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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번째 이야기..

고현아 |2006.12.01 22:13
조회 26 |추천 0

#. 김 윤무의 집

 

 

 “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버지가.. 무슨 빚이 있으세요? “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아버지와 마주앉은 김 량.

갑작스런 김 대감의 말에..어안이 벙벙하다.

 그때 껏.. 아버지 재산만 믿고, 유유자적하던 그였던 지라..

 빚이란 말에눈 앞이 깜깜해지는데...

김 대감..그런.. 김 량을 바라보며..

 

“ 이 녀석아.. 니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언제까지.. 혼례도 올리지 않은 체.. 그리 지낼 것이냐?

자식을 아끼면.. 더욱 모질게 채찍질하라 했거늘..

 내가 너를 잘못 키운 게지...

잘 들어라..

니 놈이.. 돈 몇 푼에 팔아넘기려 했던 공길이가..

내 핏줄이다.

그러니까..

니.. 동생이자, 우리 집안의 셋째 아들이란 말이다. “

 

김 대감을 빤히..바라보고 앉은 김 량.

 제 귀를 의심하며..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다시 묻는데..

 

 

“ 아버지.. 제가.. 한량짓거리 하고 돌아다닌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모지란 놈이라.. 아버님 맘고생 많이 하셨지요.

허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공길이가.. 공길이 놈이.. 제 아우라고요?

아버지.. 아들이라고요?

무슨 농을.. 그리.. 아! 그게 말이 됩니까? “

 

깊은 한숨을 내쉬는 김 대감..

 눈 밑에.. 짙게 갈린 그늘이.. 그를 더욱.. 수척해 보이게 한다.

 

 그도.. 많이 늙은 것이다.

 

“ 아마.. 그때의 나도.. 지금의 너 같았던 게지.

세상 겁나는 게 없었고, 거리낄 게 없었다.

 내가..처음으로 연정을 품었던 여인이였다.

그때 이미 난.. 집안에서 정해준 니 어머니와 혼례도 치뤘고,

 너와 니 형도.. 낳았을 때였지..

차라리..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시작도 말아야 했을 것을..

그 사람.

 나 때문에..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살았다.

내 욕심 때문에..

어린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가진 건 이름 뿐인 가문이였다. 

 니 어머니 가문의 재력이 없었다면, 

 전쟁터 같은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후처를 들여.. 장인의 눈 밖에 난다면..

 나한텐.. 득 될게 없을 거란 생각에 ..

 그녀와 공길을.. 감춰두었었다.

 

 공길이 녀석이.. 자랄수록.. 두려웠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있겠느냐.. ?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보다는..

내 허물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해서.. 화근이 될지 모른단 생각에..  그녀에게서 길이를 데려왔지.

빼앗아 왔단 게.. 더 맞을게다..

그 어린 것에게..

내가 아비란 것이 알려지면.. 다신 지 어미를 만나지못할 거라며..

 잔인한 말까지.. 서슴치 않았지..

 내 자식을..내 집에서..종살일 시키면서도..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깟 체면이 뭔지..

 그 아이가.. 도망한 다음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겼었지..

 허나..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기는 커녕,

후회와..번민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이제라도..

 그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구나.

 

관직에서 물러나겠다.. 주상전하께..말씀을 드리고 오는 길이다.

어차피.. 물러날 때도..되었지..

 나도..이젠.. 많이 늙었다..

 남은.. 여생.. 속죄하며.. 조용히 살다 가고 싶다. “

 

언제나,

남에게 흠잡힐 일은..절대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선비중의 선비라 하였고, 고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청렴한 관리였다.

 헌데.. 그런 아버지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었다?

그것도..

한때.. 지 놈이..욕정에 눈이 멀어.. 범하려 했던..

제 집안 종놈이.. 지 놈과 피를 나눈.. 형제였다니..

이걸 지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  그러면서.. 그러면서.. 그렇게.. 제게는 모질게 대하신겝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지요..

 아버진..제게 단 한번도..따스히 웃어주신 적..없었습니다.

아버지께..늘.. 저는.. 부끄러운 아들.. 못난 아들 이였지요.

그 놈이..불쌍하십니까?

저도.. 불쌍한 놈입니다!

 왜! 평생 아버지 곁에 살았던 제가..그놈만도 못합니까!

그놈을 그리 만든 건.. 아버진데..

왜 제가.. 그 놈한테 미안해야 합니까?

왜? 왜.. 이제와서.. 제게.. 그 짐을 떠넘기시려는 겁니까?

지금.. 제 자릴.. 내놓으라 하시는 겁니까?

