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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를 바라보는 시각

이정빈 |2006.12.01 03:43
조회 5,201 |추천 180

(이글에서 기독교인과 개신교인이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가장 먼저, 나는 기독교인이다. 개신교이다. 기독교인들을 욕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겪은 기독교 사람들 혹은 자신이 다녔던 교회에 대한 괘씸한 맘에서 그 인연을 끊고 나서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아직도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또한 어릴적부터 다녀왔고, 몇군데, 교회도 옮겨 보았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집안은 불교여서 절에도 곧잘 가야했으며(지금도 집안의 큰 행사가 절에서 열리는 경우가 있고), 한때 친구를 따라 성당에서 2년간 나갔으며, 거기서 세례 공부까지 했었다.

연일 개신교의 신자가 급격히 줄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경험이 좀 있다고 생각되어서, 이렇게 주제넘게 글을 적는다.

 

 

 

개신교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었다.

당시의 성당은(현재의 성당의 성격과 많이 다르다) 예수 부활을 믿기보다는 교황이 유럽 전역에 무소불욕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을 때이니까,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보아졌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회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던 원래의 취지를 잃었다는 데 있다.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들을 본받아, 자기 수양에 힘쓰는 불교와 달리 기독교는 하나의 신을 따라 섬기는 종교이다. (이 점에선 성당도 같다. 몇몇 사람들은 성당이 마리아를 섬긴다고 하는데, 성당에서의 마리아는 하나님과 신자를 이어주는 기도의 매체로서의 역할의 성격이 짙다.(ex. 묵주기도))

성경은 그 하나의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경전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 그 성경에 대해서 잘 알아 남에게 설명할 만한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의 경험 중 가장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이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전도를 위해 뛰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에 대한 반응이다.

 

"예수 믿으면 행복해져요~"

 

란 말을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평소에 궁금했던 사항들에 대해서 물으면 얼버무리거나, 혹은 그것이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면

 

" 지옥갑니다."

" 벌 받습니다."

"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란 식의 너무나도 뻔하고도 원색적인 대답만이 돌아오기 때문이다.게다가 저 말은 마치 관심을 가지고 물어 본 이가 뭔가를 너무 잘못하고 살아왔단 식의 인상까지 준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믿고 믿지 않고가 지옥과 천국을 가르는 중요한 키이지만, 교리 공부 없이, 사전지식없이 이런 말 들으면 바로 선입견이 생긴다.

설상가상으로 기독교 신자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인간적으로 전혀 저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수 많은 사람들은

 

" 너희나 잘해서 그 잘난 천국에 가라."

 

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힘들고 지쳐 있는 것이 현대인들인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거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식의 논리가 과연 통할까 싶다.

 

솔직히 믿지 않는 이들이 일요일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교회에 간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늦잠을 자고 육체적으로 쉼을 얻는 것이 일요일인데, 그걸 처음으로 깨고, 옷 말끔히 입고, 교회에 나와 준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준 것만으로도 변화인데. 오늘 날의 교회는 그것을 변화라고 보지 않는다.

잠깐의 환영 이후엔 십일조, 그리고 구역모임등을 통해 압박해온다. 성당이 세례를 받게 한 후에야 교부금을 내게 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믿는 사람들에게 교제와 십일조가 기쁨이지만, 믿지 않고, 이제 막 시작한 이들에게 그것은 굉장히 거북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그거 안하면 지옥간다는 식의 이야기.

그래서 교회에 몇번 갔다가 도저히 짜증이 나고 속물적이어서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허다 한 것이다. 

 

종교로서 기독교가 거듭나려면 세상에서 지친이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런 마당에 기독교는 지친이들에게 오히려, 너희가 안 믿어서, 지금 힘들다는 식의 더한 채찍을 가하는 식의 전도를 한다. 그것이 반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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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곡된 기독교인의 모습은 정말로 사람들을 염증나게 하게 쉽상이다. 기독교인에 대해서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비신자들이 기독교인에게 갖는 반감은 그 수위를 넘어섰다.

