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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바 마사키 1만字 인터뷰

박은지 |2007.01.28 22:25
조회 141 |추천 2

★ 大切な家族 소중한 가족

 

유치원떄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께 맡겨졌었어.

애기떄는 외가 쪽이었다고 해.

부모님이 가게를 하고 계셔서 굉장히 바쁘셨으니까.

그래도 쓸쓸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않았어.

엄마한테 응석부리는 대신에 할머니한테 딱 붙어있었어.

 

유치원에 마중오신 할머니랑 매일,

집이랑은 반대 방향에 있는 과자가게에 들렀어.

내가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었지만 말이야.

결정된 금액 내에서 어린애다운 방식으로 골라서 사는게 즐거웠어. 할아버지는 영화라든가 야구를 보러 데리고 가 주셨어.

엄청 놀아주셨지.

 

여러가지를 알려주시기도 하고.

"사람에게 폐끼치지 말아라." "밥을 남기지 마라."

"돈 빌리지 마라." 또 있어."보증서지 마라."라든가.

어렸을 때니까 의미도 몰랐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그런 좋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였는데

여러가지를 곤란하게 하곤 했어.

할머니는 꽃을 아주 좋아하셨어.

정원 한 구석에 꽃을 기르셔서 꽃가루받이 해서

키위를 기르거나 하셨어.

그걸 내가 막대기로 쳐서 전부 망가뜨려버렸어. 할머니, 화나셨지.

 

'어쨰서 이런 일을 하니'하고 우셨어.

그건 정말 죄송했어. 지금도 마음이 아파.

그떄부터는 화초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

혹시나 밟지 않도록, 꽃이 있는 곳은 신중하게 걷게 되었어.

 

그래도 정말로 굉장히 좋은 정원이었어.

어린애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나무도 있었고,

친구도 불러서 자주 정원에서 놀았어. 그 나무가 말이야.

굉장히 이파리가 우거져서 안에 있으면 밖에서 안보이게 돼.

비밀기지 같아서 굉장히 좋아했었어.

 

동생이 태어났을떄부터는 가족 4명이서 살게 되었어.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일은 그다지 기억에 없어.

언제부터인가 애기가 있었다는 느낌.

같이 놀수 있게 되자 처음으로 내가 형이라는 걸

의식하게 되었던 것 같아.

동생이 3살이 되었을때부터 내가 목욕시켜주었어. 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하고 내 멋대로 씻도록 한거였지만.(웃음)

 

남동생이랑은 자주 싸움을 했어.

뭐든지 바로 엄마한테 일르는 거야 그 녀석은.

그래서 내가 열받아서 다시 싸움을 하고.

나 골프채로 맞아본적 있으니까. 위험하지?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내가 뒤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덤벨이 발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것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웃음)

그래도 아팠었어- 뭐, 나도 캐치볼 하다가 동생 얼굴에 정면으로

맞춘적이 있으니까. 그것도 키요하라 선수의 사인볼.(웃음)

코피가 확-하고 나서 놀랐었어. 우리 형제 불량한 사고들이 많았어.

 

아버지는 화나면 무서웠어. 특기는 반복해서 따귀때리기.

여러번 맞아봤어. 어찌나 강했는지 몸이 날라갈 것 같았어.

매일 무거운 중국 요리용 냄비를 들고 있으니까

팔힘이 장난 아니야. 지금까지도 근육이 줄어들질 않아.

그렇지만 아버지가 화낼 때는이럴 때다 라는 게 있었던 거니까

평소에는 엄마쪽이 무서웠어.

 

동생을 2층 창문 밖으로 던질려고 했었으니까. 엄청 울었었어.

나도 소중하게 여기던 마이클 조던(아이바짱이 동경했던 사람. 창밖으로 던져졌던 건 중1때 처음으로 샀던 조던 모델의 농구화. '그래도 내 발엔 안맞았어. 열심히 용돈이랑 새뱃돈이랑 합쳐서 산거였는데. 그 뒤에는 소중하게 진열해놓았지.') 의 농구화를 엄마가 창 밖으로 던진적이 있어.

왜 혼났는지는 기억못하지만,  그건 엄청 기억에 남아.

나, 울면서 주우러 갔었으니까.

 

그런 일이 있고부터 '우리 부모는 열받으면 무섭다'라고

형제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그치만 가게가 쉬는 날인 수요일에는 매주 외식하러 가거나 했고, 여행도 엄청 다녔어. 굉장히 즐거웠었어.

왜인지 모르지만 TV 게임은 사주지 않으셨지만서도.

하고 싶을때는 집근처의 "토이짱"이라고 하는 형 네 집에 갔어.

 

그 사람 엄청 가지고 있어서. 자주 놀곤 했어.

소학교때는 수영 수업을 아주 좋아했었어.

수영할때 모두 틈만 나면 쉬려고하지 않아? 신기한 일이었어-

친한 녀석이 꾀부리며 쉬고 있어도 나는 혼자서 엄청 첨벙거렸었어. 3살부터 스위밍스쿨에 다녔으니까 헤엄치는 걸 좋아해.

