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당신이라면 보고 싶은가|그놈 목소리

정태원 |2007.01.23 00:18
조회 1,760 |추천 13
영화는 제가 취미趣味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들 중 하나입니다.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즐기는 것을 넘어서 일로 하게 되었다면 더 이상 취미가 아닌 건가요.
작년엔 예전에 비디오대여점 파트타이머로 일할 때의 기록을 넘길 정도로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 편씩을 보아야만 달성할 수 있는 숫자가 나와서 오늘 잠깐 세어보다가 저도 조금 놀랐네요. 본다고 다 기억에 남고,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요. 좋아서 감탄하며 꼭 기억해둬야지 했던 영화들도 많았지만 역시 모든 영화에 대만족이었던 것은 아니예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기도 있고 의무감에 억지로 무리해가며 본 영화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전히 좋아하는 일이며, 계속 하고 싶어지는 일입니다. 아직은 충분히 질리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가끔은 '그렇게 힘들여가며 굳이 왜 보나', 라는 물음에 딱히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다른 것을 할 만큼 좋은 일을 찾지 못했기도 하지만 영화를 꾸준히 보게되는 갈증이란게 있나 봅니다.   그래도 인위적으로 항상 새로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환경 속에서 꾸준히 영화를 보다 보니, 개인적인 취향의 호오, 재미있다와 재미없다 이외에도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 아닌가라고 계속 저울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일로 만나는 사람에게 '그 영화가 터질 것인가'를 맞춰내는 감이란 필수지요. '뭐, 잘 되겠지' 라고 대충 에둘러 말하는 대신에 '개봉 후 2주 동안 서울 관객은 OO만명이다!'고 숫자를 뽑아내는 것이 적어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훨씬 이야기 하기 편합니다.   자신의 취향이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면 이런 흥행 결과 예상하기가 객관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사람이니 적당히 자신을 객관화하여 영화의 흥행 결과를 숫자로 근사치에 가깝게 예상해야 한다는 것은 역시나 어려워요. 더우기 이를 신빙성있는 정보와 경험치나 이론적인 판단 등으로 도출해낸다 해도 결국은 자신의 감으로 짚어내야 하는 마지막 상황에 오면. 전 취향이라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싶어집니다.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장애요소와도 같아요.   매우 재미없는 상업영화나 도도하고 고루한 예술영화ㅡ물론 위의 수식어는 모두 지극히 저의 기준입니다ㅡ이런 경우라면 흥행 여부를 따지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상업영화라면, 흥행의 감을 떠나서 얼마나 흥행을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문제이지 흥행의 성패에 대해서는 역시 두말할나위가 없다는 것이므로 이 역시 혼동될 만한 여지는 적은 편입니다. 이렇기만 한다면 취향이니 예측이니, 에서 오는 혼란이란 그리 발생할 경우가 많진 않겠지요.   하지만 문제란 항상 쉽게 넘어가지 않지요. 개인적인 취향과 알량한 경험치, 영화적 완성도, 흥행적인 요소, 예측 가능한 변수가 감안되는 시장 상황 등이 모두 교묘하게 저의 판단 기준을 넘어서는 혹은 빗겨가고 있는 불편한 영화가 있다는 거죠.  


 

오늘 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영화에 대한 모두의 기대치가 동일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에 대한 예상치를 충족했고 게다가 흥분과 센세이션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매우 강렬하고 힘이 넘칩니다.   박진표 감독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주듯, 관객이 자신들의 관음증을 의식하며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이를 피하기는 커녕 극단으로 몰아붙이며 오히려 관음증 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입장을 당당하게 설파하는 르포성 화두를 들이대지요. 그의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속편하게 주인공에 몰입할 기회를 만드는 대신 인물들의 끔찍한 재난과 불운으로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냉정하리만치 차가운 시선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와중에 결국 그/그녀를 동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선한 이웃으로 관객의 변화를 요구하지요.   영화를 보는 와중의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러나 강렬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는 위험을 무릎쓰고 기꺼이 옐로 저널리즘의 논조로 뛰어드는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에 감응하는 선한 관객의 탄생입니다. 여기에는 고증의 철저함이나 장면의 형식적인 아름다움, 영화적 기법의 대담한 시도 대신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성실한 연출, 어떠한 성취를 향한 작가적 야심 대신 가공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알리고 싶은 기능적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지지요.   의 황정민과 전도연이 해내었던 농촌 촌부와 술집 여급의 지극하고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그 자체로서는 전형적이지만 감독은 이를 AIDS라는 소재와 실화라는 무게감, 그리고 이들을 여성지에서나 다룰 법한 선정적인 시선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이라는 이중의 잣대로서 설계함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큰 효과를 이끌어내었습니다. 그의 영화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영화적으로 기능하며 관객들에게 소구되었던 전례를 되돌아볼 때 그의 영화들은 일정 부분 작가적인 체취보다는 오히려 뉴스 앵커의 경직되리만치 사실에 충실한 보도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예상대로 매우 '쎄게' 뽑혀 나왔습니다. 설경구와 김남주는 예상대로 멋진 호연을 펼쳤고 보는 내내 실제 이야기를 접하는 듯이 소름이 끼쳤습니다. 사실 실화는 더욱 무서웠을 거예요. 마지막 엔딩 전에 공개한 범인의 목소리와 몽타주 영상, 필적 등은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운 자연스러움이 배어나 더욱 끔찍했거든요. 

 

상영 시간 동안 침통한 듯 몰입하여 보는 사람들도 많았고 저도 영화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어요. 끝이라는 안도감 대신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도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리고나서 너무나 처절하고 아픈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다소 겸언쩍어 하면서도 서로 스코어에 대한 예상을 교환했지요.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생생한 감흥에 어느새 무뎌진채 말이예요. 그러고 보면 도 어쩌면 그러한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벗어날 수 없는 시장에 내놓여진 상품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전 아직도 영화에 대한 판단을 결정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렇게 수치화해버리고 잊어버리기엔 뭔가 마뜩찮은 기분은 과연 무엇일까요.

 

적어도 이 영화가 제 취향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영화는 아니지만 개인적 취향으로 재단하기엔 버거운 영화라는 점은 인정하니까요. 재미라는 표현도 역시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예요. 뭔가 굉장한 것을 보았다라는 데에는 기꺼이 동의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게 하는 의무감은 어쩐지 강요받았다라는 점에서 역시 싫군요. 결국 애호가적인 관점도, 직업적 관심도 해결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정말 궁금해지네요.

전 그래서 가 개봉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추천수1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