 

사실 기독교란 종교를 믿고 들어가보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상당히 청렴하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수양과도 같을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중 남들은 죽든 말든 원하는 기도만 한다.

"이것해주세요~ 저것해주세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에도 언덕에서 그렇게 기도하셨다.

"주의 뜻대로 하소서."

라고...

자기의 죽음을 알면서도 주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순종을 성경은 이야기 한다.

아브라함도 그러하다. 자기 아들까지도 재물로 바치라는 데도, 순종을 한다. (물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살리셨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뜻에 순종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비젼 (꿈,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야망이나 욕심과는 달리 하나님 뜻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달란트(책임, 할 수 있는 일)를 찾는 개념이다.

그래서 "무엇해주세요~ "란 기도가 정석이 아니라, "하나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거에 따르겠습니다." 하는 게 정석이란 말이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전혀 어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돈문제에서는 그러하다.

사실 기독교가 아니고도,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기도하는 종교는 너무도 많다.

민간신앙의 대부분도 부적을 쓰고, 굿을 하는 이유가 세상에서의 부귀영화, 입신양명를 원해서가 많다. 게다가 심지어 이들은 남을 저주까지도 한다.

유교관념에서도, 제사를 지내고, 열조를 모시는 것도, 자신의 밑의 대까지 복을 주기 위해서이다. 열조를 잘못모시면 (가령 묫자리가 안 좋다던지, 제사를 건너뛰었다던지하면) 분명 자신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좀 뭣하지만, 공수레공수거 외치는 불교도, 49제등과 같은 조상숭배사상과 접목되어서, 사람의 죽음과 엇글려서 유교와 비슷한 사상을 내세우며 이익을 챙긴다.

 

그런데 왜 돈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탄압 받는가?

그것은 방금 말한 비젼의 잘못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비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기도의 힘이라던지, 선교라던지, 자기 개발이라던지, 혹은 여기서 말한 물질 이라던지, 모두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잘못된 기독교 신앙은 혼자 비젼을 만든다.

혼자서 노력도 안하고 떼부자가 되는 비젼을 세워놓고, 비신자들에게

'기도하면 난 떼부자가 된다~'

라고 말한다.

물론 사람마다 부자되고 싶은 마음, 없는 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런 것이 비젼이 아니라,

 

"네가 이리도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니, 네게 물질을 줄것이다. 그로서,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라"

 

는 응답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해, 비젼의 개념이 잘못 이해되어, 비신자들이 보기에 기독교인을 탐욕덩어리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또, 남은 죽든지 말든지, 앉아서 기도만 하면 다 된다는 사고. 어떤 잘못도 다 용서 받을 수 있단 식의 사고가 바로 그러하다.

실제로 필자의 할머니께서도 기독교 권사에게 파이낸스사기를 당하신 경험이 있기에, 이것을 100% 이해하는 바이다.

할머님께서는 용서가 안되는데, 그 작자가 나타나서,

"할머니  회개했더니 용서 받았어요. 하나님이 용서해주셧어요. "

란 식의 말만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 앞에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서,

'정말 저렇게 해서 돈을 만지고 싶을까? 저렇게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용서되었다고 떠들고 다니고 싶을까? '

싶다. 

 

게다가 교회내에서 생긴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 또한 교회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목사들은 쉬쉬하고 넘어가길 원하는 경우가 허다한다.

교회란 상과 벌이 분명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셨다. 교회에서의 직분을 잘 하는 이에게는 상이, 그리고 말씀을 어기는 자에게는 벌이 있어야 한다.

과거 중세의 교회는 학교와 교육의 기능까지도 겸비햇었기때문에 신자들이 기독교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 윤리적으로도 어긋난 일을 했을 때에는 분명한 벌이 있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원칙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영화 주홍글씨에서 보듯, 청교도들은 교회의 윤리를 사회의 윤리로 삼아서,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쳐가며 살았다. 그렇기에 상과 벌이 분명햇다.

