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 세계에도 고수가 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놓치지 않는다. 파티를 기획하고 사업을 벌인다. 심지어 정부단체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까지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독서는 기본. 공자, 강태공, 이퇴계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이 넘쳐난다.
전국백수연대 대표이자 인터넷 카페 '백수회관'의 운영자 주덕한(38)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96년 7월부터 10여 년째 백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게다가 당당하게 자신이 '백수'임을 커밍아웃했다. 지난 4일 서울시내 한 서점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장소는 그가 평소 즐겨 찾는 곳이다.
주씨는 귀를 완전히 덮는 화려한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밝은 얼굴이었다. 그에게서 우중충하고 왠지 주눅든 듯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좋은 곳"이라며 주씨가 장소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인근 은행이었다. 그는 갖고 온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2004년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청년실업 탈출 정보를 얻기 위해 9월 14일부터 10월 20일까지 38일동안 다녀온 체험기였다.
당시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비용을 마련했다. 한류바람을 타고 만들어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파티를 개최하는 등의 일이었다. 일본 노숙자들을 따라 도쿄 시내 호텔에서 몰래 사우나를 하기도 했단다.
식사는 편의점 할인시간대에 도시락을 사거나 대학교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해결했다. 그래서 생활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하루 1만원 수준.
그가 원래부터 '백수'였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주씨가 '백수' 생활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은 90년대 중반에 이뤄진 3개월간의 유럽 여행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수많은 배낭여행족을 만났다. 그들중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충격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앞날이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또 구하면 되지'라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또다시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겐 '그러다 짤리면 어떡하냐'고 질문했더니, '짤리면 되지'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96년 직장 그만둔 뒤 백수생활 10년째
주덕한씨는 유럽에서 돌아온 뒤 웨딩플래너와 인터넷업체 직원으로 1년 반 동안 일했다. 그리고 96년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엔 막막했단다. 가족과 친구들의 눈치가 보이고, TV 보는 것도 마음 편치가 않았다. 신경이 쓰여 서울역에서 TV를 본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서점을 자주 찾다가 백수를 위한 가이드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씨는 "벌이는 없고 지출은 오히려 직장인 시절보다 늘었는데, 안내서가 없다는게 이해가 안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자료를 모으고 경험담을 곁들여 만든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5월 나온 게 '백수생활 가이드북'이다.
비록 중간도매상이 부도나 인세를 받진 못했지만, 그 덕분에 방송에 출연하고 수많은 '백수'들의 호출을 받았다. 전국백수연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96년 이후 그는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만큼 쓰는 생활로 들어섰다. 처음 시작한 일은 총각 파출부. 평소 요리잘하기로 소문난 그의 솜씨를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이 계기가 됐다. 1년 동안이나 할 만큼 그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후 인구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때도 조사원중 남자는 그 뿐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단기 일자리를 경험했다. 지금 계획중인 아르바이트는 '야쿠르트 아저씨'다. 용모 단정한 20대가 아니면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는 참 자리를 잘 찾아낸다. 인터뷰 도중 며칠 전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받은 선물을 보여줬다. 10만원 상품권과 KTX 자유 이용권이었다.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이 못해본 분야는 무서워해요. 제가 안해보고 권할 수 있나요. 그래서 한 번 해보고 괜찮으면 주위 '백수'들에게 말해주려구요."
"있는 사람이 아끼는 것은 문제"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는 사회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청년 실업 문제를 걱정했고, 경제가 풀릴 방안을 고민했다. 사람들이 책을 안사는 것도 그에겐 걱정이었다.
한 달 지출을 물어봤다. "15만원에서 20만원 사이"란 답이 돌아왔다. 수입도 비슷한 수준이란다. 일단 수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책부터 산다고. 최근 유행중인 책에서부터 고전 책까지 책이름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이어 꺼낸 말이 '만원의 행복'이란 TV 프로그램이었다.
