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살인?"
그렇게 말하고 김전일은 포크를 접시에 내려 놓았다.
"야~ 전일아. 다 먹고 나서 얘기해. 입에서 씹던 밥알이 떨어질 것 같아. 아아~ 그만..."
미유끼가 냅킨을 전일의 입에 같다 대면서 말했다.
"됐어, 미유끼. 너나 얼른 먹어."
전일은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미유끼에게 내밀면서 입 속에 남아 있던 음식물을 넘기고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식사를 끝내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켄모치 경감에게 다시 물었다.
"교환살인이라면, 그거잖아요.
공범자와 죽이고 싶은 상대를 서로 교환한다는..."
"그래, 그 교환살인이야."
라고 켄모치 경감은연기를 뿜어내면서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자기가 죽이고 싶은 상대를 동기도 없는 공범자로 하여금 죽이게 하는 거니까 공범자와 연결이 옅어지면 동기를 단서로 용의자를 잡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걸 노리는 것 같다.
뭐, 나도 그런 게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건 처음이야."
전일은 다시 접시 위의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옮기면서,
"그렇다면 내가 나설 데가 아니잖아요?
범인 한 사람은 이제 잡혔을 테고,
그 녀석한테 공범자가 누구인지 실토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두운 취조실이나 그런 데서 불 앞에 앉혀 놓고 날이 샐 때쯤 돼서
'고기 덮밥 먹을래?' 같은. 그런 거 잘하잖아요, 아저씨?"
"형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넌."
켄모치가 말했다.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씩이나 와서
너한테 점심을 사고 있는 거잖냐."
"안 된다뇨, 왜요?"
그렇게 묻는 전일의 입가에서 고기 조각이 튀어 나왔다.
"저것 좀 봐, 또..."
라는 미유끼.
살인사건 이야기보다 전일의 단정치 못한 행동이 더 신경쓰이는 듯하다.
마치 엄마와 아들 같은 이 소꿉친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 얼마간 질린 얼굴로 피우고 있던 담배를 끄면서 켄모치는 말했다.
"나참, 그 유명한 명탐정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손자라고는 하지만 너 같은 못말리는 녀석한테 부탁이나 해야 하다니 나도 나지만 정말 한심하다. 에잇, 어서 먹기나 해! 얼른 먹고 내 얘길 진지하게 들으라고!"
켄모치의 이야기로는 이 기묘한 교환살인 사건의 무대가 된 것은 도내에서도 유명한 명문 사립고등학교라 한다.
피해자인 소녀,
세가와 나나코는 이 고등교의 1학년,
범인으로 체포된 것도 미시마 유리에라고 하는
같은 학교 3학년 학생이다.
세가와 나나코가 살해된 것은 귀가 도중에 공원에서였다.
범인인 미시마 유리에가 운이 없었던 것은
그 모습을 숲 속에서 그녀와 같은 반인 여학생이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학생의 증언으로 유리에는 다음 날 아침 바로 체포되었다.
"참 내, 밤 아홉 시에 공원 숲 속에서 여자애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켄모치 경감의 불평은 일리가 있다.
"어쨌든, 범인인 미시마 유리에의 증언으로 이 살인이
서스펜스 드라마도 무색할 정도의 '교환살인'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판명되었지.
뭐, 그 이후의 조사에서 피해자와 범인인 유리에는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는 해도 거의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지금은 그 여자애의 증언에 따라
우리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거지만..."
"교환살인이라면,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아저씨?"
전일이 물었다.
"아, 그 비슷한 사건이라면 일어난 적이 있어.
일주일 전쯤에 미시마 유리에가 죽이고 싶어했던 연적인
나카시마 루미라는 여자애가 실종됐어.
유리에 말로는 그게 그 교환살인 공범자의 짓 같대.
맨 처음엔 반신반의 하면서 그 교환살인 계획에 응했던 유리에지만,
공범자가 약속을 지킨 것 같다는 걸 알고,
자기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 같아."
"그렇군요. 그럼, 그 연적이었다는 애도 역시 죽은 건가요?"
라는 전일.
켄모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아니야. 유리에가 체포된 직후에 갑자기 나타났어.
약 냄새를 맡고 감금돼 있었던 것 같아."
"그래요?"
