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 부정거래 이미지 벗고 부동산에까지 사업 영역 확대… 창업 관련 책도 내
평범한 주부에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여왕… 세계에 영향력 있는 50대 여성 기업인
▲ 마사 스튜어트뉴욕의 여성에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만큼 유명하고 오프라 윈프리만큼
친근하게 느끼는 여성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를 선택할까? 많은 사람이 주저하지 않고 ‘마사’를 선택할 것이다. 미국 주부는 자신의 주방에서 그녀의
요리책과 잡지책을 들고 그녀가 출연하는 TV의 요리 프로를 보면서 가정과 인생을 설계하고 가꾸어 나간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65).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주부로 지내다가 출판·방송 등을 아우르는 미디어제국(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을 건설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미국 주부의 우상인 그녀는 한때 주식거래부정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경영인으로서 독보적인 선례를 만들며 재기하고
있다.
마사는 어린 시절과 대학, 결혼 생활 내내 범 뉴욕권인 트라이스테이트 지역(뉴욕·뉴저지·코네티컷 3개 주)을 지킨 대표적인
뉴요커이다. 1941년 맨해튼과 인접한 뉴저지주 저지시티의 한 낡은 연립주택에서 폴란드계 이민노동자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부지런했던 그의 부모는 딸에게 요리와 바느질, 정원 가꾸기를 가르쳐 훗날 마사제국 번성의 바탕을 마련해줬다.
영리한 데다
외모도 뛰어났던 마사는 공부를 잘했고, 학교 신문ㆍ미술반 등 다양한 특기활동을 즐겼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잡지와 TV에 광고 모델로도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뉴욕의 명문 여성대학인 버너드 칼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거기에서 미술과 유럽 역사, 건축사 등을 공부해 미적 감각과
관련 지식을 연마했다.
대학 시절에 만난 친구 앤디 스튜어트와 결혼한 뒤로 약 7년간 월스트리트의 증권거래인으로 일했으며,
1973년부터는 코네티컷에 터를 잡고 전업주부가 됐다. 그녀의 진짜 재능이 발휘된 건 이때부터다. 자기 집 지하 주방에서 주문요리사업을 시작해
사업에 재미를 붙인 그녀는 1979년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담은 책 ‘엔터테이닝’을 출판했다. 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녀에게 명성을
안겨줬다.
마사는 이후 출판·방송 진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평범한 미국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1997년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를 설립하면서 인터넷 카탈로그사업까지 추가, 명실상부한 종합 미디어그룹을 일구게 된다. 자신의 월스트리트 경험을 살려 2년 뒤에는
이 회사를 뉴욕 증시에 상장시켜 6억달러의 재산을 손에 쥐기도 했다. 성공하려면 남 밑에 있지 말고 회사를 세워 독립하라는 미국인의 비즈니스
철칙을 실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25만부로 출발한 마사의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은 최고 전성기에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넘어섰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는 이 잡지 외에도 ‘마사 스튜어트 웨딩’과 ‘마사 스튜어트 키즈’를 발행하고
있다.
▲ 마사 스튜어트가 TV쇼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진행하는 장면.
잘 나가던
마사에게 2002년 큰 위기가 찾아왔다. 기업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부정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된 것이다. 제약회사 임클론의 암 치료제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부정보를 사전에 입수, FDA의 발표 직전에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을 처분해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였다는 혐의였다. 마침 마사가 재판을 받던 시점엔 엔론사태 등 대규모 기업의 월스트리트 스캔들로 기업가의 도덕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로 그가 본 이득은 4만5000달러(약 4500만원)에 불과했다. 마사는 “나는 시범 케이스로
단죄받았다” “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일로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를 정상에 올려놓은 가장
큰 동력이 ‘현명하고 편안한 어머니 또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미지였던 만큼 부당이득을 취한 부정 경영인이란 정반대의 이미지는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마사는 “다시 돌아올 거예요(I’ll be back)”라는 자신의 말처럼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녀가 수감된 기간은 2004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5개월. 물리적으로는 길지 않지만 거짓말과 부정이란 이미지 때문에
기업가 인생에 치명타가 될 뻔한 이 기간을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여성 전용 수용시설인 웨스트 버지니아주 앨더슨
감옥에 수감된 그녀는 동료 수감자에게 요가와 꽃꽂이를 가르쳤다. 자신에게 돈과 선물을 보내는 대신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홈페이지에 올려 역시 ‘기 죽지 않는 여장부’라는 평을 끌어냈다.
뉴욕= 김기훈 조선일보 특파원 k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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