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유재하 - 음반 한장으로 전설이 된 천재 뮤지션

박순호 |2006.12.08 14:24
조회 601 |추천 3



이름:유재하

 

출생:1962년 6월6일

 

사망:1987년 11월 1일

       (에픽하이의 '11월1일'이 故유재하,故김현식 추모곡)

 

경력: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활동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활동

 

데뷔:1984년 그룹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키보디스트

 

데뷔앨범1987년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음반 한장으로 전설이 된 천재 뮤지션

 

 1962년 6월6일생인 유재하는 3남 3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터 바른생활 사나이로 부모님께는 효자고 장난꾸러기인 그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했다. 음악적 재질이 뛰어났던 그는 피아노, 바이올린, 펠로, 기타 등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작곡과 편곡 실력까지 같푼 다재다능한 싱어롱 라이터다. 스물 다섯해, 그 짧은 시간으로 인생에서 무엇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유재하가 남긴 단 한장의 음반은 8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발라드 음악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는 위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적 업적은 오늘의 후배 뮤지션들에게 중요한 지침서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음악적 역량과 감성은 앞으로도 계속 조명되어질 만큼 천재적 뮤지션이었다.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과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한 유재하가 자신의 음반을 발표하기 위해 한 음반사로 악보를 가져왔을때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완벽한  관현악보로 작사 작곡에 편곡까지 되어있었고 드럼과 베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연주까지 혼자 다 소화해낼 정도.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 날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 미디 시스템하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러한 작업을 유재하는 1987년에 해내었다.

 

  클래시컬한 구성이 제공하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이만 , 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맑은 정서가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비할 바가 못된다.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가 묘하게 엇갈리던 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를 암시하는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그의 음악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도 했다. 어떤이는 을 가르켜 정치적으로    암담한 현실에 고민하는 당시 젊은이의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하기도 한다. 당시 금기시되었던 장조와 단조로의 변화무상한 음악을 새련되고 편안하게 만드는 유재하 고유의 음악적 색감은 그 수로 후배 뮤지션 김현철, 김광진에게도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며 영향을 미친 듯하지만 분명 유재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다. 클래식과 재즈를 겄어놓은듯 세련된 멜로디의 흐름이나 손수건을 준배 해야 할 만큼 슬픔이 그득한 가사들은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흐름에 역행하며 과감하게 편곡한 곡들은 일본의     야마하 가요제에서 탈락하거나 모 방송사 오디션에 불합격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심지어는 '내 마음에 비친 내모습'의           '내 모습'을 '네 모습'으로 고쳐야 한다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지적   까지 받았다.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직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서울 이촌동 서울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이 앨범의 제작비는 800만원이었다. 제작비가 적었던 이유는 유재하가 세션을 쓰지 않고 드럼과 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스스로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인이었기 때문에 눈치보느라 연주나   노래가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녹음하지 못하고 대부분 한두번에 녹음됐다. 앨범의 담긴 노래들은 유재하가 당시 사랑했던 한 여인과의 러브 스토리 그 자체였다. 그녀를 쫓아다닐 무렵 '그대 내품에'를, 사랑이 맺어진 순간 '사랑하기 때문에'를, 사랑이 진행될 즈음     '그대와 영원히'를... 앨범속 플룻 소리는 모두 그 여인의 연주였다.

 

 이문세가 부르기도 했던 '그대와 영원히'의 경우 당시 심의에서 문제가 됐다. 가사 내용중 '붉은 바다'가 마치 빨갱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푸른 바다'로 고치라는 걸 눈물로 호소해서 가까스로 막았다. 87년 봄. 드디어 앨범이 나왔고 유재하는 MBC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딱 한번  '지난날'을 부른게 유재하의 유일한 TV출연이었다.

 

 사실 유재하의 앨범은 대중을 의식해 멜로디를 쉽게 만든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연주를 하려면 전조와 변주가 심해서 연주하기가 어렵다. 제13회 유재하가요제 입상자인 동덕여대 공연예술대학원 실용음악과 유승혜씨는 "실험적인 곡들이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는게 놀랍다"며 "우리같은 가수 지망생들에게 그 분의 음악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하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대중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으며 1백 50만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의 유재하 무덥 앞에는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 조각상이 있다. 사소한 애기지만 그 악보중 2개    음표가 틀렸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그의 묘비에 국화 한송이를 놓으러 가는 것은 어떨지.

 

 그의 죽음이 애석할 따름이지만 다행스럽게도 1989년도 부터 시작된 '유재하 음악제'는 오늘날 우리 가요계 발전의 중요한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1회 대상 조규찬,2회 대상 고찬용(낯선 사람들),동상 박영열(일기예보),3회 은상 강현민(일기예보),4회 대상  유희열, 은상 심현보(작곡가,아일랜드),5회 은상 이승환,동상 이한철(불독맨션), 7회 대상 나원주, 8회 대상 정지찬에서 16회 스윗   소로우 까지 대중음악계를 이끌어갈 많은 뮤지션들을 배출해냈다. 머리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뮤지션은 결국 한계에 다다르게 마련   이다.

유재하의 음악의 저변에는 6년을 한결처럼 피끓게 했던 애인과의 만남과 아픔, 그리고 다시 만남에 이르는 목숨같은 사랑들로 채워져 있다. '우울한 편지'역시 그녀에게 받은 편지 내용으로 만들어 졌다. 1987년 11월 1일. 그가 죽지 않았다면 5개월 뒤인 88년 3월에 편지속의 주인공과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엘튼존이라 미국의 밥 딜런 같은 영원한 자유인이자 아티스트가 있다고 자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천수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