잠자코 듣고 있던 미유끼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혹시 처음부터 유리에라는 사람에게 자기를 대신해서 살인을 하게 하고 자기는 손을 더럽히지 않을 생각이었을지도..."
"음, 아마 그럴지도 몰라."
라는 켄모치
"너무해! 그렇다면 그 유리에라는 사람, 공범자한테 이용당한 거예요? 사람을 죽이는 건 물론 나쁘지만 속아서 거기까지 빠져들게 한 공범자를 더 용서할 수 없어. 그치, 전일아!"
"그렇기는 해... 하지만."
전일은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왜 유리에는 공범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거죠? 공범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어쨌든 배신을 당한 거잖아요. 보통은 화가 나서 자기한테 살인을 저지르게 한 놈을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켄모치는 한숨 섞인 연기를 뿜어내며,
"그게. 유리에도 그 공범자의 정체를 모른다는 거야."
라고 말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공범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요?"
라는 전일.
"응, 이름이나 얼굴은커녕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른다는 거야."
"그런 바보같은 짓이 어디 있어요. 교환살인까지 하기로 한 상대잖아요?"
"그게 이 사건의 이상한 점이야."
켄모치는 접시를 치우러 온 종업원에게 후식으로 커피 세 잔을 주문하고 빈 테이블에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미시마 유리에가 교실 책상에 한 낙서였나 봐."
"낙서요?"
전일이 머리를 갸우뚱거리자 미유끼가 딱하고 손뼉을 치며,
"있어, 있어. 나도 물리실이나 음악실같이, 자기 반 이외의 교실 책상에 낙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가끔 같은 책상을 사용하는 누군가에게 답장이 오기라도 하면 기분이 꽤 좋거든."
"그래, 바로 그런 거야. 그 애들이 다닌 고등학교에 역시 명문 사립학교답게 컴퓨터 실습이라는 수업이 있는 모양이야. 그 수업에 사용하는 교실 책상에 정말 시간을 때우려고 그랬는지, 지루함을 달래려고 한 건지, 무심코 써 버린 '저 여자, 죽이고 싶어'라는 한 마디가 이 사건의 공범자, 임의로 x라고 하지만 - 그 x와 알게 된 계기였던 거야."
미시마 유리에의 말에 의하면 그녀와 x와의 책상을 사이에 둔 편지 왕래가 시작된 것은 대략 3개월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연적에게 증오심을 불태우던 유리에에게 x가 공감하는 식으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지만 얼마 안 있어 x 자신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고 있는 사앧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환실인의 계획을 먼저 꺼낸 것은 x였다.
서로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서로 미워하는 상대를 죽이기로 한다.
그런 약속을 교환한 것이 2주일 전.
그래서 약속대로 체조부였던 유리에가 합숙여행을 하는 사이에 그녀의 연적은 행방불명 되었다.
"역시... 그래서 x가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한 유리에는 자기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x가 증오하고 있던 상대를 죽여야 했다는 건가?"
전일은 그렇게 말하고 종업원이 가져온 커피를 입에 댔다.
"그런거지. 그게 x의 교활한 덫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라는 켄모치, 괴로운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심한 이야기네요.
...하지만 잠깐만요. 그렇다면 용의자는 어느 정도 추려지는데요, 경위님?"
미유끼가 자신있다는 듯이 몸을 내민다.
"하긴, 같은 책상을 사용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그 학교가 몇 반까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호~, 미유끼도 꽤 하는데 그래."
켄모치는 헛기침을 하고,
"하지만 그 정도는 우리 역시 체크했지. 컴퓨터 실습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은 전학년을 포함해서 12개 반이 있다는군.
하지만 미시마 유리에의 자리는 교실에서 구석진 가장 뒷자리로 같은 책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
기껏 해야 세 사람밖에 없었어, 이게..."
"겨우 세 명이요? 그럼 동기를 조사해보면 알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저씨? 그 살해된 세가와 나나코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든지..."
전일이 말하자 켄모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그게 좀처럼 단정지을 수가 없어.
아무리 상대가 미성년자라고는 하지만 우연히 범인과
책상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렇게 막무가내로 해서는 정보를 얻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본인을 잡아다가 심문을 할 수도 없어.
그러다가 그걸 계기로 이지메라도 시작된다면
나쁜 결과가 될 수도 있어서 자칫하다가는
죄도 없는 고등학생의 장래에 상처를 입히는 꼴이 되니까 말야.
