상이 되도록 즐겨라. 너의 빼앗긴 인권과 권리를 찾는 날이 될 수 있도록 마음껏 즐겨라.
그러나 결코 잊지는 말거라. 네가 짊어진 너의 인생의 버거운 짐이야, 네가 인생을 사는 한 결코 내동댕이칠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너의 인생의 주인은 너 자신임을 기억하라.
너는 노예가 아니다. 네가 타인의 말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한, 너는 남의 노예일 수밖에 없지만, 네가 너를 지배하는 한 진정한 주인은 바로 너임을 기억하라.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주인의 삶의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너 자신에게 달렸음을 기억하라.
늦가을 밝고 투명한 햇살이 비추인다. 저 밝고 맑은 햇살과 같은 얼굴에 행복한 웃음 가득 지은 채 우리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 명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