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 할아버지와 소
옥이 할아버지네 소는 모두 5마리입니다.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개로 꼴을 베다 날라야 하지만 단 한번도 번거로운 기색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소들이 여물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미소는 온순한 소의 웃음과 닮아 있습니다.
소는 시골 농가의 중요 생활 대책입니다. 급전을 돌릴 일이 있을 때, 지붕개량이나 병원의 신세를 져야 할 일이 있을 때......
그러나 지난달 소 장사가 찾아와 3년 정도 기르던 암소를 팔 때 할아버지는 소 등을 쓸어 주며 무슨 말인가 주고받고 나오셨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인연지어 졌으니 이해하여 달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소들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보았던 연희극의 대사처럼 먹이 사슬은 약육 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보은의 의미, 보신의 의미가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악연이란 없을 것입니다. 악연이란 우리의 성품의 잔인함에서 시작됩니다.날마다 몇 백만 마리의 소가 도살되고 몇 천만 마리의 닭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임을 당합니다.
얼마 전 TV에서 소에게 소를 먹이는 이야기가 방영되어 경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의 계율을 정하실 때 살생을 하면 마음속에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는 자신 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생물들에게 베푸는 연민이며 선행입니다.
만일 자비의 이 선행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 하여질까요.
〈지율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