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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진실로 필요한 할때

김일영 |2006.11.22 11:44
조회 46 |추천 0

수능을 치루는 계절이 왔습니다. 작년 수능직후 우리는 많은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5일 치러진 2004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비관해 2명의 여학생이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수능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 달에도 이미 4명의 학생들이 성적 문제로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다음 뉴스)

“수능 당일인 그제 1교시 시험을 마치고 곧바로 고사장을 빠져나온 전북 남원의 한 여학생이 인근 아파트 옥상으로 달려가 몸을 날리더니 어제 새벽에는 잠든 부모 몰래 집을 나온 한 여학생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슬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이들은 시험지 또는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남겼다고 하니 어른된 처지로 부끄럽기만 하다.

죽음을 택한 이들은 이 사회가 대학, 특히 명문대를 나와야만 행세하는 살벌한 학벌사회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벌써부터 이런 세상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길이 안보인다고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학벌사회가 득세하는 속에서 이런 안타까운 죽음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입시를 향한, 경쟁위주의 교육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한계레 사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한국의 소식을 접하며, 이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이것이 말하는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자살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자살은 통한 그들의 외침은 무엇인가요? 수능을 못봐서 자살하고, 카드값과 신용불량때문에 자살하고, 사랑이 깨져 자살하고,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자살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유들이, 우리들의 사고를 이해 시키기엔, 그들이 자살한 이유들은 불분명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죽기까지 힘들었던것인가? 죽을힘으로 살수는 없는 것인가? 수능 못본것이, 빚을 못값는 것이, 사랑을 잃은것이 자살로 이끌었던 사실이 일반의 사람들에게는 납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이유가 그들을 자살로 이끈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해되지않을것을 알았던 그현실이 더이상 살아야할 이유와 믿음을 주지 못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로를 이해할수 없는 막다른 벽, 사회가 만든 벽, 사람이 만든 벽을 뛰어넘기 못해 자기의 삶은 체념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이해할수 없다는 절망감과 아무도 그들을 이해해주거나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느끼며 이 세상에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었을때 그들은 자살이란 것을 택한것이 아니가 합니다.

자살은 인간의 체념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념은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체념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합니다. 헨리 나원은 체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체념인란 우리를 극복할 수 없는 주변의 환경통해 무기력한 희생제물들같이 살게끔하는 태도입니다.” “ Fatalism is the attitude that makes us live as passive victims of exterior circumstance beyond our control. Henri J. M. Nouwen from “Here and Now”

그들이 저항하기는 현실이란 벽은 굉장히 컷나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에 대해 체념한체 살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무기력하게 살기 보다는 자살을 택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마치 자신들은 무기력한 희생의 제물로 살기보다 자살을 통해 극복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나원은 체념의 반대는 믿음이라 말합니다. “체념의 반대의 말은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의 그 어떤권세있는것 보다 강하다는 것과 어둠의 희생양들이 였던 우리를 변화시켜 빛의 종들로 세우신다는것을 믿는 깊은 신뢰이다. “The opposite of fatalism is faith. Faith is the deep trust that God’s love is stronger that all the anonymous powers of the world and can transform us from victims of darkness into servants of light.” 저는 이 믿음이 있다면 체념을 통한 자살을 막을수 있을것이라 생각합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제자들은 흩어 졌습니다. 상황은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에게 불리하게 되어졌습니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으로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힘든 상황까지도 맞이 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거대한 벽에 부딪쳤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없던 삼일동안은 마치 수험생이 시험망치고 자살하고 싶을만큼의 좌절과 절망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좌절한, 카드값못갑고 조폭들에 협박당하며 세상의 실의를 맞이한 절망과 체념이 제자들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어떤이는 고기 잡던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간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민족적 해방을 맞이할거란 꿈과 믿음이 깨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알고 따랐지만 그 예수의 죽음으로 그들의 믿음과 꿈은 산산히 부서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기전 삼일동안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체념할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그순간 그들은 자신들을 절망과 체념으로 몰고간 현실의 벽이 무더지는것을 체험했을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그들은 믿음이 소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세상의 어떤 권세있는 것보다 강하고,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현실의 벽으로 같혀 절망한 우리들에게 한줄기의 생명의 빚으로 우리를 인도하신것을 알았을것 입니다.

우리사회는 이 예수님의 부활이 체험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활의 믿음은 체념을 이겨낼수 있는 무기입니다. 이 믿음은 체념으로 통한 자살을 막을 무기입니다. 이 믿음은 현실의 벽을 허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떤힘보다 더 강하고 진하게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믿음이 우리사회에 부족하다는 것을 연쇄 자살현상을 통해, 우리는 읽을수있고 알수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부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부재 누가 책임져야 할 문제인가 저는 생각해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믿음을 전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이 믿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의 벽과 인간의 벽과 개인간의 벽을 허물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의 소리를 들을때 그들이 살아야할 이유를 발견할것 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을때, 또 하나님은 그들이 왜 절망하고 체념하고 있는지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을때 그들은 자살과 체념을 택하지 않고 믿음을 선택하리라 믿습니다.

몰트만은 이 믿음을 희망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또는 준비하는 원동력이 합니다. 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이 믿음과 희망을 전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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