아뇨.. 절대..그리는 못하지요. “

 

이제.. 세상에.. 아버지 김윤무의 핏줄은 저 하나라고 생각한 김 량.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식 이라해도,

 세상에.. 핏줄이라곤 저 하난데.. 어찌하겠는가?

유일한 상속자인 그가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이 정도의 재산이라면,

 제 놈 안위를 위해서만.. 평생 유유자적 쓰고 산다 하더라도..

모자랄 일은 없을 듯 했으니..

가문의 대를 잇거나, 가문을 위해.. 관직에 올라 공을 세우는 것 따윈

관심 밖의 일이였다.

그렇게.. 오로지 제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던 그였는데,

 그 모든 걸.. 뒤 흔들, 공길을.. 제 손으로 데리고 들어왔으니..

후회만.. 밀려오는데...

 그런 그를 보고 앉은.. 김 대감..

 차라리.. 평범한.. 백성 이였더라면..

 서로.. 머리 맞대고 앉아,  밥 해먹고, 자식들 재롱보며,

마누라 구수한.. 잔소리도..들어가며..

 그리 살았더라면..

 이리.. 한 평생.. 살아온 게.. 허무하고.. 헛헛하진 않았을 것을..

제 부모보다, 부모의 재산이..더 눈에 들어와,

 눈 시퍼렇게 뜨고,, 아비에게 덤벼드는.. 제 아들놈을 보며..

 할 말을 잃은 김 윤무.

 오랜만에.. 마주 앉은.. 부자는.. 한동안.. 말이 없다.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제 아버지를 쏘아보던 김 량이..

 무슨 생각에서 인지..

밖으로 뛰쳐 나가는 데..

 

 

#. 늙은 어멈의 방.

 

 

이젠 구부정하게.. 줄어들어버린 작은 키의 늙은 어멈이..

 하루 일을 마친 후.. 고단한 몸을 누이는.. 그녀의 작은 쉼터.

꽃 같은 나이에 이곳에 노비로 팔려와서,

 지금껏 이집의 두 아들을 길러내고,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기까지..

 그녀가 세상에 와서..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누덕누덕 천을 기운 이불 한 채와,

 달랑 두벌의 낡은 옷.

그리고.. 오래된 나무 비녀하나와, 이 빠진.. 참빗하나..

 이런 것들이..전부였다.

 

한 겨울 뜨끈한..방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익어가는 메주냄새처럼..

꿉꿉하고.. 오래 묵은.. 정겨운.. 그녀의 내음이..군데군데 베인,

이불속에.. 몸을 누인 공길이..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잠이 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가슴께까지.. 이불을 끌어 덮어주고는.. 가만히.. 토닥여 준다.

 그 손길에.. 따스함이..묻어난다.

 

 스물이 넘어서야 주인마님이 짝을 지어준, 일곱 살 차이나는

순박하기만 한 사내와 혼인해.. 두어 해 남짓을 살았다.

그래도..떠올려보면,

살갑게 한번 안아준 적도 없는.. 지아비라도..

 살 맞대고 살아봤던 그때가.. 그녀의 초라한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 듯하다.

 

 잔병치레한번 없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짱돌마냥

 튼튼한 사내였는데..

소먹일 여물을 준비하려, 볏짚을 모아다 놓고, 작두질을 하다

손목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했는데..

 그 상처가 어찌 도졌는지..낫지를 않고, 며칠을 고열로 앓더니만,,

 그 길로 허망하게 가버렸다.

 아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지아비 앞서 보내놓고, 한참을 그 생각에 가슴 쳤었더랬다.

허나, 자식 낳아 놓으면 뭐할게냐?

지 부모 팔자 닮아, 종놈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 자식이.. 배고파 울어대도,

주인댁 도련님한테 먼저 젖을 물려야 할게 종년의 팔자이거늘..

지 자식이.. 제 눈앞에서 길가에 개 마냥, 돌팔매질을 당해도,

 멀쩡히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이.. 종 이거늘..

차라리..

더러운 이놈의 팔자는..

내 목숨 끊어지면 그걸로 끝내잔 생각에

좋은 것도 없이.. 싫은 것도 없이..

그냥 그리 살아온 인생이였다.

 

천한놈 같지 않게.. 꽃같은 얼굴을 하고선

길이가 처음 이 댁에 들어왔을 때

해사하게 웃는 녀석이 자라나는 걸 보면서..

 내게도..저런 아이가 하나 있었다면...

 이 느릿느릿 지겨운 인생도.. 금세 지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

 가끔 하곤 했었다.

