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회 대학 문예상 시 부문 가작 입상.
자기소개서
어서오십시오, 란 인사를 받기가 머쓱한 곳이 있지
이를테면 은행에 대출받으러 갔을 때, 혹은 옛 애인과 머물던
분홍빛 여관 따위, 이 세상엔 반어와 역설로도 해명될 수 없는
무수한 말들이 있다는 걸,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깨달았다
생의 이력을 반듯이 줄 쳐진 서류용지에 채워넣을 때마다
느끼는 아득한 절망감
스물 이후의 삶이란 기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자가 누구인가를
되묻는 과정일 뿐인데
회색빛 종이 위에 새겨지는 나의 삶이란
기실 나에게도 얼마나 낯설 뿐인가 귀사의 훌륭한 인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끝맺음된 자기소개서,
불면의 신새벽에 태우던 담배 필터 끝에 묻어나던 한숨과
터널을 통과하던 기분으로 지내온 청춘의 추억 따위는 묻어둔 채,
남들보다 더 값비싼 명함을 갖을 준비된 자임을 말하는
텅 빈 말들의 집합, 자기소개서
날렵한 봉투에 입사지원서와 함께 봉하여 붙인다
읽으실 때 주의할 점,
동창회 나가서 쪽은 안 팔릴 삶을 살고 싶어요,라는
전제는 생략됨, 아울러
평생 든든한 일꾼이 되겠다는 약속, 지킬 기회조차
안 준다는 것 알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