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명동이나 인파가 몰린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문구를 찾아볼 수 있죠.
"예수 믿으면 천국, 불신은 지옥!"
몇몇 기독교인들이 참 여러 사람 눈살 찌푸리케 하는 플랜 카드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참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케케묵은 교리 이야기나 간증을 우연히 접하게 되면 머리가 먼저
복잡해지는 저 뿐일까요? 사실, 저도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말이죠.
3년 정도 전쯤 됐을 거에요. 저도 한 기독교 단체에서 전도 생활에 열심이던 학생이었죠.
가끔은 차를 타고 어른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앙을 전하기도 하고 집주인과
곧잘 논쟁을 벌이던 선배 교인들을 보면 저는 "어떻게 하면 교리 논쟁에서 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등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조금 더 훌륭한 전도사가 되기 위해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일이란 상대방과의 논쟁에서
이기고, 어떻게 내 자신을 기독교 지식으로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죠 .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전도를 위해 선배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먼 곳으로의 이동을 위해 함께 6인승 봉고에 타게 되었습니다. 시동을 키고 차 문을
막 닫을 때 쯤, 저 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눈물을 지으며 우리에게 오시더라고요.
"아저씨들....내 아들 못 봤어요? 지금 우리 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네요. 하느님...제발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제발.."
너무나 간절한 말투로 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6살내기 아들을 함께 찾아달라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 때는 막 전도를 다 마칠 시간이었고, 몇 군데 안 남은 시점이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이동 시간도 지연되고 전도가 무척이나 비효율적이 될 상황이었죠.
무척이나 안타까운 눈치였지만 우리 중에 누군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의견이 좁혀지고 한 선배가 아주머니에게 공손한 말투로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할 일이 있어서 도와드리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근처에
아이가 있을 거에요. 꼭 잘 한번 찾아보세요." 라고 말씀을 드렸죠.
실망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아주머니가 우리들을 여러 번 번갈아 쳐다보셨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 좀 같이 찾아달라고...." 순간 아주머니의 눈빛이 저와 교차하며
수많은 생각과 만감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전도를 해서 한 두 명을 더 포획하고 같은 종파로 만들어 누군가를 천국, 지옥으로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데.
설득을 해서 개종을 시키면 뭐하나. 만약 이 아주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영원히 잃어버린다면
우린 더 큰 죄를 짓는 것이 분명해. 종교인을 떠나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걸거야......'
그리고는 차 문을 열었습니다. 막 떠나려는 아주머니의 어리둥절한 표정, 그리고 "이탈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선배들의 표정은 아마 잊지 못 할 거에요.
"너 지금 뭐하는거야?" 라는 혼쭐이 내려졌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1시간을 헤맸습니다. 걷고, 뛰었으며, 누볐습니다.
무척 힘이 들었지만 결코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없다면 두 사람의 인생이 비참해질 지도 모를거라는 본능적인 아집에서
비롯된 거라고 할까요?
.....1시간이 막 지나고 지쳐갈 때 쯤 무렵, 당시 아주머니를 처음 봤던 지점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경찰서 구석에서 새곤새곤 잠이 들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애절한 눈물은 곧 감격과 행복의 눈물로 바뀌었고,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던
감격으로 저는 휩싸였습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되찾아줬다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했다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그 때 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친구들과 교리 논쟁을 해서 이기고 설득했던 순간보다 천배 만배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평소에 주위 친구들과 종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지옥에서의 사투였다면,
낯선 아주머니를 도와 처음 본 아이를 부둥켜 앉은 것은 분명 천국에서의 쾌락이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사선을 넘나들며 저는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내가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만약 신이 계시다면 바로 그 분이 원하시는 바가 아닐까요.
이후 다시는 아주머니와 그 아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가는 택시 비까지 받을 뻔했지만,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 일로부터 그 이상을 배웠으니깐요. 
요즘 여러 종교 혹은 자치 단체들이 봉사활동에 정말 열심이죠.
장애인 보조 기금에 앞장서는 분들도 계시고,
양로원을 방문해 외로우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고, 또는
인력이 모자라는 개발도상국에 직접 자비를 털어 자원 봉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앞서 말씀드린 제 개인적 경험담은 새발의 피일정도로요... )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것 .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닙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역사에 이름이 남겼던 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예수, 그리고 현대 시대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
이 어떻게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남기고 모범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탁월한 전도 방법 때문에? 뛰어난 인간관계 경영?
예수 그리스도 때의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여러 면에서 예수의 제자들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각 분야의 석학들이 모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왜 그들은 상대적으
로 얄팍한 지식의 제자들보다도 떨어지는 평판을 받았을까요?
인종 평등을 외쳤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나 자비와 자애를 외쳤던 테레사 수녀가 어떻게 각각 기
독교와 천주교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랑을 베풀었고 인간으로서 인간적인 태도를 고수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이 천대받을 때 앞장서서 친절 및 선행을 베풀었고, 인종 차별을 당하거나 못 사는 이
들을 위해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던지고 바쳤습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예수와 이들의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인간다운 삶. 진정한 종교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특화시켜 주고, 바깥으로 끌어내는 훌륭한
장치라 저는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유무 논쟁, 수많은 시시콜콜한 종파 내외 논쟁, 교인들
의 권위 투쟁 등등..이런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가 유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시라도 아까운 시간에 불우 이웃이나 가난한 이들, 아니면 옆 집에 막 이사 온 이웃들에게 따뜻
한 말 한 마디를 전하는 행위 . 아무런 목적없이 선의를 베푸는 행위가 바로 종교인이 아닐까요..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난 그런 사람을 진정한 종교인이
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