 그 망나니 같은 주인댁 도령한테.. 몹쓸 짓을 당하고

 흠씬 몰매를 맞고는

모진 칼바람에.. 날개 부러진 어린 새 마냥 떨고 있던 길이가,

 장생과 함께 .. 이집 문턱을 넘어설 때..

 다시 못 볼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섭섭한 맘에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어린 너만은.. 세상 밖에서 훨훨 날아오르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더랬다.

 

 잠든 길이.. 얼굴을 내려다보며..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늙은 어멈은.. 생각한다.

 

 ‘ 얼마나.. 힘들었누..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바깥세상이.. 좁은 이곳보다,

 고달프면 고달팠지, 쉽진 않았을 터인데..

 어찌 살다,, 다시 얘까지 흘러들어 왔누.... ‘

 

깊은 잠에 빠진 길이를 두고는, 

 느릿느릿 밖으로 나온 어멈.

밥 한 끼 먹이지도 못하고, 그냥 재운 게 맘에 걸려서,

 깨어나면 뭐라도 먹일 것이..있나도 살펴보고,

 자리끼라도 가져다 둘 요량으로 나왔는데,

저 앞에서.. 누가.. 씩씩대며, 그녀 앞으로 걸어온다.

 

 김 량이다.

 

 순간, 늙은 어멈, 공길이 잠들어 있는.. 제 방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얼른.. 김 량 앞으로 다가선다.

 

 “ 공길이놈.. 얘 있는거야? ”

 

“ 도련님.. 어쩐 일이셔요.. 밤도 깊었는데..주무시질 않구..

녀석.. 도련님이 데려오셨소?

 세월이 이리 흘러.. 다시 오니, 낯설었던지..

 마당에 멀뚱히 서 있길 래..내가..데려다 재웠소..

 어여 가 주무시고, 날 밝으면 찾으셔요.. “

 

“ 유모는.. 저리 비켜서!

내가 이놈 만나.. 담판을 지을 게 있어.. “

 

늙은 어멈을 휙.. 떠밀은.. 김 량..

방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어멈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그 뒤를 따르는데..

방안에 들어선.. 김 량. 잠들어 있는 공길을 내려다보며,

 

 “ 이봐! 일어나봐! 응!

니놈은 편히 잠이 올지 몰라도..

 난.. 니 놈 때문에.. 이리는 못자겠으니

일어나 보라고!! “

 

그놈 목소리에.. 공길.. 깜짝 놀라.. 일어나 앉는데,

뒤따라 들어선 어멈이.. 김 량을 잡으며 말한다.

 

“ 거참.. 승질한번 드럽소!

 지금 저눔 얼굴 보믄..이러고 싶소?

사람.. 야박하다하다.. 도련님 같은 분도 없을 꺼요!

쥐도.. 도망갈 구멍은.. 열어놓고, 쫓으랬소..

뭔 일 인진 몰라도.. 좀.. 적당히..하시구려.. “

 

김 량.. 어멈을 내려다 보며,

 

 “ 유모가 몰라 하는 소리야!

이놈 때문에.. 내 팔자가 진창에 빠지게 생겼다구!!

 지금 내가 이놈 때문에.. 돌기 직전이란 말이야!! “

 

공길.. 이불을 한 켠으로 밀쳐내며, 어멈에게 고개를 들어,

가만히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전 괜찮으니까.. 잠깐만.. 자리 비켜주실래요?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 같은데.. 하시죠.“

 

김 량.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공길이.. 더..얄밉기만 하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뭐라 한마디 더 하려는데,

 공길.. 김 량을 쳐다보며,

 

“ 도련님!

 이 밤에 기어코, 자고 있는 종놈들 전부다 깨워서

지금 도련님이 제게 하시려는 얘길.. 다.. 듣게 만드시려는 겁니까?

그리하는 게..

 도련님께.. 더 해가 되겠습니까?

이 놈에게 더 해가 되겠습니까?“

 

공길의 말에..

 김 량. 흠흠.. 헛기침을 한 뒤,

 어멈을 밖으로 나가 있으라며, 공길 앞에.. 앉는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던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공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늙은 어멈..밖으로 나가고,

 김 량.. 입을 연다.

 

 “ 네 놈은.. 언제부터..알았더냐? ”

 

“ 무엇을 말입니까? ”

 

“ 네 놈이.. 내 아버지의 핏줄이란 것 말이다! ”

 

“ 훗.. 누가 그러더이까?

 체면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시는.. 김대감께서..

 이..미천한 것이.. 대감의 씨라.. 말씀하시더이까? “

 

“ 이놈!! 니가.. 지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게 아니더냐?

