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그 당시에 어린 내가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분이었다. 학교 운동장을 우리는 두 줄 맞춰서 나란히 걷고, 어머님들은 주변에 따라다니시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하나씩 들었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 뭐 나무로 된 책걸상... 삐걱삐걱 소리나고 못이 튀어나와서 옷도 걸리고.... 겨울이 되면 난로 설치하는 곳 주변에는 청테이프가 쳐지고 거기에 가까이 가면 큰 일 난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고.... 깍두기공책에 글씨 연습하고. 숫자 읽고 쓰고. 발표하려고 손들고. 대충 1학년 때 기억이다. 선생님이 무척 친절하셨던 거 같다. 질문이 하도 많은 나를 비롯해서 몇 명 녀석들을 피곤해 하지 않으시고 계속 들어주셨다. 박사라고 별명도 붙여주시면서.....
그 후로도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1,2년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무지 놀랐다. 따귀를 맞았던 녀석도 있고 차별을 당한 녀석도 있고..... 난 한 번도 그런 기억이 없어서 그런가? 지금 생각해보면 혼났을 때도 그 당시는 분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도 억울했던 적은 별로 없던 거 같다. 나에겐 좋은 선생님만 있었나보다.(꼭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앞에서는 없었던 거 같다.)
차별이 진짜 심한 선생님을 딱 한번 경험한 적은 있다. 고등학교 때 윤리선생님이었는 데 그 선생님 시간에는 윤리식스 라는 애들이 있었다. 그 반의 1,2,3등. 그리고 반장, 부반장, 총무부장. 근데 보통 겹치게 마련이니 학습부장 정도까지.... 이 선생님은 참 재미난 게 공부 잘하는 애들만 이름을 불러준다. 그러니까 이 선생님한테 이름을 불리면 자신의 성적에 대해 만족해도 된다는 소리다.(실제로 거기에 만족하는 애가 있겠냐마는...) 일단 이름 부르는 것도 차별인데 다른 건 더 심했다. 공부 잘하는 애랑 못하는 애랑 같이 떠들다가 걸리면 안혼난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애가 떠들다가 걸리면 혼났다. 숙제를 안 해왔어도 공부 잘하는 애가 있으면 안 혼나고 못하는 애가 있으면 혼난다. 자기 과목 시험 때 돌아다니면서 각 반의 1,2등 시험지를 보면서 헷갈려 하는 모습을 보면 슬쩍 코멘트도 하고 간다. 과목에 대한 실력은 꽤 좋았다. 수능 윤리 공부도 그 선생님이 가르쳐 줬던 것을 바탕으로 한 노트 두 권으로 했었으니까..... 뭐... 자기 자랑 같지만 나름대로 학교 유망주였던 터라 그 윤리 선생님한테 혜택을 많이 보기도 했다. 부러 애들이랑 놀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안혼나니까.. 하지만 그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교대에 다니면서 2년을 참 다니기 싫어했다. 사실 엄청 두려웠다. 내가 초등학교 애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이 무서웠다. “잘 할 수 있을까?” 이건 진짜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하지만 남들한테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그런 차에 실습을 갔다 왔고, 내가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실습을 나가서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처음 수업하던 날... 무지하게 힘들었다. 떨리고 두렵고... 다만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 처음으로 수업을 해보는 거야. 잘 할리 없잖아?’ 그 다음부턴 수업을 망쳐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일단 열심히 배워보자는 데 모든 초점을 잡았다. 그리고 4학년 말... 친구들과 어떤 교사가 될 거냐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는 막연했다. 좋은 교사가 될 거라고.. 애들이 하는 말 다 들어주고 애들을 위하는 참교사가 될 거라고....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라고 말이다.
기간제 할 때나 시간강사로 한학기를 보내면서 내 새끼들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얼른 내 반을 맡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자.’ 라는 열망도 함께.... 근데..... 내가 원하는 것이 뭐지? 라고 생각했을 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막상 생각났던 것은 일기와 예절... 그리고 솔직함 이정도였을까? 그런 내용으로 2학기에 발령을 받고서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썼었다. 답장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대략 40명의 학부모 중 20명 정도가 답장을 보내줬다. 대부분은 선생님을 믿겠다는 거였다. 그것을 믿고 진짜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각오를 다졌다.
