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르페르)
오래전 각인된 기억이 특정한 상황에서 또렷하게 되살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떠나는 날의 아침이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 차를 몰고 미용실로 향하던 8년 전 결혼식 날과 비슷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막상 대면하려니 신부를 맞이하던 날처럼 설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 희열 비슷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아침 일찍 멜버른을 떠난 버스는 1시간 30분을 달려 바닷가 소도시 토키(Torquay)에 닿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길은 이곳에서부터 왼편에 아득한 바다를, 오른편에 공활한 평원을 거느리며 서쪽으로 뻗어나갔다. 수평선과 지평선이 만나는 지점을 한 획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버스는 토키에서 론(Lorne)을 지나 아폴로베이(Apollo Bay)에 이르는 100km 남짓한 구간을 달렸다. 너른 백사장과 작은 항구마을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토키와 론 사이의 해변은 서핑명소로 정평이 나 있었다. 파도가 높고 힘이 센 서프 코스트(Surf Coast)로 영화 '폭풍 속으로'의 촬영지 벨스 비치(Bells Beach)가 위치했다. 폭양이 내리쬐는 여름 휴가시즌에는 그야말로 이 일대가 물 반, 사람 반이라고 했다.
론 인근의 한적한 해변에 버스가 멈췄다. 서편 저 멀리 보이는 해안절벽이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였다. 해풍에 쓸리어 육지를 향해 누워 자라는 잡목들이 마치 뒤로 빗어넘긴 머리카락 같았다. 해안 가까이에서 보드를 들고 파도와 씨름하는 아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모두 제 키보다 큰 보드를 껴안고 하얀 포말에 몸을 던졌다.
서핑 해변에선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갈 길이 멀어서인지 버스는 서둘러 떠났다. 토키에서 포트 페어리(Port Fairy)에 이르는 절경의 해안도로는 214km의 대장정이었다. 길을 재촉하지 않으면 해지기 전 멜버른으로 돌아가기가 요원했다. 도로주변으로 펼쳐진 풍경들을 한나절 만에 다 챙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많은 여행객들이 중간 지점인 아폴로 베이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일정을 택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하루 코스로 직접 차를 몰고 굽이치는 해안선을 드라이브하는 것은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아폴로 베이가 가까워져 오자 길은 변화무쌍해졌다. 창밖으로 한참 바다만 보이다가 갑자기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해안도로가 어느 순간 산길로 바뀌곤 했다. 이 지역은 오트웨이 국립공원(Otway Ranges National Park)의 권역이었다. 울창한 수림에 수백 년 수령의 고목과 희귀 동식물, 거대한 폭포가 널려 있다고 가이드북에 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일부라도 제대로 보려면 며칠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트웨이 국립공원은 경기도보다 면적이 넓었다.
버스는 숲에서 발원해 바다로 흐르는 강을 잇달아 건넜다. 케넷(Kennet) 강 부근에서는 샛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야생 코알라를 보러 간다고 했다. 유칼립투스 나무로 뒤덮인 산 중턱에 내려 코알라 탐사에 나섰다. 겨울이 물러간 직후여서인지 꼭대기 줄기에만 나뭇잎이 무성했다.
코알라는 하루 2~3시간만 깨어 있는지라 쉽게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물찾기하듯 더듬어나가다 나뭇가지에 솜뭉치처럼 매달린 몇 녀석을 발견했다. 신기한지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코알라들은 나무 아래 소란에 아랑곳없이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풍경의 경이로움에 닿다
교향곡에 클라이맥스가 있듯 길에도 절정이 있는 법이다. 12사도상(The Twelve Apostles), 로크 아드 협곡(Loch Ard Gorge), 런던 브리지 등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압권으로 꼽혔다. 모두 포트 캠벨(Port Campbell) 국립공원에 위치했다.
세 풍경은 거대하고 무정한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이었다. 깎아지른 듯 솟구친 해안절벽이 해풍과 파도에 침식되고 풍화하면서 오묘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언어로 전해지듯, 자연의 역사는 바람과 파도에 의해 기록되었다.
바위섬 무리인 12사도상은 이제 막 성지에 도달한 순례자들처럼 장엄하면서도 고단해 보였다. 50~70m 높이의 암봉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처음 이름이 붙여졌을 당시엔 12개가 서 있었지만 현재는 8개만 남았다. 거친 파도와 강한 해풍에 쉼 없이 침식당해 언젠가는 모두 바다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12사도상 감상법은 단애(斷崖)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과 헬기를 타고 둘러보는 것으로 나뉘었다. 헬기투어는 10분에 약 7만 원의 비용도 부담이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이미 익숙한 풍경의 재현에 그쳤다. 12사도상을 담은 엽서사진을 여러 장 반복해 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풍경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였다. 관람대의 인파를 배려해서인지 헬기는 지면에서 한참 올라간 상공을 선회했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그 진면목을 알기 위해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유지가 필요했다.
12사도상을 뒤로 하고 10분 정도 달리니 로크 아드 협곡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 해안은 암초가 많아 예전부터 난파선 해안(Shipwreck Coast)으로 일컬어졌다. 1878년 6월의 겨울에 영국의 로크 아드 호(號)가 좌초해 50여 명이 숨지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난파 당시 젊은 남녀만 기적적으로 생존했는데, 각자 결혼해서 선장과 가정주부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로크 아드 협곡에선 나무계단을 통해 해안절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바닷물이 발치에 닿는 곳에 이르러 남태평양 건너 남극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실감했다. 바람 속에 빙하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듯 차고 거칠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은 짐승의 포효처럼 크고 날카로웠다. 바람이 크게 일어날 때마다 파도가 요동치며 절벽에 부딪혀 시간의 나이테를 새겨나갔다.
Tip.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1918년 착공되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총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들었다. 모래와 덤불밖에 없는 해안에 천막을 치고, 다이너마이트로 바위를 깨트리며 길을 닦아 나갔다. 악천후와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고 해안선을 따라 건설된 도로 위에는 나무말뚝을 박아 가드레일을 세웠다. 그리고 첫 측량작업이 시작된 지 10여 년만에 절롱(Geelong), 토키, 론, 아폴로 베이에 이르는 구간이 완공되었다. 남반구 최고의 풍광을 품은 해안도로는 이후 계속된 공사를 거쳐 포트 캠벨, 와남불(Warrnambool), 포트 페어리(Port Fairy)까지 이어졌다.
글ㆍ사진/장성배 기자(up@yna.co.kr), 협찬/호주 빅토리아주관광청, 대한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