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연습’이다.”
조정래의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 듯하다. 동네 도서 대여점에서 그의 『태백산맥』을 빌려 읽으며, 한 여름 밤을 꼬박 지새웠던 기억이 오롯하다. 7권 이후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졌던 기억도 나고, 나중에 그의 책을 모으다 이 빠진 부분을 채우려 헌책방을 돌았던 기억도 난다. 각종 이론서들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었지만 다른 어떤 이론서보다도 현장감 있고 구체적이고 인간적으로 현대사를 보여주던 소설이었으니... 그런데도 그 이후 그의 『아리랑』과 『한강』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거운 주제로부터 탈피하고 싶다는, 맑스 레닌주의를 공부할 때와는 또다른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고, 그 즈음에 그의 대하소설들이 연거푸 쏟아지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새롭게 도착한 조정래의 소설은 『인간연습』이다. 그동안 그가 너무나 분명하게 다루었던 강건한 주인공들에 비하여 이번에 그가 다루는 인물들은 어찌보면 한없이 초라하다. 장기수 그러나 이미 전향한 장기수들의 출소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이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것은 그래서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자신들이 철썩같이 믿었던 사상적 신념, 그 신념의 고향격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 그리고 풍문처럼 들려오는 북녘 사회의 고행 중인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30년 동안 감옥 속에서도 지켜오던 사상에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만 한다.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가 낳은 절대권력의 부패,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욕망을 간과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도덕적 인간으로의 개조에 대한 잘못된 믿음, 인간 행동을 통제하려 한 당의 자만, 당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선언으로 비롯된 당의 오만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의 몰락은 폭력배들이 동원된 강제 전향 공작만큼이나 그를 미궁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원들의 부패와 타락의 뿌리는 이기주의다. 이기성이라는 본능의 힘은 무섭다... 성직자들이 이기심이라는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당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전향 후 출소한 박동건의 죽음을 맞아 더욱 증폭되던 주인공 윤혁의 혼란과 공포는 그러나 기준이와 경희라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한다. 오랜 시절 독방에 갇히면서 생긴 폐쇄 공포증, 그리고 강제 전향에 동원된 폭력배들의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증이 겹치면서 병처럼 얻었던 어지럼증은 그들 부모 없는 어린 남매들을 껴안으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사회주의야말로 자본주의의 몰락을 억제하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다는 것,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자본주의의 수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사회주의 몰락에 앞서 자본주의가 몰락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자신의 혼란을 정리한다. 사라져버린 희망에도 불구하고 품 속의 아이들처럼 따뜻한 희망을 다시금 품게 된 윤혁은 최선숙이라는 새로운 동지를 얻고, 그가 운영하는 시골의 보육원에서 새로운 인간적인 삶을 시작한다. 실패투성이 ‘연습’ 같았던 그의 삶은 이제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라는 ‘실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