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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 숲의 내부 (2)

최용진 |2007.01.23 12:49
조회 10 |추천 0


 

 

 

[숲의 내부] - 2부

 

 

 

검은 숲.
숲이 검다라는 말에 이견을 달지 마시길. 숲은 어둠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땅거미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출발신호와 함께 마을을 엄습하는, 태곳적부터 있었으면서 잠자코 기다리던, 내가 들어가주지 않으면 또 몇 만년 손님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검은 숲 말이다. 들어가준다. 네가 외로웠다면 내가 오찬을 함께 해주마. 여태껏 한 번도 침략당하지 않았다면 내가 너의 첫 남자가 되어주마. 네가 나와 한 판 승부를 원한다면 기꺼이 응해주마. 습한 곳을 싫어하던 건전한(혹은 건조한) 성격을 개조하여 낯선 곳으로의 입문이다. 나는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이 눅눅한 숲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따라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른발.
하필이면 오른발이었다. 숲과 가장 처음 맞닿은 신체부위. 정성스레 햇볕에 말렸으나 채 마르지 않은 오른쪽 신발. 그 오른발이 숲에 먼저 닿은 것은 반드시 계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오른발과 함께는 왼손이 나간다. 왼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책 표지에는 습한 수장이 찍혀 있다. 숲의 표면 결계에 맞부닥낀 곳은 내 몸의 일부이지만 숲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없이 자유로운 발상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의 통과 벽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고 그 경이로움에 흠칫 놀라는 것처럼 나는 숲에 겨우 발 하나를 건네놓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떨림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습기라고 해두자. 숲의 습기라고 해두자. 출입문을 통과한 내 몸 구석구석을 숲의 습기가 세심히 반겨주는 것이라고 해두자. 그 증거로 심장은 고요하지 않은가. 이상하리만큼 고동이 없다. 오히려 차분한 것이 생경할 정도로 내 마음은 편안하다. 그러니 습기라고 해두자. 환영 인사인가.


거짓말.
역시 삼촌은 장난이 심한 사람인 게 틀림없다. 삼촌은 숲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숲에는 고양이 귀신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 고양이 귀신이라고? 하핫! 그런 장난을 15살이나 된 나에게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 아닌가. 15살, 남들이 보는 것보다 훨씬 성숙해 있을 나이. 어차피 타인이 나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과 내 동선일 뿐. 그것을 탓하기엔 논리가 부족하긴 하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나는 이미 고양이 귀신을 뛰어넘을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고작 그런 것으로 농을 치려 들다니, 그저 숲이 음험하기에 삼촌이 가지 말라고 핑계를 대는 것임을 나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러기에 그런 거짓말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삼촌이 나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 듯한 소재를 찾았어야 했다. 고양이 귀신보다 고양이 시체가 훨씬 근사하다. 숲에 고양이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고 한다면 한 번 고려해 볼 만 하다. 들어가기 싫어진다. 가뜩이나 눅눅한 숲 속에 고양이 시체들이 이 곳 저 곳에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다고 생각하면 망설여질 것 같다. 반복. 마침표. 연속. 다음 기회에. 이런 상상에 얼굴이 조금 찡그려진다.


길.
숲에 온 몸을 적시고 한 동안 그 찝찝한 습기에 얼굴이 찡그려져 있었을 즈음, 나는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확히 길이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한, 숲 안으로 이어지는, 규칙적인 탐험으로 자연스레 생성된, 조그만 협로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풀을 밟아가며 숲을 왕래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 좁은 길은 나에게 관음의 시작을 알리는 표식이기도 했다. 순간부터 느려터진 내 심장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느린 것을 찬미하던 나였지만 이 순간만큼 느린 내 심장이 미련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심장이 쿵쾅 뛰었다. 이제야 어울린다. 무릇 긴장이란 이런 것이 아니던가. 온 몸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 그것이 긴장 아니던가. 갑자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책을 꼭 쥐었다. 자꾸 책이 미끄러지는 것 같아서 꼭 쥐었다. 몸이 살짝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 떠 있는 상태, 내가 정확히 두 발로 지면을 밟고 있는지 의심이 되기 시작한 시점, 검은 숲 사이로 서툴고 거칠게 나 있는 협로에서 눈을 떼고 싶다는 머리 속의 지령에 정작 눈이란 소중한 기관은 반기를 들고 정확히 직시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맞닿은 마음의 공간. 꽤 한참이나 지속된 그 마비를 깬 것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꿈틀거림이었다.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경련을 살짝 일으키면서 몰입의 여흥이 깨졌다. 다시 이성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부지런해졌다. 좋아. 네가 나를 이리도 맞아주는구나. 내가 탐험해주마. 처음 상처를 낸 것은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저 뒤늦은 관광객일 뿐이다. 철저히 객관적으로 대해주마. 좋아. 잡생각 금물. 숲 안으로 이동한다.