광대노름이나 하고 살게 했으면 되었을 것을..

 니 놈을 내 손으로 데려왔으니!!

니놈이..이젠.. 내 자리까지 넘보려고?

어림도 없다!! 어림없는 소리 마라! “

 

공길.. 씩씩대는 김 량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 참으로.. 딱도 하십니다..

 대감께서 소인을 핏줄로 인정해 주셨다 한들..

 무에 달라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어쨌든..인정받지 못하는 사생아일 뿐입니다.

 이런.. 소인이..누구의 자릴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하하.. 지나가는 개가 다..웃겠습니다..그려.. “

 

김 량.. 공길을.. 쏘아보며,

 

 “ 그래! 그럼.. 넌.. 내 아버지의 재물이나, 양반의 신분엔 관심이 없다?

그말을.. 어찌 믿느냐?

 천 것으로 평생을 살다 죽을 수도 있었다.

헌데,, 서출이라도, 양반 댁 자제로 살 수 있는 기횐데..

그걸 포기하겠단 그 말을 내..믿으라고? “

 

“ 그럼. 보내주십시오! ”

 

김 량. 공길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을 살핀다.

 

 “ 보내달라? 다시.. 광대 짓거리나 하며.. 살겠다.. 이말이냐? ”

 

“ 그러합니다.  

도련님이 물려받게 될.. 재물이나,  그.. 대단한 양반신분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그 모든 거..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절 보내주십시오.

 허나!  청이 있습니다. “

 

“ 청이라? 흐흐..그래.. 아무것도.. 안 챙기고..나가기가 억울할테지.

얼마나, 쥐어주랴? “

 

“ 절 보내주시고,  대감께는 다신 절 찾지 말아달라 해주십시오.

또.. 저와 함께.. 도망했던.. 노비 장생을.. 면천하여 주십시오.

도망한 노비라는.. 족쇄 때문에..

저와 같은.. 이런 꼴 당하게 하고싶진 않습니다.

 그것만.. 들어주신다면, 지금 바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김 량.. 제 귀를 의심하며.. 공길을.. 바라보더니..

 

 “ 하핫... 그래..

 내..전에도.. 눈치 챘지만, 니놈들.. 알 수가  없는 놈들이야.

 그리도.. 그 놈이..네게 중한 놈이더냐?

그래! 그깟 노비문서쯤.. 내.. 지금이라도 태워 없애주지! “

 

공길과, 김 량.. 피를 나눈 형제이나,

 절대로.. 한 치도 가까워 질 수 없는 두 사람...

그렇게.. 둘 사이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한 감정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김 대감이.. 들어온다.

두 사람.. 대감을 보고는, 일어나 대감을 맞는데..

 방 안으로 들어선.. 김 대감. 둘을 제 앞에 앉힌 후, 무거운 입을 연다.

 

 

 “ 이젠.. 세상에.. 달랑 둘 뿐인 피를 나눈 형제인데,

너희 둘을 이런 악연으로 만들어버린 건.. 모두.. 내 탓이다.

 량아.. 이깟.. 재산이..그리도 중하더냐?

허긴.. 네겐 이 아비보단, 재산이.. 중하겠지..

 그럼.. 량이 네가 바라는 건, 이 아비의 재산뿐이고,

공길이.. 네가 바라는 건.. 단지.. 널 놓아주는 것과,

니 벗.. 장생이의 면천뿐이더냐?

아비라..말할 자격도 없으나,

 지난.. 세월동안.. 단 한번도.. 네게 뭔가 해준 게 없으니..

난.. 니가 앞으로의 시간이나마,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말이다.. ?“

 

김 량.. 대감을 바라보며,

 

 “ 아버지.. 이놈은.. 평생을.. 천한 신분으로 살아온 놈입니다.

 노비에서 면해준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노비출신인..이 놈을 아버지 자식으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어차피.. 집안에도.. 아버지께도..누가 될 뿐입니다.

 이놈은.. 그냥.. 광대로 자유로이 사는 게 원이라 하지 않습니까?

 광대 놈이.. 집에 무에 필요하고, 재산이 무에 필요하겠습니까?

이 놈이 원하는 데로 해주시지요!

 어차피.. 집안을 이을 사람은 저 뿐 입니다.“

 

욕심에 눈이 벌게서, 아비에게 핏대를 세우며, 말을 잇는.. 김 량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내쉬는 김 대감과 김 량을

 번갈아 바라보던 공길.

 

“ 그럼... 절 어찌 해주실 건지요?

노비문서를 없애고, 절.. 면천시킨 뒤,

 아들로 인정이라도 해 주실 겁니까?

