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 높이 들고 벌 설 각오로 쓴 해바라기 감상문
영화는, 사람 빼곡히 들어찬 스크린에서
옆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펴가며 봐야
제대로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는게 사실이다.
이누무 동네의 극장은
당췌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울고 웃는 사람도 발견하기 어렵고,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심지어는 엔딩크레딧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서 까만 자막 바라보고 앉아있으면
청소하는 아줌마가 마구 눈총을 보낸다.
정말................... 짜증나는 동네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그 탓일까?
고백하지면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갸우뚱 갸우뚱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왜 저 장면에 저런 이야기를 하지?
왜 쟤들이 나왔을까?
저건 군더더기 같은데......
태식이 얘기를 좀 더 하지.
덕자씨 이야기를 조금 더 하지.
아~ 집중안돼....
아~ 몰입안돼....
아~ 눈물 안나와....
그 뒤로도 몇번을 더 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카페사람들도 그렇고 네이버에서 봐도 그렇고
다들 슬프다, 제대로다, 감동적이다... 난리인데,
왜 유독 나만 몰입을 못하고 이런 시금털털한 감정일까!!!!!!!!!
계속 고민을 했다.
내 영화 취향이 까다로운 걸까?
내가 분석적으로 영화를 보는걸까?
내가 눈물이 없는걸까?
나? 장르 불문하고 아무거나 뜬다 싶은거 다 본다.
취향이라곤 개뿔도 없다.
분석? 내가 젤 못하는게 분석이다.
그저 한장면 삘 받는거 있으면 그냥 올인이다.
눈물? 나는 슛돌이가 골인시키는 장면만 봐도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뭐가 문제일까?
1. 영화 해바라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
한 남자의 소박한 이 다짐들과
호두과자 먹기,
대중 목욕탕에서 목욕하기,
선물하기 따위의 사소한 계획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영화.
기다림을 꽃말로 삼고 있는 해바라기는
항상 해를 향해 서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영화 해바라기의 주인공,
덕자와 태식은
결코 양지의 생명답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솔직히 가발쓴 태식의 회상장면만으로는
우발, 또는 실수라는 것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10년동안 음지에서 울며 후회하고 지낸 태식과
어두운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써 태식을 양지로 이끌려는 덕자.
그들의 가족애가 시작되기 전, 나는 목젖이 따끔거렸다.
아, 좋아.... 이 느낌 쭈욱 가는거야....
꼼꼼하게 끝까지 채워 입은 후줄근한 남방 셔츠를 입고
어색하게 자른 까까머리를 한 태식이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에 하염없이 눈길을 주다가
주섬주섬 호두과자를 꺼내어
볼이 미어져라 먹어대는 그 장면에서부터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시골길을 걸으며,
낯설은 표정으로 두리번 거릴때,
태식의 얼굴 때문에,
아니 래원의 눈동자에 비친 그 어눌함때문에
나의 눈가가 촉촉해져 오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된 후부터
마지막 분노의 태식으로 돌변하기까지
태식은 한번도 그 아름다운 어깨를 곧게 편 적이 없다.
자신의 처지가 지하 땅굴 아래,
밑바닥 진창에서 뒹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햇살이 비춰지는 곳까지 끌어올려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망극하다는 표정으로
태식은 시종일관 상처입은 자신의 껍질 속으로
움츠린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식의 그 구부린 어깨가 더할나위 없이 슬펐다.
태식의 불안에 흔들리던 그 눈동자가 서글펐다.
2. 배우 김래원과 가엾은 오태식
연기라는 것을 하지 않고
그저 진심으로 행동을 했더니 오태식이 되어있었다는
래원의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와 더불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홀로서기를 해 왔다는 외로움과
어린나이에도 의논상대 없이 혼자 모든걸 해결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배우 김래원은 아마도 오태식에게서 그런 외로움을 보았던 것 같다.