"백수가 아끼는 것은 괜찮은데, 있는 사람이 아끼는 것은 문제지요. 일본의 불황이 길어진 것도 사람들이 너무 안써서 그렇다고 들었어요. '절약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자'고 해야죠. 그런데 이해는 돼요. 집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이 돈을 안쓰는 거죠. 해가 바뀌면 전세값을 언제 얼마만큼 올려달라고 할지 모르니까요."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방안에 '콕' 처박힌 백수가 아니다. 많은 독서량과 인맥, 활동량을 자랑한다. 청년 실업과 관계된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관련 심포지엄이나 강좌가 열리면 부지런히 참석한다.
일본 연수를 떠났을 때도 도쿄시청을 방문해 각종 자료를 받아왔다. 지난해엔 4개월 과정의 창업스쿨에 다녔다. 그는 넘쳐나는 에너지와 호기심을 부지런히 쏟아낸다.
그에게 올해 계획을 물었다. 다섯 가지나 되는 프로젝트가 쏟아졌다. 먼저 '제대로 쓰자'는 캠페인. 소비자들이 호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위축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자체 진단에서 비롯됐다.
두 번째는 구청과 동사무소에 연애과를 설치하고 건전한 연애 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주로 유흥산업쪽에 돈을 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만들어낸 대안이다. 즉 혼기가 찬 미혼자들을 각 지자체가 파악해서 지원해주면 데이트를 즐기면서 소비가 살아난다는 것. 게다가 전국 미취업자들을 상담원으로 고용할 수 있어 실업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1석 2조 사업이다.
세 번째는 백수회관 건립으로 문화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네 번째는 실업자 식당 운영.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에서 빌어온 아이디어다.
마지막은 마을 커뮤니티 책방 운영이다. 각 집마다 묵힌 책들을 기증받아서 책을 판매하는 방식. 게다가 책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곁들여 추억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주민들이 추진하는 문화강좌를 덧붙인다고.
주덕한씨에게 '이 계획들을 비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누가 하든 상관없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모두 공개하는 게 내 방식"이라며 웃었다.
모든 사람은 다 쓸모가 있다
주씨는 "모든 사람은 다 쓸모가 있다"고 강조했다. 2004년 12월에 전국 시민운동가 카페 'NGOlove', 미디어몹과 함께 개최한 백수 100인 인권선언대회는 그런 생각을 드러낸 대표적인 행사다.
그는 대한민국 실업자들이 정상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TV와 영화에서 잇달아 그들을 희화하하는데 분노해 그런 행사를 개최했다. 국가사회문제인 실업문제를 청년실업자 개개인의 문제인양 왜곡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의 몸짓이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인간 역사의 진보는 백수가 주도한 것"이라는 도발적인(?) 논지를 꺼냈다. 시간이 남는 만큼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백수의 표본'이라며 퇴계, 강태공을 비롯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공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식객'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말이 좋아 식객이지, 까놓고 보면 그들이 백수죠. 조선시대 선비들 또한 백수정신의 원형입니다. 밥 한끼 간신히 먹고, 옷 한 벌 제대로 못입어도 만족해 합니다. 물론 눈치가 보이죠. 그러나 치욕을 이기면 그 속에서 작품이 나옵니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사기'를 써낸 것처럼 말이죠."
주덕한씨 공개 애인 구함주덕한씨가 공개적으로 애인을 구합니다. '백수'를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면 된다고 합니다. 연락처는 swan006@hanmail.net입니다.
현재 서울 중곡동 누나집에서 얹혀 살고 있는 주덕한씨. "결혼하면 독립하겠다"는 약속을 몇 년째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그 또한 눈치가 보일 듯하다. 그러나 10년째 미취업 상태인 그는 "아직 강태공의 경지에 이르러면 멀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평생을 강가에서 보내다 천하를 낚았던 고대 인물처럼 그 또한 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청년 백수들이 뭘 잘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도와주고 싶다"며 말문을 닫았다. 순간 그가 전국 백수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백수의 왕'이란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