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더하우스 리뷰
세상을 살아가는 속에 우리는 많은 규칙들과 만나게 된다. 이 규칙들은 어디에서부터 왔으며 모든 인간을 규제하기에 합당한 것인지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규칙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사이더하우스는 우리에게 낙태 문제를 던져주며 우리가 절대시 여기는 규칙들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다. 영화의 배경은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되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기독교 문화 안에서 낙태는 신이 주신 생명을 인간의 자의로 죽이는 행위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행위다. 영화 속의 세인트 클라우드의 고아원은 낙태에 대한 종교적 잣대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 고아원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미혼모 엄마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들로 입양을 원하는 부부들이 입양하려고 고아원에 방문을 할 때면 아이들은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바르고 예쁜 모습을 보이려고 힘쓴다. 카메라 속의 아이들 모습은 더 없이 순수하고 천진하며 자신들도 가족을 갖길 바라며 고아원을 찾아온 부부들을 바라보는 그 맑은 눈동자들을 볼 때는 가슴이 저미는 아픔마저 느껴진다. “만약 아이들의 엄마가 낙태를 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이렇게 부모를 기다리며 가슴 아파 해야 했겠는가?”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우리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호머라는 청년을 통해 하나 하나 자신의 물음에 근거를 제시 한다. 호머는 세인트 클라우드에서 닥터 월버에 의해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닥터 월버는 의술을 호머에게 가르치고 호머가 자신의 일을 이어 받아 세인트 클라우드를 찾아오는 미혼모에게 낙태 수술을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호머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낙태는 옳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 닥터 월버의 일을 돕지만 낙태 수술만큼은 하지 않는다. 호머는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임신을 한 여인에게 있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맺기 전에 그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종교가 무엇이든 우리 또한 아마 호머의 의견에 동의 할 것이다. 고아원의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고 싶은 호머는 낙태 수술을 하기위해 세인트 클라우드를 찾아왔던 캔디와 월리를 따라 월리의 집인 사과 농장으로 간다. 처음 고아원을 벗어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한 호머는 농장 일을 배우며 즐거운 날들을 보내다. 호머는 일자리를 알선 해준 월리의 애인 캔디와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어느 정도 미혼모들을 이해하게 되고 농장에서 함께 일하던 로즈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이를 밴 것을 보며 이런 경우에도 도덕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옳은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결국 로즈에게 낙태 수술을 해준 후 호머는 세인트 클라우드로 돌아가서 닥터 월버의 뒤를 잇는다. 영화의 제목인 사이더하우스는 호머가 사과 농장에서 일할 때 머물던 일꾼들의 숙소로 그 곳에는 농장 주인이 적어 놓은 규칙이 기둥에 붙어 있다. 규칙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지붕에 올라가 점심을 먹지 말 것’, ‘밤에 지붕에 오르지 말 것’ 등 일꾼들의 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진 규칙이다. 물론 이 규칙은 지켜지지 않는다. 이 규칙에 대해 로즈의 아버지인 로즈씨는 ‘이 곳에는 우리가 살고 있고 이 규칙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완벽한 규칙은 없으며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로즈씨의 말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규칙들은 바로 잡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규칙들이 우리를 바로 잡아 줄 수 없다면 이미 의미를 잃은 것일 지도 모른다. ‘혼전 성관계가 만연한 사회에 낙태를 금지 하는 규칙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감독이 말하고자 한 바는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사이더하우스의 규칙에 도덕적 규칙을 비유하는 것은 비약이다. 꼭 지켜지는 규칙만이 존재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옳지 못한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은 비록 지켜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격한 도덕적 규칙의 적용 보다는 실제의 특수성을 포용할 줄 아는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