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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티 나인

문창현 |2007.01.14 11:53
조회 12 |추천 0
...마츠이 카즈코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선생과의 굴욕적인 대화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화가 치민다.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즉, '진학','취직','결혼' 이다. 놈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구역질나는 전제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이렇게 맥이 빠져 있는 것은 내일 다가온 처분 발표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학생 매스게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빠진 탓도 있는 것이다.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초등학교 때 감기에 걸려 사흘간 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교실이 그리웠다.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 돼지도 어릴 때는 그냥 놀면서 지낸다. 북경요리의 돼지새끼 통구이용 돼지 새끼만 빼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옥상에서 아래로 플래카드가 늘어뜨려져 있었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中 ----------------------------------------------------------- 대청소를 위해 들어간 교장실 벽 한 쪽에 걸려있던 대통령의 사진이 북한 주민들 집집마다 걸려있는 김일성 사진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던 국민학교 시절. 2학년때 남자 담임은 짝궁 남자 아이를 개패듯이 발로 밟았었고 나는 6학년 전체 체조시간때 국민체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회대로 불려나와 엎드려 뻗쳐를 했다. 그때 눈이 마주친 내가 좋아하던 9반 여자 아이의 웃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중학 시절, 독사같은 체육 선생의 공포의 바리깡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좀더 짧게 보이고자 모자를 쓰며 눌렀던 기억도,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뻗어 잠을 자다 수학 선생에게 한참을 밟히고 나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고 히죽대던 순간도 모두 기억한다. 지난 시절의 모든 기억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이고 추억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곱씹어 볼 수도 있을 기억들이지만, 분명 짖궃은 아이들로부터 다리가 끊어져버린 메뚜기처럼 더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음을 제어당했다. 결국 핑크 플로이드의 에서 나오는 '국수기계 같은 학교' 는 내게 많은걸 포기하라고 강요했으며 나는 조금씩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정한 크기의 한 가닥 국수가 되어갔다. 무라카미 류는 말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 정말 200 %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한데 그래도 2% 아쉬운건 1969년의 일본,2004 년의 한국의 모습이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음이다. 어릴적의 나와 지금의 아이들 또한 우습게도 똑같은 모습이다. '축제처럼 살고 싶다' 는 외침은 일탈을 거부하는 고정된 틀의 이 나라, 이 사회에선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는 소음같은 존재 인건지. 세상엔 항상 강요하는 쪽과 강요당하는 쪽만 있는건지.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하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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