오태식이 시종일관 웅크린 어깨로,
두 팔을 맥없이 늘어뜨린 무기력한 모습으로
운동화를 땅바닥에 직직 끌며 다니던 발걸음으로
그러한 외로움의 깊이, 쓸쓸함의 깊이는
십분 표현이 가능했다.
아울러 래원의 표정에 깃들인 불안가득한 눈동자에도.
김래원이 그의 입으로 나는 오태식 그 자체였다고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영화 속에서는 김래원의 모습은 없었다.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그 아름다운 웃음도 없었다.
특유의 확신에 가득찬 나지막한 중저음도 없었다.
다만,
오태식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래원의 연기력이야 이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일반인들도 대략 감을 잡고도 남는 부분인데,
3, 4년 이상 팬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초미의 관심을 들이대던
나는(!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김래원이 변했다."는 문구 조차도
새로울 게 없었다.
그는 늘 변화하고 있었으니까.
나의 관심사는 과연, 그 변신의 모습이
이전의 작품들에서처럼 "김래원"과 잘 어울리느냐였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다시 확인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김래원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오태식이 김래원이고
김래원이 오태식이었다는 명제에 대해.
미분과 적분의 수학공식처럼 잘 알 수 있었다.
가엾은 오태식의 모습만이 스크린을 가득채우고도 남았으니까.
3. 어머니, 그리고 열혈남아
연기자 김해숙의 자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원빈이나, 송혜교, 최진실, 미칠이까지 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녀는 인상깊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무수한 배우들의 이름 속에
태식이로 변한 김래원의 이름을 집어넣는 일은,
김래원에게나 김해숙에게 모두 축복인 것은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필연적으로 느껴지기 조차 한다.
김해숙의 덕자씨를 보면서 나는
끊임없이 비교되던
열혈남아의 점심여사(나문희)보다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속에서
살인범 "윤수"를 용서해 주던 파출부 어머니(김지영)를 떠올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그 어머니는
사형수 윤수에게 떡을 주면서 왜 죽였니... 라며 울부짖었었다.
내 자식을 죽인 살인범에게 주는
가슴 시린 용서.
영화 "해바라기"에서의 덕자씨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는 말 대신
낡은 수첩을 건내며
태식을 자식으로 삼는 용서를 보여준다.
내 자식과 비슷하니까 '용서한다'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니까, 사람이니까 '용서하고 감싸안는다'는
어머니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문에 나는 한핏줄 영화로서
오히려 "열혈남아"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더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열혈남아.
열혈남아가 있었지.
개봉 전부터 "해바라기"와 "열혈남아"는 비교대상이었다.
조폭에게 깃든 모성애라는 컨셉이,
태식의 캐릭터와 설경구가 분한 재문의 캐릭터가,
덕자의 모성애와 나문희가 분한 점심의 모성애가
줄곶 저울질되곤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는
나 역시 비슷비슷한 조폭 영화의
또다른 변주곡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고 난 지금에는
두 영화가 지닌 서로 다른 색깔을 느낄 수 있었다.
열혈남아의 색깔이 피빛으로 물든
찬란한 진달래 색을 지닌 모성이라면
해바라기의 색깔은,
노랗다 못해 갈색에 가까우리만치
바싹바싹 타들어간 모성이라는 느낌이었다.
점심 여사의 모성애는 비열한 직업을 가진 아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아픔이었고,
덕자씨의 모성애는 정직하게 살아보려는 아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채 풀어내지도 못한 아픔이었기 때문에
두 엄마가 보여주는 눈물의 느낌이
다소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처음 태식의 어리버리한 생김새에 울컥했다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만족할 만큼의 사랑을 주지 못하고
태식을 원없이 안아주지 못한 채
비명횡사한 엄마의 마음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4. 알수없는 내 마음
호두과자를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초반 장면에서도,
엄마를 잃고 오열하며 내밷던 태식의 "엄마"소리에서도,
태식이 무던히도 참고 참아 터트린 살의 가득한 오라클 씬에서도,
억눌리고 억눌렸던 태식의 아픔과
가족에 대한 사랑, 죄책감 같은 것이
가슴에 와 닿긴 했다.