아무튼 조심해서 주위에 물어보거나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본인의 행동을 알아내는 게 그나마 전부야."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거 있어요? 어서 얘기해 줘요."
"어어. 그럼 먼저, 1학년인 아리요시 준페이인데,
그앤 살해된 세가와 나나코와는 동급생이야.
단, 자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놀기 좋아하고 밝은 성격이었던 피해자와는 공통점도 없는, 수수한 남학생일 뿐이야.
성적은 중하, 취미는 게임이라고 했던가?
뭐, 김전일, 너같은 타입이야."
"아유, 아저씨. 제가 어디..."
"조용조용! 전일아, 얘기 들어봐."
곧바로 미유끼가 달래준다.
"에엣... 그럼 다른 두 명은요?"
"다음으로 3학년인 오오츠카 마리. 이 애는 상당한 미인인 것 같아.
사진으로 봤을 뿐이지만 글쎄, 덧붙이자면 젊은 시절의
이와시타 시마 같다고나 할까, 음."
"이와시타 시마면 야쿠자 부인 아니에요?
이미지가 안 떠오르네요, 그런 예로는."
"시끄러. 음..., 그래, 그렇게 미인이지만 피해자와는 학년도 다르고 일치점은 하나도 없어. 다만..."
"다만?"
"어딘지 모르게 닮은 타입이기도 해.
피해자와 이 오오츠가 마리라는 애는 복장에서 머리형, 행동까지...
뭐, 요즘의 여고생들은 전부 어딘가 닮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저런, 아저씨 같은 소리만..."
"전일아, 실례야."
미유끼가 말린다.
전일은 단숨에,
"자, 마지막 한 명은 어때요?
어차피 그저 그런 정보밖에 없는 것 같지만요."
하고 말하고 따분한 듯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네 말대로야."
라는 켄모치.
"세 번째인 시마모토 미와라는 얘도
여기 3학년이고 피해자와는 표면상으로는 드러나는 관련은 없는 것 같아. 뭐, 구태여 말하자면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는 것 정도야.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으로 성적도 딱 중간 정도.
사교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많은 것 같지만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어."
"흐음... 그렇군요. 그럼 확실한 동기로 범인을 잡는다는 건 의외로 힘들 것 같은데요."
전일은 조금 생각하고,
"아저씨,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미시마 유리에와 x가 책상을 사용해서 편지를 주고받은 그 컴퓨터 실습이라는 수업, 일주일에 몇 시간 있는 거죠?"
켄모치는 검은 가죽 수첩을 훌훌 넘기며,
"으음... 일주일에 한 시간이네. 유리에가 듣는 건 화요일 둘째 시간이다."
"아까, 같은 책상을 사용한 세 명은요?"
"아리요시 준페이가 화요일 넷째 시간, 오오츠카 마리가 수요일 첫째 시간, 시마모토 미와는 월요일 넷째 시간에 컴퓨터 실습을 듣고 있어. 이건 유리에와 x가 책상에서 메일을 주고 받던 3개월 동안 바뀌지 않았어."
"x와 유리에는 3개월간, 계속 책상에 적은 것만으로 편지를 주고 받고 있었다는 건가요?"
"응, 그런 거지."
"그래요?"
라고 대답하고서 전일은 입 주위에 손을 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켄모치와 미유끼는 눈짓을 교환하며 그런 전일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럴 때의 전일은 보통의 고등학생이 아니다.
IQ180의 두뇌와 경이적인 발상력을 자랑하는 천재 소년탐정인 것이다.
1, 2분 정도 지나 기다림에 지친 켄모치가 아직 입에 대지 않은 커피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 때였다.
다시 전일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움직이던 큰 눈동자가 빛을 더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켄모치도 무의식 중에 몸을 내밀었다.
"뭔가 알아낸 거냐? 김전일!"
"아직 알아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뭔지 모르게 짚이는 게 있기는 해요."
"뭐냐, 그게?"
"그 전에 가르쳐 줘요.
지금, 용의선 상에 있는 세 명의 알리바이는 어떻게 돼있죠?"
"알리바이? 아아, 조금 기다려."
라고 켄모치는 수첩을 넘기며,
"3학년인 여학생 둘, 오오츠카 마리와 시마모토 미와는,
세가와 나나코 살해 당시에 알리바이가 없어.