인격.
인격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에게도 사실 인격만은 존재하는 것이다. 인격은 사람의 전유물이다. '나는 왜 사는가.'  8살 때 새로 이사간 집, 내 것이 될 방 벽지에 굵은 매직으로 누군가 휘갈겨 써놓은 문구였다. 아마 그 전에 살던 사람이 적어놓고 면벽수련을 한 모냥인데, 도배를 하는 내내, 그 위에 깔끔하고 단아한 새 벽지가 발라지기 전까지 나는 줄곧 그 문구를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배가 끝나고 벽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는 벽 구석에 조그맣게 같은 문구를 적어 놓았다. 뾰족한 볼펜 심이 마르지 않은 벽지에 상처를 낸 것이 거슬리긴 했지만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8살, 내가 새로 이사를 한 그 때부터 나는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신기했고 하마터면 애초부터 없었을 뻔 했을, 나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왜 사는가. 인격 때문에 산다. 스스로 가지게 되었든, 누가 선물로 부여해 주었든 간에 그것 때문에 어쨌든 살아간다. 그런 고결한 인격을 나는 지금 숲에게 숭고하게 나누어 주고 있는 중이다. 타인이란 어떤 때에는 친해져야 할 대상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숲은 나를 환영해주었을지언정, 나는 숲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건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호기심과 적절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숲에 인격을 부여하고 정복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오히려) 길은 포근하다. 물기를 머금어서인지 약간 폭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좁아서 주의를 요하는 것 빼고는 조용한 것까지 맘에 들 정도로 아늑하다. 그러나 마음은 질투심으로 가득 차있다. 숲은 벌써 가을기이 때문인가. 나보다 어둠을 빨리 알고, 나보다 가을맞이를 먼저 마친 숲을 질투하는 것인가. 아님, 나보다 숲을 빨리 알고, 나보다 성장을 먼저 마친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인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은 더 습하다. 더 어둡다. 과학시간에 암순응을 배운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때는 아마 졸지 않았던 것이겠지. 아무튼 지금은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나아간다.


