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스트레스 등 원인 많아 소아뇌종양 가능성 극히 적어
"MRI(자기공명영상) 한 번 찍어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자꾸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8세 여자 아이를 데리고 종합병원 소아과를 찾은 한 30대 여성은 다짜고자 MRI 검사부터 해보자고 했다. 아무래도 뇌에 무슨 큰 병이라도 생긴 것 같다는 것이다.뇌에 이상이 있다고요?
걱정거리라곤 전혀 없어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도 두통이 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여기에다 예·체능교육까지 하루종일 '뺑뺑이'를 도는 초·중·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종일 머리 아플 일만 잔뜩 있으니 아이들도 허구한 날 두통을 호소할 수밖에….
사실 15세 이하 소아·청소년기 아이들 중 4분의 3은 두통 경험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흔한 원인은 바로 편두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 그리고 기질적 원인이 있는 경우도 대부분은 눈 코 귀 등의 주변 기관에 병이 생겨서 2차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축농증(부비동염)이나 눈의 굴절 이상,치아의 부정교합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원인들을 해소해 주면 두통은 사라진다.
이와 달리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도 두통을 자꾸 호소하는 아이들의 경우,동네 소아과 의원들을 전전하다가 머리 속 종양의 가능성까지 우려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
대동병원 소아과 손병희 과장은 "대부분이 편두통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인 통증 때문"이라며 "실제로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들 중 두개강 내에 종양이 발견될 가능성은 1%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두통은 흔한 것이니 괜히 불필요한 걱정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편두통이 가장 흔해
두통으로 병원을 찾게 되면 전문의들은 진단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언제부터 발생했고 그 사이 경과는 어떠했는지,얼마나 자주 통증이 있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아픈 부위가 어디며 얼마나 심한지,어떤 식으로 아픈지,같이 동반되는 증상은 없는지,약을 먹었을 때 반응이 어떠했는지,잠을 잘 때도 두통 때문에 깬 적이 있는지,공부할 때 방해가 되는지 등등.
이를 통해 가장 많이 진단되는 것이 바로 편두통. 머리가 욱신욱신,지끈지끈,쿡쿡 쑤시는 증상이다.
부산의대 소아과 남상욱 교수(소아신경학)는 "갑작스러운 두통이 간헐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날 때 가장 흔한 원인이 편두통으로 한쪽 측두부에서 잘 나타난다"면서 "하지만 두통을 느끼는 발작 상태 사이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재밌는 일을 하고 있거나,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금세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편두통은 또 본격적인 통증이 나타나기 전에 배가 아프다는 둥,토할 것 같다는 둥,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는 둥,번쩍거리는 섬광이 보인다는 둥 소화기 증상이나 시각 증상이 선행되는 경우도 많다. 손발이 저릴 때도 있다.
남 교수는 "성인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반해 남자는 소아나 청소년기에 많다"면서 "가족,특히 엄마에게 편두통이 있는 경우에 잘 나타나고,가족들 중 간질이 있는 경우도 편두통 비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과도한 학업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과로 수면부족 같은 육체적 피로,소음이나 강한 광선과 같은 자극,사춘기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음식물 알레르기,약물,감기와 같은 급성 감염질환,경쟁적 성격 같은 요인들도 편두통을 유발하는 인자들.
특이하게도 머리보단 배가 주로 아픈 '복통성 편두통'도 있다. 배꼽 주위에 묵직하거나 쑤시는 통증이 생겨서 밥을 잘 못먹고 구역질이나 구토와 함께 안색이 창백해지는 증상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 이런 증상은 몇 시간에서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보통 7세부터 시작해 10세 전후가 심했다가 이후엔 급격히 없어진다. 65% 정도가 부모 형제에게 편두통이 있으며 일반적인 진통제로는 잘 안듣는 경우.
스트레스성 두통과 군집성 두통
편두통처럼 다른 특별한 질병과 관계없는 '기능성 두통'으로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군집성 두통,두부의 신경통,심인성 두통 등도 있다.
그중 '스트레스성 두통'은 어린아이한테서도 나타나지만 주로 청소년기 여자 아이에게 흔하다. 미리 나타나는 전조 증상은 없지만 둔탁하고 밴드로 머리를 조르는 듯한 통증이 매일 또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은근히,그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피로,힘든 활동,일시적인 스트레스 등에 의해 머리쪽 근육이 장시간 수축돼 일어나는 것으로,방치할 경우 3개월 이상 만성으로 가기도 한다. 이럴 땐 휴식이 제일이고,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도 효과가 있다.
반면 '군집성 두통'은 10세 이후 청소년기 후반의 남자 아이에 잘 나타난다. 주로 잠든 후 1~2시간 후에 깨어나서 한 쪽 눈 주위에 통증을 호소하거나 눈물 콧물을 흘리고 얼굴이 빨개지는 증상. 통증은 20~60분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통증이 심해서 아이가 쩔쩔매면서 방 안을 이러저리 굴러 부모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다.
두통이 매일 나타나면서 몇 주씩 이어지는 일이 한 해 두 번 정도나 1~2년에 한두 번씩 나타난다.
무거운 원인이 있는 경우
소아 청소년기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뇌파검사나 CT,MRI같은 특별한 뇌영상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할 때도 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의식이 처질 때나 갑작스러운 시력 감퇴,눈알이 흔들리거나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경우,갑작스러운 성격의 변화,간질성 발작 등이 동반되는 경우다.
이와 함께 자다가 깨거나,잠에서 깬 후에 두통이 더 심해질 때,또 기침할 때 통증이 더 심해지면 뇌압이 상승하는 질환을 의심해 볼 만하다. 특히 두통이 갑자기 발생하여 극심하거나 빈도와 강도가 급격히 또는 오랫동안 점차 심해지는 경우엔 뇌출혈이나 뇌염,혹은 뇌종양 같은 질환을 고려해봐야 한다.
그중 '소아 뇌종양'은 어른과 증상이 달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자기가 겪는 증상을 잘 설명하지도 못해 부모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크다.
인제의대 신경외과 이선일 교수는 "어른들은 두통이나 구토 등 뇌압 상승 징후가 먼저 나타나지만 아이들은 뇌가 말랑말랑해 그런 징후가 늦게 나타나 진단을 놓치는 수가 있다"고 말하고 "인구 100만명당 36명 정도에서 소아 뇌종양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또 심하게 울거나,뜨거운 국이나 라면 등을 먹을 때 순간적으로 뇌혈류가 떨어져 뇌경색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외 구토나 구역질이 동반될 때,진통제를 먹였는데도 듣지 않을 때,주로 오전에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할 때,두통이 몇 주 이상 계속될 땐 반드시 전문의 진단이 필요하다. 윤성철기자 cheol@busanilbo.com
도움말=부산의대 소아과 남상욱 교수,인제의대 신경외과
이선일 교수,대동병원 소아과 손병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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