모모츠카 마리는 밤에 놀러갔다 온 뒤, 집에 돌아오는 도중이었던 같고 시마모토 미와는 집에 혼자만 있었던 것 같아.
알리바이가 있는 것은 1학년인 남학생인 아리요시 준페이 뿐이야.
이 녀석은 범행 당일 밤에, 칙구 집에서 밤중까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어. 알리바이로서는 완벽하지."
"나카시마 루미를 X가 감금했다고 생각되던 시점의 알리바이는 어때요?"
라고 전일이 물었다.
켄모치는 의기양양하게 전일을 돌아보며,
"그것도 다 조사해 뒀지. 감금된 여학생이 납치되던 날은 일요일이어서 오오츠카 마리는 혼자 여기 저기 돌아다닌 것 같아.
알리바이는 없다고 해도 좋겠지. 시마모토 미와는 시내에 쇼핑하러 나갔던 모양인데 조사해보니, 납치사건에서 1시간 후에 단골 옷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그녀를 보았다는 정보가 있었어.
납치 현장에서 그 가게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일단 알리바이 성립이 되는 건가?"
"또 한 남자는요?"
"이 아리요시 준페이가 알리바이로는 가장 완벽하지.
아쨌든 큰 도구를 운반하는 연극부 합숙으로 나가노까지 갔던 모양이야. 동행했던 담당 선생에게 물어봤더니 그날은 하루 종일 연습이었다고 하고 도저히 도쿄에 돌아올 시간이 되지 않지.
아, 그러고 보니 김전일, 너도 이전에 연극부를 도운 적 없었나?
으음. 이 놈 정말 비슷한 타입이잖아."
"그만 좀 해요!"
"하하하. 뭐, 대충 알리바이는 이렇게 되는군.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해결해 온 하건을 돌아봐도 알리바이 같은 게
꼭 맞아떨어진 건 아니니까. 또 이 놈들 알리바이에도 별 것 아닌
트릭이 숨어 있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가능한 한 정보수집을 더..."
"필요 없어요, 아저씨."
"뭐?"
"그보다 지금부터 그 사건의 무대가 될 학교에 가보고 싶은데요."
전일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켄모치는 눈을 크게 뜨고,
"어... 어이, 지금 말이야?"
라고 말하며 따라 일어섰다.
"하지만 난 아직 커피도 다 못 마셨는데."
"그런 거 기다리고 있으면 오후 수업이 시작돼 버려요."
"안 돼, 전일아."라고 미유끼가 말했다.
"우리도 오후, 학교에서 시험 있잖아.
전일아, 출석일수 빠듯하지?
그런데다 시험까지 보지 않으면 거의 유급돼 버리고 만다고."
"괜찮아, 미유끼. 오후 수업은 꼭 들어갈 테니까.
그 때까지는 꼭 수수께끼를 풀겠어."
전일은 자신있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봤다.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으리으리한 석조 교문을 지나자
거기에는 공원과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초록으로 가득한 교정에 화단이 훌륭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잔디가 심어져 있는 광장 한 가운데에 늘어서 있는
키 작은 침엽수는 필경 졸업기념식수일 것이다.
역시, 전일이가 다니는 부동고등학교와는 보면 볼수록 다르다.
부동 고등학교는 다소 시간분배가 다른 것인지,
아직 오전 수업이 끝나지 않아 교정에 나와 있는 학생들은 드물다.
명문 사립고등학교라서 그런지 교사 안은 청소가 잘 되어 있어 깨끗했다.
부동고등학교와 같이 마루 타일이 벗겨진 채 있거나 복도의 형광등이 나간 채로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벽 여기 저기에 학생들의 낙서도 있다.
명문사립이라고 해도 고등학생이 하는 행동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듯하다.
켄모치 경감과 사무원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면서,
전일은 벽에 쓰여진 작은 낙서 몇 군데에 눈을 멈췄다.
"후미야, 사랑해."
"여자친구 모집 중. 답변은 여기에."
"코마 수업, 수업거부! 너무 어려워."
'코마'라는 건 선생님의 별명이겠지.
문득 어떤 얼굴이 떠오른다.
꼭 코끼리와 하마를 섞어 놓은 듯한.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전일은 웃음을 참으며 낙서에서 눈을 뗐다.
