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전공의 수련에 교수들 ‘폭력 처방’?


[한겨레] ‘의사 선생님들은 맞으며 배운다!’
서울 한 대학병원 외과 3년차로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ㅇ아무개 전공의(레지던트)는 지난 8월 교수 방으로 불려가 교수에게 주먹으로 여덟 차례 머리를 얻어맞았다. 일주일 뒤에는 수술장에서도 발로 걷어차였고, 수술에 쓰이는 흡입기구로 얻어맞기도 했다. 또 얼마 되지 않아 환자와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도 발로 걷어차였다. “쓰레기 같은 놈, 미친 ××” 같은 막말도 따라붙었다. 수술받은 환자 상태가 악화됐다는 게 이유였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한 아이의 아빠인데 …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대한전공의협의회 민원 게시판에 자신의 사연을 올렸다.
전공의들이 매를 맞으면서 수련받는 게 비단 이 병원만은 아니다. 최근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선 교수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지난 9월, 이 병원 소아과 병실에서 ㄱ아무개 전공의(3년차)에게 “개새끼! 니 머리에는 ×만 찼냐”는 교수의 느닷없는 폭언이 날아들었다. 이 교수는 평소에도 전공의들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았다. 그 며칠 전에는 2년차 전공의가 거친 욕을 듣고 사표를 쓰기도 했다. 해당 교수는 지난해에도 전공의 폭행으로 물의를 빚어 사과까지 했지만, 그의 ‘폭력’은 잠시 중단됐을 뿐 올해 들어 다시 시작됐다. 해당 전공의들의 집단민원을 접수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7일 이 병원과 해당 교수를 상대로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공의협의회에 인터넷이나 전화로 받은 폭력 피해 신고는 올해 들어 20건에 이른다. 교수가 전공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전공의 선후배 사이는 물론, 간호사나 다른 직종에 대한 폭행 사건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처럼 밖으로까지 알려지는 ‘폭력’은 극히 일부다. 정형윤 전공의협의회 간사는 “병원에서 전공의가 매맞고 지내는 일을 워낙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라며 “신고나 민원이 제기돼 밖으로 알려지는 경우는 전체 폭력 실태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수련을 받아야 하는 ‘약자’ 처지 피해자나, 외부에 폭력행위가 알려져 좋을 일 없는 병원 쪽 두루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의식 있는 일부 의사들이 “부끄러운 전통”을 고쳐보려 애쓰지만, 뿌리깊은 ‘폭력 관행’에 맞서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임기영 아주대 의대 교수팀이 전공의·개원의 972명을 대상으로 벌인 2004년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14.2%는 폭행을, 55.0%는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병원에 이를 막을 공적 기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학승 전공의협의회 대표도 “병원 안 폭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제도·구조적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의료현장 폭력추방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폭력의 피해는 당사자인 의사들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폭행·폭언’으로 찌든 ‘의사선생님’의 하루
‘전공의’ 환자앞에서 맞고 욕먹고…
‘교수 폭력’에 벌벌 떨고 참담하고
경기도 한 종합병원의 소아과 3년차 전공의(레지던트) ㅇ아무개(여)씨는 병동에서 열리는 아침 회의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회의를 주관하는 ㄱ아무개 교수가 무슨 폭언과 폭행을 해댈지 두려워서다. 얼마 전 아침 회의시간, 환자 진료 기록을 살펴본 ㄱ교수는 여지 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넌 병원 관두고 집에 가서 애나 보고 살아라. 이 XX같은 X.” ㅇ씨는 환자 앞에선 ‘의사선생님’이지만 ㄱ교수 앞에선 ‘XX같은 X’이다.
이날 ㅇ씨는 다행히(?) 회진을 따라 갈 수 있었다. 며칠 전 다른 동료 전공의 한 명은 ㄱ교수한테 ‘너만 보면 재수 없어, 넌 나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회진에 참가하지 못했다. ㄱ교수는 전공의들에게 폭언을 쏟은 뒤엔 종종 병동 회진에도 배제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시간 동안 ㅇ씨나 전공의들은 혼자서 심한 자괴감을 되씹어야 한다.
아침회의때 ‘XX같은 X’
회진 따라나서면 여성인데도 손가락으로 몸 찌르며 막말
폭력에 익숙해지는 자신이 슬퍼
그렇지만 회진이 시작됐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회진은 환자들의 상태를 교수에게 보고하고 여러 처치를 지시받는 자리다. 하지만 교수의 폭언은 환자를 앞에 두고도 터져나온다. 이날도 역시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ㅇ씨의 자존심은 무참히 구겨졌다. “머저리 같은….” ㄱ교수는 “환자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여성인 ㅇ씨의 몸을 손가락으로 찔러대며 막말을 내뱉었다.
ㅇ씨는 ‘환자나 보호자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하는 부끄러움에 환자를 돌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말 나는 의사로서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하루 종일 ㅇ씨의 뇌리를 스쳤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인지도 모른다. 지난해에 다른 남자 전공의 한 명은 중환자실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한 욕과 함께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잇단 폭행과 폭언에 소아과 전공의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면서, ㄱ교수는 과장직에서 물러났다. 다시는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사과와 약속은 몇 달이 가지 않았다. 올들어 ㄱ교수의 폭언과 폭행은 다시 시작됐고, ‘맞으면서 배우는’ 전공의도 당연히 다시 생겨났다. 최근에도 폭언을 들은 전공의 한 사람은 병원을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러자 뒤늦게 병원 쪽이 문제 교수에게 수련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ㄱ교수는 아무런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소아과 전공의들은 전국 병원 전공의들의 모임인 전공의협의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ㅇ씨 등 이 병원 전공의들은 병원 쪽이 ‘병원 폭력’을 근절할 만큼 적절한 조처를 취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얼마 전에 다른 과에서도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한 일이 있었지만, 감봉 3달의 징계 조치를 받았을 뿐이다. 반면 폭행을 문제삼은 피해 전공의는 병원을 그만뒀다.
ㅇ씨는 “두렵다”고 했다. 환자를 보는 것도 무섭지만, 폭력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참담하다고 했다.
‘의료계 폭력’ 제보 기다립니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폭력적 관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와 고발을 늦추지 않아온 는 ‘의료계 폭력’에 대해서도 추가보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폭력’에 대해 관련되신 분들의 제보와 사례를 기다립니다. 제보해주실 곳 :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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