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참 어차피 숨쉬며 사는 건 동물과 다를바 없음에도
존재의 이유를 여러가지 면에서 찾는다.
때로는 믿음. 때로는 이성. 때로는 마음.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채워지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옭아맨다.
기독교인들이 싫어했겠다. 이영화. 이라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니 일순간 나조차 싫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미시적인 구절이 아닌 거시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별달리 화낼 필요도 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부분부분이 아니므로.
허나 거슬렸겠지. 숙명처럼. 하나도 보아 넘겨주기 힘들도록.
다빈치 코드가 실상 있거나 없거나가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다빈치 코드란 때로는 두뇌게임에서 희열을 느끼는 인간의 판도라적 흥미를 살짝 건들여 내용에 빠져들게 할 동기유발 쯤이 아닌가.
믿음.
예수가 인간이든 신이든 신의 아들이든 이미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신성.은 어차피 인간들의 믿음으로 쌓아왔던 것이 아닌가.
성서. 교전. 경전.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의 자신의 눈으로 읽고 자신의 마음으로 해석한다. 성자가 말하는 것이 이것이든 저것이든 그 본의는 어쩌면 영원히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의 머리로 자신의 마음으로 산다.
자신의 믿음이 어그러지고, 자신의 마음이 황폐해진 채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을 때. 삶의 의욕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때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신념이며, 인간의 사고이며,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고통이라고 잠정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나의 마음이 옳고 너의 마음이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나의 생각이 바르고 너의 생각이 틀리다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매우 쉬운 일.
숨쉬며 사는 것은 똑같은데 모두는 다르게 산다.
다른 믿음과 다른 생각과 다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