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교회가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복음률과 기독교인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안정은 최하이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예수쟁이 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이 말은 기독교인을 부르는 세속인(世俗人)들의 속된 말로써 비하하는 발언이라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이처럼 교회는 많으나 왜 사회적 지위가 낮고 사회의 안정을 찾지 못하여 예수쟁이라고 하는 비하의 단어로 기독교인들을 부르는지 알아보고 반성했으면 한다.
기독교인들은 집단이기주의자(集團利己主義者)들 일것이다. 아니,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교회안에서 특히 , 자교회안에서만은 체면 차리고 서로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랑을 하고 수다를 떨다가도 교회 밖으로만 나오면 180도 달라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을 언제 배웠냐는 듯이 세속적인 행동을 하고 누가 봐도 예수 믿는 사람같이 행동하지 않고, 교회에서는 화평을 주장하나 그 집안은 완전 문제가 있고, 목사-장로-집사 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아들-딸들은 솔선수범하여 나쁜 짓을 일삼고, (물건을 구매 할 때에) 같은 기독교인인 걸 확인하면 복 받는다는 말을 명목으로 좀 더 싸게 많이 사려하는 비인간적인 흥정행위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잘못은 바로 국회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남들에게 베풀고 정을 나누며 자기의 이익을 챙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어찌 된 판인지 솔선수범 뒷돈 챙겨 호주머니 꽉 채우고 , 비자금 받아먹고 , 심심하면 여-야당 싸움이나 해대고 ,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법안이라면 일분일초도 아끼지 않는 아무 모범적인(?) 행동들을 하는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정말 과학자였다면 국회의원의 뇌(腦)를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다.
뭐 더 있지만 기독교인인 필자에게 누워서 침뱉기 격이 되므로 삼가하겠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매를 벌기 위해서도, 욕과 비난에 굶주려서도, 21세기의 마르틴 루터가 되기를 바래서도 아니다. 이유는 단한가지 !! 위에서 언급했듯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세속화를 막고 U턴하여 다시 신앙에 굶주려 주기철-이승훈 목사님들 처럼 오직 믿음만 강조하는 청도교적 삶을 살길 바라는 차원에서이다. 비록 어린 필자가 적지만, 이 글을 적기에는 집안의 3대(필자를 포함)의 경험담이 바탕이 되어있다.
필자의 집안 3대의 경험담을 서술코자 한다.
필자의 조부(祖父)는 집안이 약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홍익대를 다니셨다. 집은 부신이었기에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셨다. 혼자 살기엔 약간 불편하여 다른 친구와 같이 지내셨다. 어느 날, 학비를 내야하는데 룸메이트가 조부께 집안에 큰일이 있어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조부는 빌려주셨다. 그런데 그 룸메이트는 그 돈으로 자기 학비를 내고 휴학계를 낸 뒤 군대를 갔다. 그 룸메이트는 전라도 사람이고 기독교인이다. 그 때부터 조부는 기독교인을 싫어하게 되셨다.
이제 필자의 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영도이시다. 영도에서 교회를 다니시고 학창시절을 보내셨다. 학창시절 교회를 마치고 어딘가를 가시던 중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급경사를 오르시는 할머님을 보셨다. 그 옆에는 많은 다른교회교인들이 있었으나 아무도 도와드리지 않았다고 하셨다. (필자의 경험담은 삼가하겠다)
위의 경험담은 기독교인들의 이중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안이 급하다고 빌려 간 돈을 가지고 자기 학비에 쓰고 도망가 버리고, 힘들어하시는 할머니를 보고도 모른 척 시선을 회피하는 예수쟁이들의 이중성(=양면성)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가 평신도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쓴ㄴ 이유는 예수쟁이인 내 눈에 비치는 예수쟁이의 행동들의 오류를 개혁하여 세속화를 멈추고 청교도적 신앙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지위의 자리 잡음과 탈(脫)세속화와 청교도적인 신앙철학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안정을 주도 실천하여 결실을 보는 그 날은 한국사람 모두가 예수쟁이가 아닌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