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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은 이삿집처럼 어지럽다

최인수 |2006.12.15 17:16
조회 8 |추천 0

The Guy

ː내 맘은 이삿짐처럼 어지럽다

 

한참을 막막해했던 거 같아.

제대를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제대를 하고 나니 더 나를 조여오는 게 많더라구.

그때 마침, 삼촌이 바쁘니까 와서 일을 거들라 했구,

난 용돈이라도 벌어볼 생각으로 이삿짐 알바를 시작한 거야.

 

근데 너의 집엘 간 거야. 너무 작은 집에.

짐이라고 해봤자 작은 냉장고와 책상과 컴퓨터가 전부인 너의 집엘.

텔레비전 같은 것도 없었고 심지어

작은 밥상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너를 조금 자세히 보게 된 거야.

 

덕분에 그날은 내가 삼촌을 도와주게 된 후로,

일이 가장 쉬운 날이었어.

하지만 비가 내렸지.

비가 쏟아지니까 넌 한쪽에 세워놓은 책들을 몸으로 가리려구 했구.

난 그게 널 도와주는 일 같아

얼른 그 책들을 비가 안 들이치는 처마 밑으로 옮겨놨지.

니가 많이 고마워하는 거 같았어.

 

한 20분쯤 됐을까, 우리 둘 사이에 책꾸러미를 쌓아두고

내리는 비를 바라봤잖아.

비가 온다는 사실이 미안했어. 너한테 미안했어.

 

모르겠어. 난 그날 이후로 막막한 게 덜했고

너의 집을 안다는 사실이 가끔은 힘이 되기도 하거든.

그래서 어젯밤엔 너의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 보면서

혼자 휘파람을 불었지.

 

새 집은 어떠니? 좋은 꿈은 꾸었니?

 

The Girl

ː햇볕 가득한 새 집처럼

 

이사를 했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집.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지나 조그만 텃밭 두 개를 지나면 나오는 집.

조금 어둡지만 그래도 저번 집보다는 훨씬 밝은 집.

 

이 집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희망들을, 꿈들을

꼭 이뤄가려구요.

지난번 집에선 하는 일마다 끝을 맺지 못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죠.

 

이사하는 날 비가 와서 기분이 많이 찜찜했는데,

작은 창문으로 봄 햇볕을 잔뜩 배달시켜놨더니

모든 것들이 뽀송뽀송해지고,

이제 마음도 새집에 적응하는 거 같네요.

 

근데 이상한 건 나 혼자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거예요. 물컵을 씻어 엎어 놓으면

누군가 마른 행주로 젖은 물컵의 물기를 닦아주는 것 같고,

깜빡 잊고 물을 안 준 벤자민 화분에도

누간가가 물을 주고 있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 늦은 밤.

창밖으로 들리는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두운 밤길도 무섭지 않아요.

 

이제부터 외출할 때면, 불을 환하게 켜놓고 나가야겠어요.

그러면 나는 밖에 나가 있어도 누군가 집에 있는 거고,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내 방 창문으로 비치는 따뜻한 불빛 땜에

난, 혼자 살고 있지 않는 게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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