진짜 열심히 했다. 애들 싸우면 되도록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해봤고, 우리반 아이가 돈을 훔쳤을 때 어떻게든 좋게 해결하려고 다른 애들에게 비밀로 하고 일을 해결하려 했었고, 돈이 없기에 극기훈련을 안가겠다는 아이가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서 끼워서 데려도 갔다. ( 솔직히 이건 비리라면 비리다. --;; ) 급식비가 3개월이나 넘게 연체되는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가정사정을 듣고서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해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돌려서 급식비를 납부하지 않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5학년 임에도 사칙연산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몇 명을 가르치고자 불러서 설득도 했고 결국 여자애 두 명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한명은 2학년, 한명은 3학년 수학을 가르쳤다. 근데 교실에 애들이 자꾸 들락날락거려 배우는 애들이 창피해하자 여기저기 옮겨가면서 가르쳤다. 대학원도 가고 학교 일도 있고 시간도 안맞아서 참 힘들었지만 꾸준하게 했다.(아이들은 별로 그렇게 하고 싶어하질 않았던 거 같다. 그냥 선생님과 논다 정도로 생각했던 거 같다.) 2학기 반장이 된 녀석의 어머니가 반장턱을 내시겠다기에 정치인도 아니고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 녀석이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2주 정도를 반장어머니와 메일로 다투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반 녀석들은 다른 반 아이들은 햄버거와 콜라, 피자를 먹을 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미안한 것은 없었다. 반장이 벼슬자리가 되지 않기를 원했기에.... 여자아이들끼리 서로 다툴 때 어떻게든 해결을 해주려고 무지 달래고 노력도 했었다. 해결은 아마 안되었겠지만..... 또한 내가 진심이면 아이들도 진심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한 여자아이가 너무나도 생활태도가 엉망이었다. 일기 검사를 하면서 편지를 써줬다. ‘선생님은 니가 이래이래 할 거 같은 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하지만 네가 원래 모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라고 말이다. 정말 거짓말 같이 다음날부터 아이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던 와중에 나를 회의에 들게 했던 일이 있었다. 여자 아이 한명이 가출을 했다. 그 아이를 찾기 위해서 3,4일을 애가 어디에 있는지 있을 만한 곳에 전화를 걸고 확인을 했다. 열심히 추적을 한 결과, 아이가 있는 집을 찾아냈다. 다음 날 아침. 교감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그 아이의 고모와 함께 아이를 데리러 갔다.(그 아이는 부모님이 안계시고 13살 많은 오빠와 80이 넘으신 할머니와 함께 산다. 그래서 고모가 학부모 노릇을 대신하셨다.) 문제는 그 아이가 가출했던 것이 나를 회의에 들게 한 게 아니다. 그 아이의 소재를 파악하던 와중에 우리반 여자 아이 중에 걔를 재워주었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와 상담을 하던 중.... 그 아이의 엄마가 안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급요록엔 어머니의 이름이 써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아이 앞에서 부모님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묘한 행동을 보일 때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었다. 사실 그 가출한 아이가 내가 담임을 맡은 9월부터 2월까지 무던히도 힘들게 하던 아이라 다른 아이들 보다는 그 아이를 잡으면 그 해는 성공한 해라고 생각하고 진짜 그 아이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터였다. 다른 아이들은 정상일거라고 생각했다. 문제 없을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굿모닝 티처]라는 만화책이 있다. 거기서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관심을 주는 것보다 필요한 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는 게 좋다.」 난 이 말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지금도 뭐가 옳은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다 옳은 말이겠지만.... 이 사건 이후로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었다. 하지만 이미 학년이 다 끝나가는 12월 중순 쯤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계속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11월에 전학왔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은 중간에 전학오는 여자애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를 않았다. 되려 우리반 여자 아이 중의 짱이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전학온 아이를 좋아한다고 하자 여자아이들 전체가 그 아이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 틈에 어떻게든 넣어보려고 노력했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그 여자아이는 내가 무척 신경쓰던 그 여자아이와 같이 놀게 되었다. 그리고 방학 중에 내가 신경쓰고 있던 녀석은 두 번째 가출을 했고... 전학 온 아이도 거기에 동참했다. 