전일의 눈에 띈 것들은 어느것도 철없는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범인 X는 이 낙서를 살인에 이용한 것이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전일아, 여긴가봐."
미유끼가 말하며 전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올려다보니 목제 여닫이 문 위에 '컴퓨터 실습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 여기로."
사무원의 말에 켄모치가 문을 열었다.
교실 안에는 담당 교사인 듯한 남자가 죽 늘어서 있는 두꺼운 책상을 하나하나 돌면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 고마웠습니다, 요전에는"
켄모치가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전일과 미유끼를 교실로 불러들인다.
전일이와 미유끼를 보고 의아한 얼굴로 있는 교사에게 켄모치는
전일이와 미유끼를 '보조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우하하'하며 어물어물 웃음을 날렸다.
"켄모치 경감님, 저 선생님, 뭘 하고 계신거죠?"
작업을 계속하는 교사를 바라보며 미유끼가 물었다.
"아아, 저거."
켄모치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기재는 꽤 값이 나가나 봐.
저렇게 수업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있는
뚜껑을 열고 기재를 책상 안에 넣고 열쇠를 채운다는 거야."
"흐으음."
전일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교사의 작업을 지켜봤다.
뚜껑을 닫으면 자동적으로 컴퓨터 기재도
책상 안에 수납되게 작동하는 것 같다.
켄모치는 성큼성큼 혼자서 교실 구석까지 걸어가서
"그 x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 1번 끝자리 책상의 컴퓨터 본체에
해당하는 책상 일부를 사용해서 저지른 것 같다.
봐, 이렇게 컴퓨터가 나와 있는 상태가 되면 곧 바로 눈 앞으로 오지?"
켄모치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 위에 앉아 보였다.
주위는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컴퓨터 디스플레이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부분이 몇 번이나 지우개로 지운 듯이 다른 곳과 비교되게 깨끗하다.
무서운 교환살인 계획으로까지 발전한 편지 왕래는 누군가에 의해 여기에서 교환된 것이다.
켄모치는 일어서서 전일에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말했다.
"메시지를 교환한 데 사용한 부분은 보는 바와 같이 수업 중이 아니면 책상 안에 넣어두고 열쇠를 채워 버려. 결국, 용의자는 그 세 사람 중에 있을 확률이 꽤 높다는 거지."
"흐으음."
켄모치의 말을 들으면서 전일은 다른 책상을 둘러봤다.
회색 플라스틱 책상에는 어디에나 많은 낙서가 있었다.
따분해하는 학생들의 하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일은 켄모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저씨, 지문은 어떻게 됐어요? 이 책상에 지문은 남아 있겠죠?"
"물론이지."
켄모치가 대답했다.
"아홉 사람의 지문이 검출됐다. 누구의 것인지도 알아 뒀지.
이것만큼은 좀 오래된 방식이지만 학교측에 협조를 요청해서
이 교실을 출입한 반의 전원 지문을 받았어.
전부 학생들의 지문이었어. 물론, 그 세 사람의 지문도 있었지.
뭐, 당연하겠지만."
"그래요? 그럼 역시 틀림없군요."
"뭐?"
"범인을 알아냈어요."
"저..., 정말이야?!"
"정말이야, 전일아?"
켄모치와 미유끼가 서로 쳐다본다.
"응. x의 정체도, 그것을 지시한 상황증거도, 모두 나와 있어."
"그... 그럼, 김전일!"
그렇게 말하면서 놀라는 켄모치를 향해서 전일은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수수께끼는 전부 풀렸어요."
"이봐, 김전일, 거드름 피우지 말고 얼른 말해! 범인이 누구냐?"
180센티도 넘은 켄모치의 거구가 쫓아오는 것을
재빠르게 피하면서 전일은,
"어어... 진정해요. 그 전에 먼저 아저씨가 말한 세 사람의 용의자 중에 누가 범인이 아닌지 제거법으로 생각해 보지 않겠어요?"
라고 말하고 낙서투성이 책상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거법이라고?"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는 켄모치를 곁눈질로 보면서,
전일은 제 멋대로 자신의 추리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살인이 있었던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 오오츠카 마리와
시마모토 미와 두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엣, 무슨 의미야, 전일아?"
라는 미유끼.
"알리바이가 있어서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없으니까 범인이 아니라니..."
"보통이라면 네가 말한 대로야. 하지만 이건, 교환살인이라구요.
