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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asso, Pablo 의 삶과 <꿈>

최상욱 |2006.12.20 12:07
조회 28 |추천 1


 

Picasso, Pablo Ruiz y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인 동시에 가장 많이 왜곡된 화가 가운데 한명이기도 한 피카소는.. 스페인의 남부항구도시 말라가에서.. 시골 미술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말하기보다 그림그리기를 먼저 배웠다는 피카소는.. 이미 10세가 되던 해에 미술교사인 아버지의 그림실력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이후 14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의 론자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 피카소는.. 16세의 나이로 모든 콩쿠르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는데.. 이후 라고 하며 자신의 을 입증한다.. 

 

  19세 때 성공을 위해.. 천재 예술가들의 집합소인 파리로 상경한 그는.. 수년 동안을 지독한 가난과 혼란 속에서 살며.. 자신보다 앞선 인상파들의 그림에 넋을 읽었는가 하면.. 고흐, 고갱의 그림을 아주 심오한 책을 탐독 하듯 탐색한다.. 피카소는 평생을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을 무질서 속에서 살았다.. 그는 정돈은 곳 머리를 굳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무질서는 풍부한 아이디어와 창조력을 키우게 하는 토양이었기에..였다.

 

  93세의 생애동안.. 모두 7명의 여인과 동거를 하며 사랑을 나눈 그는.. 연인이 바뀔 때마다 작품에 새로운 대상을 등장시켰으며.. 그 표현 방식 또한 모두 달리했다.. 이렇게 볼 때..[그의 삶에 있어서]이 같은 사랑의 열정이 바로 그의 창조의 근원이 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라는 이름의 이 그림은.. 그의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당시 테레즈는 17세에 불과했는데.. 피카소는 6개월간의 구애 끝에.. 자신의 집 근처에 비밀작업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다년간 테레즈를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미 당시에 상당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던 피카소를 알지 못할 만큼 테레즈라는 소녀는 미술에관해서 상당한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카소는 테레즈의 아름다움과.. 순종적이고 희생적이었던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며.. 독서를 하거나 잠이든 그녀의 모습을 그리기를 즐겼다.. 이 그림 역시 그 그림들 가운데 하나인데.. 꿈을 꾸는 듯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서.. 평온함과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굴과 몸에서.. 푸른빛과 연분홍빛을 의도적으로 절반씩 사용한 것은.. - 푸른빛 - 과 - 연분홍빛 - 이라는 두 세계를 표현하려고 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 시기는.. 피카소와 마리 테레즈가 평온했던 때였을 듯 싶다.. 이러한 행복과 평안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1935년 테레즈가 22살의 나이로 딸을 낳았을 때.. 피카소는 이미 도라 마르라는 지적이고 세련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피카소가 남긴 몇몇 명언 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혼란스럽고 전통적 윤리관으로 볼 때, 문란하기 까지했던 그는 그림들을 통해 자신의 사유들을 풀어 놓는다.. 아마도 그의 구상은 우리 인간의 역사가 창조와 파괴의 반복임음을 자신의 삶과 그로부터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피카소의 라고 한 말은 그보다 반세기 가량을 일찍 살다간.. 니체의 형이상학적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무수한 창조와 파괴의 반복속에서.. 대상의 전체적 인식을 긍정하는 한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까지 화법의 주류였던.. 인상파나 야수파의 동시적 표현으로서의.. 입체파를 발전시킨 이유도 에 대한 피카소의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는 그의 고백은 전체로써의 그 자체에 대한.. 너무도 진실한 긍정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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