아이들은 역의 화장실에서 밤을 지세우다 경찰서로 붙잡혀 갔고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서 데려갔는 데 내가 신경쓰던 여자아이는 집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울고불고 해서 경찰서에서 청소년 쉼터인가 하는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방학 중에..... 그곳에서 나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가 가출했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그 아이의 고모님과 통화를 했다. 고모님은 엄청 실망하고 화도 나셨다. 그 아이가 두 번의 가출을 한 이유는 이렇다. 13살 차이나는 그 아이의 오빠는 그 아이가 잘못하면 무지 엄격하게 매를 댔다. 예전에 맞아서 입원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두 번 다 그 아이가 들어가기로 한 시간이 훨씬 넘게 집에 왔는데 오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길로 바로 가출을 했다고 그 아이는 이야기했다. 근데 오빠한테 맞아서 입원한 것이 몇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한다. 결국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트라우마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 오빠한테 맞아죽는다고 이야기를 하면 친구네 집에서 그냥 재워주는.... 일종의 면책부가 된 것이다. 아무튼 며칠 후 그 아이가 알아서 집에 들어가서 해결이 되었다. 도중에 고모님과 몇 번 통화를 하면서 이래저래 이야기도 하곤 했지만..... 문제는 개학한 후 전학왔던 아이가 안보였다는 것이다. 어머님께 전화를 해봤다. 아이의 아버지와 따로 사는 데 아이가 엄마와 살고 싶다고 하기에 데려왔었는데 문제가 자꾸 생겨서 다시 아버지한테 보냈다면서 죄송하다고 하셨다. 난 너무나 죄송해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 아니었을지..... 내가 발령받았던 동네는 그렇게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두움과 아픔이 너무나도 컸던가 보다. 계속 신경쓰던 아이가 처음에 가출했을 때... 다른 학교의 6학년 여자아이와 같이 가출을 했는데 둘이서 신세지던 어느 한 집에서 그 6학년이 부엌칼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한 적이 있단다. 뭐가 그 아이를 그렇게까지 만들었을까? 그리고 우리 반의 그 아이는..... 무엇이 그렇게까지 오빠가 두렵다고 인식을 하게 되었을까?
난 결국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준 것이 아니라... 겉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달콤하게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너무나 힘들었다. 난 분명 열심히 했는데...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아보지도 못한 것이 내가 뭘 열심히 한 걸까? 라는 생각도 너무 많이 했다.
겨울방학 때 아이들이 방학숙제로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써줘야 하는 데 일이 많아서 답장을 못해줬다. 일기에 편지를 써줬던 아이가 개학하자마자 왜 답장을 안써주냐고 계속 묻는다. 편지가 안온 모양이라고 그렇게 둘러댔다. 봄방학 때.... 편지가 또 왔다. 형수님이 전해주시면서 웃으신다. 왜 그런가 봤더니 편지 겉면에... “우체부 아저씨, 우리 선생님이 받을 실 수 있게 꼭... 잘 전해주세요~” 라고 적혀있었다. 편지 내용도 선생님 감사하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을 내가 했을까? 잘 모를 일이다. 내가 공익을 시작하고 나서도.... 그 가출했던 아이는 또 한번의 가출을 했고 옆학교에서 일진회를 조직한다고 돌아다니다가 교장선생님한테 걸려서 잡혀왔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나한테 몇 번 전화가 왔다. 작년에 어떻게 지도를 했는지..... 그녀석 말고도 우리반에서 한 번씩 날리던 녀석들이 각 반으로 흩어져서 한 건씩들을 하는지 발령동기들의 연락도 꽤 많이 왔다. 학교를 가끔 찾아갔다. 내가 교사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러면 선생님들은 참 대단하다고 어떻게 그 아이들을 다 데리고 있었냐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낯뜨거워서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난 실패라고 생각했던 반년이었기에...
내가 맡았던 아이들이 졸업을 할 무렵, 연가를 내고 학교에 찾아가봤다. 아이들이 볼까 기대도 했지만 보고선 그냥 지나가는 아이도 있어서 섭섭한 마음이 들려던 찰나에 가출했던 아이의 고모님이 나를 발견했다. “선생님! 우리 ☆☆이가 졸업해요~ 엄마, 엄마 이리와봐~” 곧이어 80이 넘으신 몸을 이끌고 오신 할머니가 오셨다. “엄마, 이 선생님이 작년에 우리 ☆☆이 챙겨주신 그 선생님이야~” 할머니께서 갑자기 눈물이 글썽하시며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고마워요. 선생님 고마워.....” 나도 눈물이 글썽해진다. ‘고맙긴요..... 아이가 졸업할 수 있어서 참 저도 좋네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아이의 사촌언니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조금 있다 그 아이가 달려오면서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밥을 같이 먹자고 고모가 말씀하시는 것을 거절했다. 도저히 그럴 자신은 없었다.
담임으로 있던 그 6개월은 참으로 힘들었다. 열심히 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과 교류하기 위해 하던 버디버디와 메일로 아이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오늘도 메일이 하나 왔었다. 확인을 하면서 그 아이가 떠오르고 고마워 진다. ‘그래.. 고맙다... 나를 기억해 주는 구나!’
나는 조금은...... 교사로서의 나를 좋아할 수 있을 거 같다. 조금은... 나 자신을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