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들 말한다.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하게 된 게 아니다, 사랑은 이성을 무너뜨린다 등등등등. 비수의적 기능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오랜 참선자가 아닌 다음에야, 비수의적 기능 중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최고로 인기있는 주제인 '사랑'에 저항하기는 힘들다. 사랑의 저항불가성을 인정할 뿐아니라 미화하기까지 하는 것은 고래를 막론한 유행이었지만, 요즈음 인터넷이 발달하여 젊은 세대들의 의견이 두각되고 그러한 의견교환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성을 넘는 사랑'을 미화하는 추세는 전보다도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사랑은 이성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남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느껴 이성적으로 그 사랑에 저항한다 하더라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성을 넘어서는 욕구에 막다른 길까지 몰려 담을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랑을 인정하고, 메종 드 히미코 안에서 살아간다. 자신들을 거부하는 세계에 맞서 자기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금을 긋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산다. 그 금 안쪽은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들도 금 밖으로는 나가기 힘들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메종 드 히미코의 금은 세계를 양분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구석에 작고 폐쇄적인 원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게이들은 그 안에서만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지만, 그 원이 너무 좁아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루비는 다시 '할아버지'가 되어 메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여자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생명을 영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여자가 되기 위해 죽을 때를 생각을 하던 야마자키도 있다. "죽으면 드레스가 안 어울리는 내 모습을 보며 슬퍼할 일은 없을 거 아냐."라는 야마자키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야마자키는 사회에서 학습한 '아름다움'이 자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학습된 아름다움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러한 이성이 사라져야만 여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마자키의 사랑은 남자를 그리지만, 그 그림은 이성에 의해 그림으로만 남아있다. 사람들은 사랑이 이성을 넘어서는 걸 미화하지만, 동성을 향한 사랑도 이성을 넘어설 수 있음을 불쾌해한다. 이것 역시 자신의 상황을 타인에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이성적인 논리를 뛰어넘은 감정적 판단이리라. 그래서 야마자키의 사랑그림은 말로 형상화될 수 없었다.
메종 드 히미코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곳이다. 이 영화는 그 히미코의 집이 그은 금의 경계선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