교환살인이라는 게 '무엇을 위해서' 하는 건지를 잘 생각해 봐요.
대답은 간단해요."
아직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켄모치와 미유끼에게 전일은
그 '무엇을 위해서'를 설명했다.
"먼저, 교환살인의 경우, 범인에게는 강한 '살인동기'라는
놈이 있는 거죠.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
동기가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용의자가 되는 거기도 하죠.
그렇게 때문에 동기가 전혀 없는 공범자에게 대신 죽이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그림자 속의 공범자가 서로 죽이고 싶은 상대를 교환하면 '동기 없는 살인'이 두 건이나 일어나게 되고 당연히 경찰의 조사는 어려워지죠. 그게 교환살인이라는 거죠
그런데, 아저씨. 이런 경우,
왜 경찰의 수사가 어려워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켄모치는 잠깐 생각한 후,
"그거야, 교환살인의 경우, 동기가 있는 진범이 불가능한 상황을
골라서 공범자가 살인을... 앗! 그런건가? 그렇기 때문에..."
말을 건 켄모치를 대신해 전일이
"그런 거죠. 오오츠카 마리와 시마모토 미와 중 누군가가 x라면 살인사건 당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놨을 거예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세가와 니나코 살해 당시에 집에 가는 도중이었다든지 집에서 혼자 있었다는 식으로 전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 낌새가 보이질 않았어요. 그래서야 교환살인의 의미가 없잖아요?"
"역시...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아닌 거구나."
미유끼는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것은... 범인은 남은 한 사람인 아리요시 준페이라는 거네, 전일아?"
"아니에요, 그것도 틀렸어요."
전일은 수수께끼같이 말했다.
"어?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반대에요. 아리요시 준페이에게는 나가노까지
합숙하러 갔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요."
"하... 하지만, 김전일. 지금까지도 그런 경우는 많았잖아, 얼핏 보면 완벽한 알리바이도 상상을 뛰어넘는 트릭이었던..."
켄모치가 말했다.
전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하루 종일 나가노에 있고 연극부 연습을 돕고 있던 사람이 도쿄에서 여고생을 유괴한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 같은 트릭을 생각해 낼 정도라면 교환살인 같은 건 필요없죠. 그 트릭을 써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많든 다음에 살인을 하면 되니까요.
교환살인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알리바이를 손에 넣기 위한 범죄인 거예요. 다른 방법으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는 범인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범행을 부탁하는 교환살인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법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팔짱을 끼고 새삼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유끼를 제치며 켄모치가 말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 그렇다면 김전일, 범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전일은 앉아있던 책상을 밀어제치고 일어서면서 생각지도 않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여기에 있는 선생님이에요."
"뭐?"
어안이 벙벙해 있는 켄모치와 미유끼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전일이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컴퓨터 실습의 담임 선생님이야말로 공범자 x의 정체입니다. 그렇죠, 선생님?"
교사는 작업을 하던 손을 멈칫하며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 턱은 이미 벌벌 떨리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은 이미 전일의 추리가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내, 내, 내가 왜... 왜왜왜..."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교사는 반론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전일은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증거는 지문이에요."
라고 말하며 성큼성큼 교사에게 다가선다.
"어, 어이 김전일!"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켄모치는 전일을 말리며 말했다.
"지문이라니, 너... 내 얘기를 듣지 않은 거야?
지문은 전부 학생들 것뿐이고 이 선생님의 지문 같은 건..."
"그게 바로 부자연스러운 점이에요.
아까부터 본 것처럼, 이 선생님은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책상 속에 컴퓨터를 넣고 뚜껑을 닫고 열쇠까지 채우고 있어요.
그렇데 어떻게 지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있죠?
학생들 지문은 책상을 사용하지 않는 녀석들의 것도 많이 남아 있는데 수업 때마다 책상을 만지작거리며 돌아다니는 선생님의 지문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럽잖아요."
교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한다.
전일은 계속한다.
"분명히 당신은 교환살인이 만에 하나 실패해서
미시마 유리에가 체포됐을 때를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미시마는 이게 교환살인이라는 것을 경찰에 말할 것이고, 당연히 책상을 조사해서 지문을 채취하게 되겠죠.
