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1996년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 인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 영화는 개봉 되자마자
파격적인 연출과 세련된 영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바즈 루
어만 감독은 이 젊은 두 주인공의 의상을 프라다(Prada)에 부탁했
다.
화려하진 않지만 흰색 광택이 은은하게 나는 줄리엣의 드레스로는
프라다의 세컨드 라인 미우미우(Miu Miu) 제품이 로미오의 정장
으로는 프라다 워모 제품이 사용됐다. 영화 속 로미오와 줄리엣과
는 달리 프라다는 운명적인 사랑을 계기로 화려하게 성장했다.
프라다의 역사는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의 외할아버지인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13년 상류층을 대상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최고급 가죽 전문 매장을 열었다. 여행광이었던 그는 매장을 연 후에도 계속해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여행지에서 가죽 제품에 응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소재들을 찾아냈다. 특히 미국에서 군용물품에 사용되던 포코노 방수천을 제품에 반영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 앞서가지만 너무 진보적이지 않은 감각적이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프라다 성공 신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마리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다. 미우치아가 할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은 것은 78년이다. 밀라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좌익 활동을 하던 미우치아는 패션 사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죽고 가업이 힘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경영에 뛰어든다. 미우치아가 현재의 남편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미우치아는 베르텔리를 무역 박람회에서 우연히 만난다. 베르텔리는 당시 럭셔리 가죽 제품 생산업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프라다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베르텔리는 그 해 자신의 가죽 컬렉션에 프라다의 브랜드를 사용하겠다는 계약을 미우치아와 맺었다. 이를 계기로 프라다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혁신적이면서도 꼼꼼한 미우치아의 감성과 베르텔리의 탁월한 지성이 맺어지며 프라다는 럭셔리 가죽 시장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프라다의 대표 상품인 포코노 나일론 백이 출시된 것은 85년. 이 제품은 프라다의 명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창립자였던 마리오는 원래 이 소재의 실크 같은 느낌과 견고함을 독특하게 여겨 트렁크를 감싸는 데 사용했었다.
하지만 미우치아는 파격적으로 낙하산이나 텐트를 만들던 이 소재
로 가방 몸체를 디자인했다. 사실 미우치아가 처음으로 이 소재를 이
용해 제품을 만든 것은 70년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당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했다. 낙하산 천으로 만든 가방이 특별해 보이
지 않았고 가격도 비교적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새롭
게 선보인 포코노 나일론 백은 순식간에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됐
다. 이 제품의 성공으로 90년대 들어와서는 가방뿐 아니라 의상에
까지 포코노 나일론 소재가 사용됐다. 지금까지도 프라다 천 혹은 테
크노천으로 불리며 혁신적인 소재로 인정받고 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일론이 아니었어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아주 독특한 소재입니다. 오랫동안 그걸 찾았는데, 19세기에 설립된 군용물품 공장에서 겨우 발견했죠. 지금 그 공장은 문을 닫았는데,그 공장에서 쓰던 기계들을 구입해서 나일론을 생산했습니다."
핸드백, 액세서리 등으로 80년대에 인기를 끌게 된 프라다는 89년 여성복 라인을 선보였다. 93년엔 젊은 고객들을 위한 미우미우라는 세컨드 라인을 97년에는 레드 스트라이프(Red Stripe) 로고로 잘 알려진 프라다 스포츠 라인을 출시했다. 프라다 스포츠 라인의 모든 제품엔 빨간색이 들어간다. 이는 프라다의 뜨거운 열정을 상징한다.
88년에 미우치아와 결혼한 베르텔리는 끊임없이 패션 라인을 다각화하고 몇 차례의 인수· 합병을 통해 프라다를 거대한 패션 왕국으로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프라다는 베르텔리의 지휘 아래 65개국에 250개 직영 매장과 40여 개 프랜차이즈를 거느린 세계 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실제 패션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헬무트 랑(Helmut Lang)과 질 샌더(Jil Sander)· 처치스 그룹(Church’s Group) 등 7개의 패션 업체를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전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다양한 브랜드를 갖게 된 프라다지만 브랜드 이미지는 한결같다. 이는 프라다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인 직접 통제의 결과다. 프라다는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과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이는 럭셔리 산업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 핵심 요소인 생산과정과 브랜드 이미지 등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베르텔리의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프라다의 모든 제품은 생산 라인이 있는 이탈리아의 투스카니(Tuscany)를 거쳐간다. 프라다가 인수한 브랜드의 제품 가운데 일부만이 라이선스 계약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미지 관리와 구입 정책, 가격정책 역시 밀라노에 있는 프라다 본사에서 결정된다. 이 역시 프라다의 패션 정신을 일관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름다운 의상을 입으면서도 진지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한다.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미니멀 룩, 실
용적인 디자인에서 나오는 현대적인 세련미가 바로 미우
치아가 추구하는 프라다 스타일이다. 그녀는 정식으로 패
션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화려하지 않지
만 실용적이고 유행을 타지 않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투명 라텍스에서 거울 조각에 이르기까지 특이한 소재도
적극 사용했다. 이런 그녀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프라
다는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키며 세계 패션의 흐름을 선
도할 수 있었다.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제품만이 역삼각형의 프라다 로고를 달 수 있다는 마리오 프라다의 생산 철학은 설립 9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엄격함과 꼼꼼함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적용되며 예술품에 가까운 제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우치아를 현재 유럽에서 가장 권위있는 30인의
여성 중 하나로 뽑았다. 또한 포브스지는 그녀의 재산을 14억달러로
평가했다.
그를 일컬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Anti-Look의 거장이라고 한다.
마구공 장식의 가죽백에서 부터 나일론 백, 베이지와 갈색을 조화시
킨 마스코트의 색깔에 이르기까지 그의 디자인 세계는 최근 몇 년간
패션계의 트렌드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비전형적인 현상의 대표적인 마크라 할 수 있다.
50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미우치아는 보수적인 가풍속에 회색과 감색
옷을 입고 자랐다. 어머니는 분홍 옷에 빨간 구두를 신긴 적이 한 번
도 없었다고 한다.
미우치아 프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