과거에는 이것이 너무 과하여 인격을 존중치 않는다고 기독교가 탄압받았지만, 지금은 너무 상과 벌의 경계가 없어져 버려서 탄압받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가 바로 그러하다. 신자들끼리 하는 일은 둘째치고라도, 목자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눈을 가리고 아웅하니, 성범죄가 은근히 많을 수 밖에 없다.

신자들끼리 돈이 떼이고도 말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비신자들은 상상하지 못할 거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한탕하려고 교회에 들어와서 새신자인척 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 지도 모를거다.

그래도 우리나라 교회는 그런 이들을 고발하지도, 그리고 잡아서 벌을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을 해도, 아무런 벌이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 손으로 세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교회의 명망과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면때문에 더욱 더 그렇겠지만.

상과 벌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믿음이다. 신자들과 교회는 이를 잘 행하지 못하고 있고, 덕분에 비난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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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분명 한국 교회가 잘못 된 점이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한국 교회가 비신자들에게 비호감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분명 한국 사회도 교회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 물론 교회가 이때까지 잘못해온 사실도 많았겠지만,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꼬일대로 꼬여있다.

 

한 시민단체가 대한민국의 100대 교회를 다 청산해야 된다고 말한 것이 그 일례이다. 교회의 자산이 커지고 하나의 기업화 되어 간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인데, 하나의 커다란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가 종교단체를 향해 이런 식으로 대항한 것은 정말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물론 큰 교회가 목회의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대한민국 교회의 관례도 문제지만, 하나의 종교 형태가 이리도 핍박받아야 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문화유산으로도 정해진 수 많은 유명사찰, 각각 유명한 절들도 만만찮은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명하고, 그 유명한 사찰에서 49제나 천도제등을 지내면서 챙기는 이익도 엄청나며,  또 조계종이나, 천태종같은 불교 종파에서도 스님들이 최고 자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태반인데, 왜 굳이 자기 교회에 만족하는 목자들에 대해서 왜 이런 철퇴어린 발언들이 서슴치 않아지는가?

물론 목사들이 자신의 교회의 규모를 늘리고 부를 축적한다. 문제는 똑같이 그러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에겐 왜 그런 자태가 적용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유독 기독교인들에게만 처절하게 냉정한 그 기준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비신자들은 어떠한가?

회식자리에서 술마시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 욕하고 분위기를 못맞춘다고 하며, 제사에서 절 하지 않는 기독교 신앙이 있는 가족들을 놓고 험담을 주고 받고, 이스라엘 문제로 심각한 중동 뉴스가 나오면, 이스라엘과 기독교 인들을 싸잡아 욕한다. 한번도 성경을 보지 않고도 성경을 욕하는 이가 태반이고. 교회 근처에도 가 보지 않은 이들이 전해 들은 이야기로 모든 교회를 그렇다고 판단하기 일수이다.

 

이것은 전혀 남의 종교를 존중하지,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한 태도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남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전도하려 하는 태도는 앞에서 거론된 바 있지만, 위의 예에서 비신자들도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제사를 지내는 것자체가 유교의 한 형식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종교 행사이다. 다른 종교를 섬기면서, 자신들의 종교는 전통이니 반드시 따르라고 강요하는 꼴 밖에 안된다. 분명히 유교에서 조상은 기독교에서의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 그 수가 하나냐, 여럿이냐의 차이가 잇을 뿐. 

 

종교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가? 아랍은 알라신의 성전과 무슬림이란 종교를 위해 자살테러를 할 정도이다. 종교가 대립되면 목숨이 오갈 정도의 힘과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힘이다. 작은 가정에서이지만, 두가지 종교를 한 사람에게 강요할 순 없는 것이다.

