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지고 있는 연변동포문제
지난 주말을 전후해서 1주일 연변에 다녀왔다. 복지학 교수들과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과 함께 연변자선총회의 안내로 가정해체 또는 이혼, 조손가정의 조선족 어린이들이 기숙하고 있는 학교와 양로시설. 정신사회병원 등 복지관련 분야를 집중적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연변자치주의 중심인 연길시의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동포사회는 깊은 중병으로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자치주의 조선족 감소현상이다. 2백만에 달하는 중국 내 조선족 가운데 84만 명이 거주하는 연변은 중국정부가 자치주로 인정해 소수민족 정책을 펼 정도로 조선족사회의 중심지였으나, 최근에는 인구의 급격한 이동으로 자치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조선족들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개발이 신속하게 추진된 연안지역, 즉 상해, 북경, 청도, 심천 등지로 취업을 위해 이주했거나 한국으로 이동했다. 이런 경향, 즉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 한, 연변자치주 조선족사회는 축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이런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들의 가족 해체현상이다. 장기간의 한국체류는 연변조선족 가정의 해체를 불러오고 고아와 조손 및 이혼가정이 속출해 결손가정이 60%를 넘는다. 연변농촌의 조선족마을은 무의탁노인이 5천명이나 되고, 고아도 3천명, 빈곤으로 학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여있는 학생이 6천명이나 된다. 하지만 즉각적인 대책마련이 뒤따르지 못한 채 자선총회를 비롯한 당국, 사회단체와 헌신적인 독지가들의 노력으로 기숙학교나 양로원 등의 시설이 부분적으로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정부의 각료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연변 조선족 동포들에 대해 매우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내 동포사회가 가족해체와 연변자치주의 중심이 흔들리게 된 원인제공은 대부분 한국정부의 무신경한 정책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자는 이 문제점의 시정을 위해 노동부와 법무부의 장관들을 만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해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한국정부가 한국기업들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족의 한국입국을 허용하는 정책을 수립했을 때 조선족동포사회의 생활안정과 경제성장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추진했다면 오늘의 이 심각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단체의 이해관계와 인력업체들의 로비에 놀아나 그들의 이권보호와 영사관과 브로커의 부패 고리를 차단하지 못한 채 10여년 넘게 무책임한 정책이 집행되고 말았다. 연수생제도로 저질러졌던 인권유린은 물론이거니와 짧은 기간 뼈 빠지게 일해 봐야 입국과정에 뜯긴 돈을 벌충하기 바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로 남게 되었다. 이들은 연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정부의 단기체류와 단수비자정책으로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되면서 연변가정은 가족해체를 양산하게 됐던 것이다. 또 한국정부가 중국진출기업 가운데 연변지역의 경제성장과 생활안정을 위해 투자와 서비스 확대를 장려했다면 연변의 조선족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생활향상과 민족사회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때 늦었지만, 5년 방문취업제가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다니 시급히 법과 제도를 정비해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가족해체를 막고 경제적 안정을 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연변사회는 한국정부의 정책전환을 환영하면서도 엄격한 한글시험이 또 다른 비리를 만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보따리장사를 포함한 왕래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끝으로 연변자선총회는 일시적인 구호나 외부의존을 벗어나기 위해 오미자를 생산하는 농장을 경영하여 그 수익금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 등 위기에 빠진 가정의 지원자금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농장을 합작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한국사회의 참여가 구체화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