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질 않지만 예쁜 이름을 가졌던 게 분명한 그 누나는 볼이 유난히도 빨갰다.
하얀 얼굴에 복숭아 빛 볼을 가진 그 누나는 파스텔로 그린 그림 같은 소녀였다.
남녀공학 이었던 우리학교의 2년 선배였던 그 누나가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누나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난 후 이었다.
그저 가끔씩 마주칠 때마다 예쁜 그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런, 소설과도 같은 병에 걸리다니, 하느님은 당신이 보시기에 너무 예쁜 사람은 이 세상에 두질 않고 당신의 곁에 두려 하시나보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번 주사할 때마다 백만 원도 넘는다는 인터페론을 맞아도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던 누나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언젠가 나도 한번 입원 했었던 그 병원의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보내야만 했다.
누나가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우리는 연도를 드렸다.
연도를 드린 후 병원을 돌아 나서는 길에 어둠이 내린 싸한 저녁하늘 어디에선가 'Stairway To Heaven'이 울려 퍼졌다.
가을축제가 한창인 병원 건너편의 대학교에서 어느 보컬그룹사운드가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그날 누나는 그렇게 '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며 천국의 계단을 올라갔을 거라고 우리들은 믿었다.
내가 속한 문예부에서 만든 교지 '등나무'에 누나를 추모하는 글과 시가 실리고 많은 학우들이 언제나 청아한 모습으로 복숭앗빛 향기를 머금었던 한 소녀의 죽음을 슬퍼했었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 해 본다.
언젠가 읽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리고'조용히 다가오는 나의죽음' 이라는 소 알도이시오 몬시뇰의 책도 생각이 난다.
모리교수, 알로이시오 몬 시뇰 두 분 모두 루게릭병에 걸려서 생을 마감하셨는데 죽음 앞에서 너무나 겸허하셨던 그 분들의 모습이 나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었다.
중학교1학년 때 친한 내 짝이었던 '도미니꼬 사비오.'란 세례명을 가졌던 유진호가 생각난다.
교내 하프마라톤 대회 때 택시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난 유 사비오는 방과 후 야간자습 시간이 끝나면 언제나 불 꺼진 성당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던 말이 없고 웃을 때 보조개가 유난히 수줍어 보이는 계집아이 같은 친구였다.
어느 수녀님의 말씀이 진호가 도미니꼬 사비오 성인처럼 너무나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더렵혀질까 염려하신 하느님께서 서둘러 데리고 간 거라고 하셨다.
진호를 묻던 날 양산의 천주교신자 묘지에서 홀로 슬프게 울던 까마귀의 노랫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은 기저귀를 차고 생을 시작해서는 기저귀를 차고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나의 죽음을 슬퍼 해 주고 나를 위해기도 해 줄 사람들이 있다면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친구의 장례식에서 폭죽놀이를 했다던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생각 해 보면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생을 마감한 공로에 박수를 보내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감을 축하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갰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나의 열매가 땅속에서 썩어서는 새 생명으로 되살아나듯 나의 죽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죽어 에너지가 되어서 내 이웃들의 삶을 데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번 관을 매어 보았다.
한여름에 죽은 이의 상한 시신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내려오기도 했었고,
관을 메고 비탈진 산길을 오르기도 했었다.
벽제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하는 죽은 이의 마지막을 지켜보기도 했었다.
알몸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나서는 어느새 잊힌 사람들…….
관을 매면서 나는 죽은 이에게 말하곤 했다.
이생에서 정말 수고 많이 하셨다고,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하늘나라로 가셔서 이생에서 누리지 못한 행복을 모두 누리시라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알 수가 없지만, 죽고 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관을 메어줄 수 있는 사람,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 Stairway To Heaven을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