 

정말로 매일 운동만 했었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농구하고 토일은 야구.

TV도 그다지 보지 않았어.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으니까

자주 흉내내며 혀를 내밀고 농구를 했었어.

그래도 그건 입안이 말라버리니까 할 수가 없었어.

그 상태로 농구하는 건 무리 (웃음)

 

프로레슬링도 좋아했었어.

프로레슬러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걸.

친구랑 기술을 갈고 닦았어.단순한 프로레슬링 놀이였지만 (웃음) 집에 아버지의 트레이닝 머신이 있어서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한 환경은 갖춰져 있었지만 말이야.(웃음) 동생은 그걸 자주 사용했었어.

 

나는 거기서 차이가 벌어지는 걸 느꼈지.

지금 동생은 몸이 엄청나거든. 엄청 강해.

복싱같은것도 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싸움하면

져버릴꺼라고 생각해.

그래도 19살이 되서도,"라이온 킹"의 DVD에 빠져있곤 해.(웃음)

 

그리고 우리집에는 많은 동물이 있어.

아버지가 좋아하셨어. 어렸을떄부터 작은 동물원 같앴어.

개랑 다람쥐랑 앵무새랑 금붕어랑. 다람쥐는 귀여웠어.

소학생이었을때 있었어. 이름은 리-상.

 

가장 최근의 펫은 육지거북인 곤타.

어느날 일 끝나고 집에 와보니까 갑자기 있어서 놀랬어.

집안을 기어다니게 하면 개가 흠칫흠칫 거리면서 접근하곤 해.

그게 재밌어.

 

나도 동물은 좋아해. 유치원 다닐 때 올챙이를 길렀어.

너무 기뻐서 기뻐서 언제나 지켜봤어.

먹이 같은 건 하루에 10번이나 주기도 하고.

그랬더니 말이야, 어느날 뾱 하고 발이 나온거야.

엄청 놀랐어. 나 몰랐었어.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다는 걸.(웃음)

 

첫 사랑은...뭔지 잘 모르곘어.

나 유치원때 후지시로 상이라고 하는 애랑 자주 놀았었구나-하고 생각은 하는데."좋다"라는 건 느껴본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그 애는 나보다 키가 컸었어.

소학교 다닐때도 많이 좋아한 애가 있었고.

선생님도 좋아했었고. 어느게 첫사랑일까......

 

 

 

 

★ ジャニ-ズJrになる 쟈니즈 주니어가 되다.

 

중학생이 되었을떄부터 농구부에 들어서

더더욱 농구에 집중하게 되었어.

그때 "아이러브 SMAP"(테레비 도쿄 91년~96년 방송) 을 보고

"SMAP랑 농구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었어.

 

우리반에 쟈니즈 통인 여자애한테 "SMAP이랑 농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라고 상담했더니

"쟈니즈 사무소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라며,

여러가지를 알려줬어. 라고 해도 그다지 응원해준것도 아니고

"정말로 보낼꺼야? 농구할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라는 느낌으로.

나도 "그렇구나- 그럼 부활동 하고 있으면

언젠간 할 수 있겠지"정도의 기분이었어.

 

그래서 1달 정도 후에 오디션에 불려졌을때는 놀랐어.

춤추라고 해도 출 수 있을리 없었고.

"쟈니즈라는 곳은 춤추지 않으면 안된다"라는거

그때 거기서 처음 알았어. "춤추는 구나. 쪽팔려-"라고 생각했어.

애초부터 나는, 농구공을 들고 갔었으니까.

넘 당황해서 감춰버렸어.(웃음)

 

그 후에,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이름을 말하게 하고,

햄버거를 받았던게 기억나.

"특기는?"이라길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어.

그래도 쟈니즈 주니어가 되어버렸었으니까.

 

부모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어.

사진을 보낼때도 얘기는 했었는데 "하고 싶으면 해봐라?"라고

하셨었고. 맨 처음 렛슨하러 갈떄는 고민했었어.

뭘 가지고 가야되는지도 몰랐고, 상담할 수 있는 상대도 없었고.

 

그래도 렛슨은 즐거웠어.

무슨 말을 들을땐 곤란했지만 즐거웠으니까 계속했었다고 생각해. 제일 처음에 외웠던 안무는 V6의 "TAKE ME HIGHER".

외우는 건 힘들었어.필사적이었지. 처음으로 갔던 방송국은 TBS.

당시의 대기실과 같은 타입의 대기실을 지나갈때가 있어.

 

그러면, 그때 일이 생각나.

사무소에 들어온지 1년 후인 여름에는 무대 "STAND BY ME" (97년 7월23일~8월31일.오사카. 아이치.도쿄에서 상연. 아이바짱은 고디역.크리스는 니노.테디는 마츠모토.반은 주니어인 이쿠다 토마군) 에 나가게 되었어.

 

연기라는 거 한적도 없었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대사의 분량에 놀랐었지만, 압박같은 건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연기했었어.거기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어.

4명 모두 사이가 좋았으니까 굉장히 즐거웠었다는 기억이 있어.