이 집안에서..

도련님을 형님이라 부르고, 대감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리.. 살게 해주실 겁니까? “

 

갑작스런.. 공길의 말에.. 김 량, 눈을 번득이며,, 노려보더니.

 

“ 이놈..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그래.. 재물 마다하는 인간이 있겠느냐?

왜? 아무것도.. 안 갖겠다 한말이.. 벌써 후회가 되더냐? “

 

공길.. 김 량을.. 바라보며..

 

 “ 후훗.. 뭘 그리.. 역정을 내시는지요... 형님..

(공길.. 김 량을.. 흘낏 쳐다보며, 마치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웃는다)

자식을.. 십 수년간 종놈으로 부린 아버님 마음도.. 헤아려 주셔야지요

이제라도, 부모 노릇 한번 해보마고 저리, 말씀을 하시는데..

 들어드리지 못할 까닭이 없질 않습니까?

 천한 놈이라 여겼던.. 제 몸에도..

 고매한 양반의 피가 흐른다는데..

저라고, 평생을.. 떠돌며, 쉰밥만 얻어먹고 살아야 한단 법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태연하게..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잇는.. 공길이..

낯설다.

 

‘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

 

날이 선.. 칼과 같은.. 공길을 곁에 앉아 바라보며,

김 량.. 뭐라 대꺼리 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거리며..

대감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데..

 

“ 길아.. 넌.. 처음부터, 노비가 아니였다.

 노비문서 따윈.. 없었단 말이다. “

 

김 량..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대감의 말을 듣고 앉은 공길의 눈빛이.. 흔들린다.

 

“ 처음부터, 널 당당히..내 핏줄이라 밝히진 못했으나..

 언젠간.. 꼭.. 그리하려 했었다.

니가.. 도망하여, 결국 때를 맞추지 못했으나,

노비문서까지 만들어.. 내 자식에게 족쇄를 채울 정도로

잔인한 애비는아니다.. 길아.. “

 

공길.. 대감의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피식 웃어버린다.

 

“ 대감마님... 아니.. 아버지!

제가 지금 그 말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결국 또.. 제게로.. 책임을 넘기시는 것입니까?

 돌이키려 해도.. 기회가 없으셨다구요?

아니요..

제가.. 이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 지붕 아래서 살아온

십년 가까운 시간동안,

 기회는 무수히 많이 있었습니다.

 단지..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 외면했던 것..뿐 일 테지요.\

그깟 종이조각.. 처음부터 존재했든..하지 않았든..

어쨌든. 전.. 지금껏..노비출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원하는 걸.. 다.. 들어 주시겠다 하셨습니까?

그럼.. 제게 전부 다 주십시오!

아버지가 가진 전부 다..말입니다.

 그리고, 떠나십시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처럼, 지금까지 못 누렸던 것.. 다 누리며..

호의호식하며.. 살아보렵니다.

그리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김 량. 곁에 앉은 공길의 멱살을 부여잡으며, 벌떡 일어서서,

 당장이라도 공길의 얼굴로.. 날려버리려, 주먹을 불끈 쥐는데..

김 대감.. 그 모습을 보며, 버럭! 호통을 친다.

 

“ 이놈! 니 놈이 이젠.. 정말 애비도 뵈질 않는게냐!

어디. 애비앞에서.. 주먹질을 하려느냐?

어서 그 손 놓지 못해!!!“

 

좁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김 대감의 호통에..

김 량.. 부들부들..떨며, 꽉 움켜쥐었던.. 손을 풀고,

공길.. 마른 기침을 두 어번 내 뱉으며, 자리에 앉는다.

 김 대감..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 그래..

 내.. 그렇지 않아도,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이젠.. 나도.. 버둥거리며 사는.. 세상에.. 미련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재산을 정리한 뒤, 암자로 들어갈 참 이였다.

 똑같이.. 내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줄 터이니,

 량이 넌.. 서운타 여기지 말고, 그것을 밑천으로 네 힘으로 살아보거라

( 대감. 공길이.. 앞으로 다가 앉으며... 공길의 손을 잡아보는데..)

길아.. 넌.. 본디.. 착한 아이가 아니였더냐..

그리.. 가슴에.. 날 세운 칼을 품고 있으면, 너만 다친다..그리 말거라..

 니.. 어머니.. 며칠 전..날 찾아왔었다.

많이.. 야위었더구나..

 어머니.. 잘 보살펴드려라.. “

 

(공길의 뺨으로 손을 가져다 대자,

 공길.. 고개를 돌려.. 그 손길을.. 외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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