그렇게 해서 자기 지문이 나와 버리면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들게 돼요. 어쨌든 당신은 교환살인 같은 것을 생각할 정도니까 조사해 보면 바로 꼬리가 잡힐 만한 동기가 있을 테죠. 책상에서 지문이 나와 그로 인해 경찰에 자세히 조사를 받으면... 그렇게 생각해서 평상시에도 이 책상에는 지문을 묻히지 않도록 주의해서 컴퓨터를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어요.
그게 오히려 교실의 관리자인 당신의 지문을 이 책상에만 묻히지 않았다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낸 거죠."
"이 책상에만...? 그래!"
켄모치는 당장 휴대폰으로 수사본부를 불러 교실에 있는 다른 책상의 지문채취 감식을 의뢰했다.
그 동안, 교사는 양손을 입에 대고 벌벌 떨고 있기만 했다.
이제 자백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전일은 전화를 끝낸 켄모치를 보며,
"자, 다음은 아저씨가 할 일이에요. 고기덮답 차례잖아요."
"바보 녀석, 그러니까 텔리비전을 너무 많이 봤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켄모치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교사에게 걸어가서 말했다.
"선생님,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여러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동기는 시시한 거였어."
켄모치가 스테이크를 씹으려고 하고 있는 전일을 보며 말했다.
"그 교사라는 놈이 사실은 아주 이상한 놈이었나 봐.
피해자인 세가와 나나코가 중학생일 때
원조교제 손님이 된 적이 있었나 봐."
"세상에! 기분 나빠!"
미유끼가 그렇게 말하며 먹으려던 마지막 고기 한 점을
다시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종업원이 다가와서,
"치워도 되겠습니까?"
하고 묻기가 무섭게 그릇을 가져간다.
켄모치는 다 비운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놓으며,
"그래서 뭐, 세가와 나나코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때마침 그 교사를 만나게 돼서 그때부터 협박을 하기 시작한 거지.
세가와라는 애도 중류가정은 되는 데서
자랐는데, 정말 요즘 애들은 모르겠단 말이야.
그 교사는 교사면서도 바보같이 사진까지 찍혔다나 봐.
할 수 없이 세가와 나나코한테 몇 백만인가 돈을 빼앗겼다는군.
피해자의 방에서 동기가 된 그 사진도 나왔어.
결과적으로 보면 하찮은 놈이었어. x라는 놈도 말이야."
"정말,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애기뿐이네요, 경감님.
그래도 저 학교, 굉장한 명문이에요. 학교 성적도 꽤 넢고..."
미유끼의 말에 전일은 여전히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면서
"바-보, 학교 성적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물을 마셔 고기를 넘겼다.
"그렇기는 해, 왠지 전일이 네가 말하면 설득력이 없긴 하지만."
"뭐어? 너 말야, 난..."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전일아, 언제부터 선생님이 범인이라는 걸 눈치챈 거야?"
"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저씨 애기를 들었을 땐가,
뭐, 막연하게였지만."
"뭐어? 그건 또 어떻게야, 어?"
켄모치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다가오자,
전일은 담담한 얼굴로 입가에 손을 갖다 대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컴퓨터 실습이라는 게 따분한 수업이잖아?
지금 있는 교실 책상에도 온통 낙서투성이였고.
그런데 죽인다거나, 죽이자거나 하는 그런 위험한 내용의 낙서가 범인을 제외한 다른 생들의 눈에 전혀 띄지 않았다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히 그 선생이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책상에 써 두고 끝난 직후에 상대의 메시지를 읽자마자 지웠겠지. 그렇게 하면 다른 학생들 눈에 띄는 일이 없을 테니까."
"정말 그러네!"
켄모치는 열심히 듣고 있다.
전일은 의자에 앉아
"종종 누가누가 좋다는 얘기 같은 걸 책상에 쓰는 바보가 있지만,
그런 건 '여러번 읽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나부터도 자기가 사용하는 책상이라면 구석구석 뒤쪽의 낙서까지
파악하고 있으니까."
"그거야 커닝하기 위한 거 아니야?"
미유끼가 날카롭게 물었다.
"바, 바보! 무슨 소리야, 너~."
"어~ 열 내는 것 봐. 수상해~"
"어어?!"
두 사람의 장난도 아닌, 싸움도 아닌 행동에 물을 끼얹듯이
웨이트리스가 후식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금방 끓인 커피의 향기가 두 사람과 그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