분명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이다. 유교가 하나의 종교임이 자명하기에, 기독교와 함께 섬겨질 순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절충하여, 추도예배를 드리게 한다. (성당에서는 추도미사라고 일컬어진다) 분명히 한국 사회에서 제사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고, 심지어 얼마전까지 제사권을 가진 장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 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에선 차례때면, 음식하는 것도 돕고, 모든 과정에 참여는 하지만, 절만 하지 않을 뿐, 가서 기도를 한다. 조상을 존경하고, 천국에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사실 정통 기독교에서는 남의 종교의 제사를 돕는 행위자체도 타신을 섬긴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제사에 참여하는 것까지, 그리고 추도예배를 해, 조상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이것이 과연 기독교 신자들이 조상을 존경하지 않는 것인가?

그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너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란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게다가 자유의사가 분명한 사회에서도, 종교를 이유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을 험담한다.

술이 없다고 굳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가져온 병폐중 하나인 패거리 문화이다. 모임 중에서 튀거나, 다른 것은 반드시 도마에 오른다는 말이다.

심지어 한 외국인은 한 사설에서 한국의 패거리 문화는 그 수위가 넘어섰다고 했다. 술을 마시지 않거나, 그 모임에서 자신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바로 집단 따돌림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쯤되면 분명 비신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기독교 모임이나, 설립 학교, 혹은 직장 가면, 기독교가 아니면 견디기 너무 어렵다고. 기독교 안에서도 패거리 문화가 있다고. 기독교가 아니고서야 얼마나 그 안에서 힘든 줄 아느냐고.

그럼 사회는 어떠한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게끔 만든 것은 바로 사회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문제만 나오면 이렇게 이야기 해서 미안하지만 무식하기 그지 없는 몇몇 누리꾼들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기독교가 같다고 말한다.

제발 공부하기 바란다.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아서 크리스마스도, 부활절도 지내지 않는 완젼 다른 종교다. 

오히려 이슬람교가 예수를 한명의 성자로 여길 정도이다. (이슬람교의 친구중 하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자가 예수와 모세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니, 제발 공부 좀 했음 좋겠다.

 

 

 

개신교의 잘못된 점은 많다. 아니, 우리나라 개신교 신자가 잘못이 많다.  종교는 분명 다른 교리를 이야기 하는 데 잘못된 식의 해석과 또 행동의 문제로 인해, 비신자들에게 비호감이 된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로 이번 조사에서 우리 나라 개신교 신자 수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 확연하게.

잘못된 점을 이번 기회를 거울 삼아 고쳐나가지 않으면 감소세는 더 극명하게 들어날 것이다.

이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교회가 그대로 남는다면 그 감소세에 대해서 불평도, 불만도 표할 수 없다. 그렇게된다면 현실을 받아드려야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변화하려는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적어도 중립적이어야 한다.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배척적이며, 그래봤자란 식의 태도는 교회와 사회의 골을 더욱 더 깊게 할 거다.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냥 에세이 형식으로 쓰다 보니, 존대어로 쓰지 못한 점 이해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추천수180
반대수0
베플김창렬|2006.12.01 10:43
글 잘 읽었습니다, 교회도 사람이 있는 곳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청렴하고 깨끗하고 그럴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님께서 언급은 하지 않으셨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소외된 많은 사람들의 희망입니다. 세계 복지에 가장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것도 개신교입니다. 어느 곳이나 어느 단체나 한 부문만 바라보고 비판받지 않을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님께서 말씀하신 개신교를 믿는 사람의 문제만 으로 개신교 자체를 비판하는것은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위에 문제로 제기된 부분은, 네 반드시 고쳐 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단면적인 부분만으로 마치 개신교인 모두가 그렇다 하는 식의 접근은 위험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님께서도 교회를 다니셨던 분이시니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개신교 인들을 바라보며 비판보다는 안타까움으로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것이 "악의 논리로써 비판하는것보다 선한 일을 하는것이 유익함"을 실천하는 길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개신교에 관심을 가져주시는만큼 더 깨끗해지고 따뜻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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