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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만이형

정인영 |2007.01.08 10:40
조회 13 |추천 0

중만이형은 너무 바빴다. 내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랑 또 나의 가장 선물하고픈 한사람이 누구냐고 하면서 갓 발간해 나온 따끈따끈한 아프리카 화보집에 싸인을 하고 도장을 찍은 것과 역시 마악 준비된 형의 사진으로 된 새해 달력 10개를 두루 나눠주라고 선물로 챙겨줬고, 나랑 아프리카로 촬영을 같이 갈 궁리를 10분간 열렬히 하는가 싶더니, CJ 대표, 영화 감독이 들이닥쳐 금방 다른 세상으로 달려간다. 예약해둔 7시의 저녁 식사를 핑계로 손님들을 스튜디오에 둔채 나랑 자리를 빠져나가는 형의 드레드락 머리는 찬바람에 날릴 지경이었고, 옆집마냥 가까운 타이 식당 '파크'에 들어가서는 왕처럼 자리를 차지하며 앉더니, 한국말이라고는 "네"밖에 못하는 순한 타이 총각 웨이터에게 온갖 주문을 좔좔 해대고도 그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도 눈치챌 틈이 없다.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청하는 타이 총각에게 내가 다시 영어로 주문을 할동안 이미 형의 비서가 한차례 달려왔다 가더니, 곧 White Gallery 사장님의 방문을 받고 전시회 얘기를 나눈다. 화제는 상해, 제주도, 뉴욕과 LA, 그리고 파리와 페루를 왔다갔다 하는데, 불과 두세주간의 스케쥴 얘기이다.


이토록 바쁜 형이 나를 붙잡아놓고 아버지를 아프리카에서 임종하던 얘기를 푼다. 한달간 맨손으로 아버지의 똥을 받고 밤마다 끌어앉고 자며 아버지를 마지막 시간동안 '사귄' 얘기, 청소년이 다된 아들 녀석이 워낙 문제를 일으키지않고 조용히 살아서 웬지 오히려 불안하다는 아빠로서의 얘기를 내 아들의 안부를 물으며 하고, 삼개년 계획의 일급 비밀 사업 얘기, LA에 있는 Vogue Hotel의 숨은 지난날의 얘기를 하는가 싶더니, 떠억 하니 나에게 큰 훈수를 하나 던져준다. "임마, 너는 심성이 너무 착해서 언제나 갖다가 쏟아부어가며 살지만, 그런 엄마같은 사랑을 주기보다는,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보다는... 알어, 니가 도구가 되고싶어 하는거, 그치만, 그보다는 가슴 두근거림을 줄수 있는 니가 되란 말야. 그게 더 큰 힘이 될수 있어. 마냥 다 쏟아주는 것보다... 알지?!" 알것 같았다. 언제나 자신이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를, 마르고 닳도록 사용되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온 나한테는 한차원 다른 얘기였는데, 형의 언어는 신기하게도 한방에 한치의 흔들림없이 투명하게 내 마음에 전달되었다. "zen은 이미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이제 그 이상의 길로 가야한다!"는 형의 말씀이 오랫동안 누구도 흔들지 못했던 '발을 씻겨주는 예수'의 자세의 실용에 바탕을 둔 나이팅게일적 내 신념에 새 물결을 일으켰다. 신비롭게 아름다운 모양새로! 가슴 두근거림을 주는 사람... 더 어려운 숙제는, 더 완전한 사랑은 절제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형의 관심어린 통찰과 사랑에 고마움을 가슴 깊이 느낀다. 잊지 말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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