개울가.
내가 항상 그 옆 어딘가에 앉아 책을 읽던, 숲 밖의 개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숲 안에 작은 개울이 있더란 말이다. 숲의 좁은 길이 이어지는 곳에 작은 개울이 있었다. 이것은 여러모로 숲 밖의 개울과는 달랐다. 숲의 개울은 깨끗했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으니까.) 깊이는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지만 땅보다 1미터 정도 아래에 흐르고 있어서 그냥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도 가냘픈 통나무 하나가 움푹 꺼진 개울물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숲으로의 여정이 여기서 끝날 뻔 했다. 통나무, 역시 길을 내어 놓은 사람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유일한 건넘 수단. 그러나 보기에는 위태한 것이 여실한 외 나무 다리. 발을 디뎌 놓을까, 아님 돌아설까. 그렇지만 그냥 돌아서기엔 맞은 편에 묵묵히 이어져 있는 길이 너무나도 매혹적이더란 말이다. 더욱이 맞은 편 길은 조금 이어지다가 오른쪽으로 굽어져 있었다. 그것이 마치 여자 애가 부끄럽게 속살을 감추는 것처럼 수줍어 보여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 굽어진 길 뒤 편엔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을까. 참기 어려웠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는 이 의식을 통과해내야만 한다. 위태해 보이는 통나무, 자칫 떨어질 수도 있는 이 개울을 건너야만 보고 싶은 것을 볼 수가 있다는 사실이 퍽이나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합리적인 사고방식, 처음과 끝, 모든 것의 개연성, 너무나도 명쾌한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저 길의 오른편, 보이지 않는 곳만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한 성질의 장소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나는 통나무에 발을 올려 놓았다. 좋다. 정복해주마. 건너주마. 숲이 나에게 관문 통과를 요구한다면 이쪽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온 몸으로 맞서주마. 묘한 경쟁심과 오기가 드는 것은 이미 숲에 적정량의 관념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집중해야만 한다.
그것은 실로 내게는 어려운 행위. 집중이란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내가 원하면 더욱 이루어지지 않는 천덕꾸러기.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빼앗은 뒤 자신을 봐달라고 나의 뺨을 때리는 도도한 아가씨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자비심을 베풀어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심정 가득이다. 통나무는 심히 흔들렸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내 마음 또한 흔들렸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분량보다 걸어온 만큼이 자꾸만 더 생각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흔들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발을 올려놓지 말았을 것을, 금새 후회의 감정이 드는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다. 분명 이 통나무 다리의 창조자께선 어디를 밟아야 안전한 지 알고 있을 텐데. 지금 나는 꽤나 절실하다. 창조자의 비법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비슷한 곳이라도 밟아 무사히 이 다리를 건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흔들림에 균형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반쯤 건넜을까. 나는 뛰어난 운동신경에 기댄 안도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균형을 잡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별거 아니로군. 나는 정복자의 우월감과 숲이 제시한 테스트에 응하고 있는 내 성실함에 대한 사랑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앞을 바라 보았다. 저 길을 걸을 것이다. 어서 반대편으로 건너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통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듯 했다. 되었다. 개울을 건넌 것이다!



숲의 반격.
나는 번쩍 뛰어 반대편에 착지했다. 그것은 참으로 찰나였는데, 통나무에서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반대편으로 도약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통나무 다리를 거의 건넜을 즈음 갑자기 숲에서 무언가가 푸드득 하고 하늘로 날았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휘청이다가 반대편으로 뛴 것이었다. 그리고 살았다. 참으로 비겁하구나. 다른 수단을 사용하여 나를 공격하다니. 좋다. 어차피 날것도 너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쉽겠지만 내가 승리했다. 너의 반격을 반사적으로 피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럼 됐다. 게다가 땅은 습기를 적당히 머금고 있어서 별로 바지에 묻은 것도 없다. 이 정도면 큰 손실은 아니다. 압도적인 승리에 비하면 손실은 소소한 정도이다.


큰 손실.
정작 큰 손실은 내 손에 쥐고 있었던 [우울과 몽상]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책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일어나서 개울가로 다가가 조심스레 아래를 살펴보았다. 이런, 책이 개울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순간 책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안착한 날렵함에 대한 자축으로 기뻐하던 것이 창피해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소중한 책을 떨어뜨리다니. 이게 어떤 책인데. 아버지가 모처럼 주신 용돈으로 구입해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책 아니던가. 다행히 책이 물에 젖지는 않아 보였다. 거짓말처럼 개울 옆쪽에 얌전히 떨어져 있어서 잘하면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저 책을 주우려 내려간다면 여태껏 온 힘을 다해 다리를 건넜던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게 못내 마음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주우러 가지 말까? 하나 새로 살까?' 유혹은 빠른 속도로 마음을 침식했다. 참으로 고민이었다. 고민은 세부적으로 이어져 이제는 지갑에 용돈이 얼마 남았는지도 찬찬히 헤아려 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개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만약 그 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저녁밥을 먹을 시간까지 그 곳에 앉아서 고민을 지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등 뒤편 숲 속에서 또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숲 밖에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명료하고 큰 소리였다. '아' 소리 같았는데(정확히는 '윽아'였던 것 같다.) 짐승의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 소리 같기도 한 이 비명은 무언가 터진 숨이 제 소리를 내는 듯한 굉음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뇌가 빠르게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귓가에 울리고 있는 뭉그러진 소리의 잔재는 숲이 만들어내는 메아리와는 또 다른 '어떤' 것이었다. 순간 벌떡 일어났다. 이젠 책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새로운 자극이 책을 대신하여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듯 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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