목구멍이 뜨끈해져 오기는 했다.
그런데 끝까지 나를 괴롭힌 그 미진한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해바라기의 대본이나 연출력이
언론이 평하는 것 만큼 훌륭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태식이 그렇게 상처입으면서까지
착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나,
덕자씨가 자식을 죽인 원수를
그토록 절절하게 감싸 안으려는 시도들이
대사 몇줄, 에피소드 몇개로 설명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저 태식이와 덕자가 서로 용서하고 착하게 살기로 했으니
관객 여러분! 다 이해해 주라는 식의 강요처럼 느껴져서 아쉬웠다.
뿐만 아니라 태식과 덕자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 못된 녀석들 또한
너무 숫자가 많았다.
조연급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 덕분에
각각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특색없는 캐릭터로 전락되어 버린 것도 아쉬움이 크다.
양기면 양기, 창무면 창무, 거기에 희주를 괴롭히는 꼬붕 녀석...
줄줄히 특색있는 캐릭터라고 나와서
고유한 성격을 그러내고,
마지막에 기막힌 반전이라고 내세운
어설픈 변절자도....... 당황스러웠다.
너무 많은 조폭이 등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창무와 양기의 빛깔 마저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태식에게 희망의 태양이 되는 희주 역시
그녀의 어색한 목소리와 연기때문에 고유의 빛은 사라져 버리고
시종일관 땍땍거리는 철딱서니 없는 여동생으로 전락해 버린 점도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태식에게 사랑을 느낀 여선생이나,
시도때도 없이 밥먹으러 가자던
쌩날나리 경찰의 역할은 오히려 빠져주어도
스토리 전개상 전혀 무리 없어보이는 사족이었다고 느껴지면서
차라리,
이러한 군더더기 요소들을 배제한 채
태식과 덕자, 그리고 악의 축인 조판수와
극소수의 똘마니로 역할을 축소했더라면
오히려
이들의 갈등과 고민, 슬픔들이 더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화면만큼이나 바빴던 남의 이야기들로
정작 느릿하게 움직여주는 태식의
슬픔과 분노가 덜 여물게 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물론 나는, 팬이기에, 객관적인 눈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김래원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이제는 김래원의 연기 하나만 바라보고
다른 모든 점을 덮어버리는 누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 태식이
그저 흔하디 흔한 조폭의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고
관객들에게 좀 더 진한 무엇인가를 남겨주려면
조금은 단순하고 우직하게
태식과 덕자의 이야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을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 나는 소망한다.
내 가슴속에서 채 풀리지 못한 2%의 아쉬움이
전적으로 나만의 몫이라면 좋겠다.
비록 나는 해바라기 영화를 보면서
눈물 한줄 끝까지 흘리지 못하고
매정한 자세로 관람을 하고 나왔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태식의 불행을 슬퍼하고 태식의 불행을 안타까워 하며
눈물을 철철 흘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후 김래원이 선택하게 될 작품에서는
"김래원의 티켓파워"니,
"김래원의 변신"등의 홍보문구보다는
"각본, 연출, 배우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이라는
문구들로 치장된 기사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이
전적으로 나만의 몫이어서
팬이 아닌 일반 관객도 두번, 세번 다시보고
눈물 흘리는 영화가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라도
"니가 틀렸어" 혹은 "너의 관점이 틀렸어" 라고 이야기 해 주기를
내가 미처 놓친 부분에 대하여
가차없이 나무라주기를..........
또한 소망한다.
다음주,
내가 또 영화를 보러 갈때는
그 충고들을 발판삼아 다시 몰입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이 영화, 참 희한한 영화일쎄.........
봐도 봐도 슬픈 영화네.......
처음에 봤을때 보다
2689배의 진한 감동의 깊이가 느껴지는 영화일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