 

주니어 시절에는 드라마("보쿠라노 유키 미만도시"닛테레 계.97년 10월~12월방송.주연은 KinKi Kids.감독은 츠즈미 유키히코 상. 마츠모토도 출연.)에 대해서도 영화("신주쿠소년탐정단"98년 개봉. 공연자는 마츠준.칸쟈니8의 요코야마유군.후카다 교코 짱. 카토 아이짱. 사카이 와카나 짱) 에 대해서도 , 가르쳐준대로 할뿐이었어.

 

목적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

"8시다J"(테레비 아사히 계. 98년 7월~99년 9월에 방송되었다.

쟈니즈 쥬니어 출연방송. 아이바짱은 MC 히로미상에게 '슈퍼 아이돌 아이바짱'이라고 명명되었다.)라든가

 

버라이어티 방송에 나와서도 '능숙하게 말해야지'라든가

'눈에 띄어야지'라는 건 생각하지 않았어.

TV에 나오는 자신을 봐도 그다지 별 생각이 없었어.

가끔 사람들에게서 "봤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기뻤었지만. 고민하거나 하지도 않았고, 이 일이 내 자신에게 어떤 건지 정말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그냥 저냥 즐겁게 해왔던 것 뿐이야.

 

 

 

 

★ 嵐デビュ- 아라시 데뷔

 

아라시가 된다는 사실은 내가 멤버 중에 제일 마지막에 들었어.

라디오 일을 하러 가는 도중에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을 들어서.

"뭐지?"하고 생각했는데 4명이 있었어.

거기서 갑자기 "A.RA.SHI"의 안무가 시작된거야.

그리고 3일 뒤가 하와이였어.(아라시 데뷔 발표는 99년 9월 15일, 하와이에서 행해졌다) 정말로 뭐가 뭔지 몰랐었어.

 

쇼군이랑 오노군이랑은 그 때까지 거의 말해본적도 없었고.

데뷔한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고.

불안하고 불안해서 무서웠어.'나,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그래도 곧,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야'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계속 일이 있어서,

망설이고 있을 짬같은 건 없었어.

그 때까지는 '어쨌든 즐거우니까' 해왔던 것이니까

'어쨌든 안하면 안된다'로 바뀌었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것은 악수회가 성대하게

열렸을때라고 생각해.('A.RA.SHI'의 발매일에 있었던 99년 11월 3일.국립요요기 경기장에서 열린 데뷔 이벤트. 11월 28일에는 오사카 돔에서 열려 도합 8만명의 팬과 악수했다) 그렇게 모여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어.

 

CD가 10만장 팔렸다라는 소리가 들려도 확하고

다가오지 못했는데, 실제로 8만명, 한사람 한사람과 악수하고 나니, 그 무게라는 걸 싫더라도 알게 되던걸.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5명이서 잡담같은 걸 할때가 굉장히 즐거웠었어.

당시의 매니저상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라서.

이동중이라든가 언제나 모두를 크게 웃곤 했어.

 

그런데도 일로 토크를 해야할 일이 생기면, 전혀 달라져 버렸어.

아까까지만해도 하이텐션이었던 건 어디로 갔을까 하는 느낌으로. 1st콘서트할떄는 다섯명이서 토크 연습을 했었어.

"한번, 30분 말할 수 있나 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었어.

 

그렇지만 하고 있는 도중에 연습하고 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멋대로 방을 나가버리는 녀석이 있거나 해서........

너덜너덜했었지.(웃음)

그래서 본방때 30분 이상 말할 수 있게 되었을떄는 굉장히 기뻤어. "말했어~!"라며.

 

소년대의 니시키오리상과 NY에서 특별방송을 했을떄도

우리가 너무나도 심각했기에 사무소 사람에게 혼났었는걸.

"너희들은 카메라 앞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한다"라고.

그건 우리들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굉-장히 괴로웠어.

그런데도 무슨말을 해야 좋은지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되는 건지 몰랐었어.

 

"말하기 싫은거냐?"라는 소리를 들어서,

필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었어.

아라시가 되고서 혼났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모두들 굉장히 다운되었어.(이 방송에 출현했던 것은 니노 이외의 4명.니노는 드라마촬영을 위해 일본에 남아있었다) 아라시는 말이야, 혼나면 바로 풀이 죽어. 보여보여. 맥이 다 풀린 모습이.

 

확실히 우리는 5명 각자의 캐릭터가 달라.

그래도 다르다고 해서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떠든다고 해도 전혀 재밌지 않았어. 각자의 개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소 오바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다는 것은

맨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머리로는 알겠는데도

실제로 어떻게 나타내야되는지 알수가 없었어.

선배들의 콘서트 MC를 보거나, TV에서 개그맨들이

말하는 것을 본다든지.

그렇게 해서 찾고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느낌이야. 

 

 

 

 

★ 1人の仕事で見えるもの 혼자서 일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내 스스로의 캐릭터를 내보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은 "Aの嵐"("Dの嵐"안의 방송으로 아이바짱 담당코너. 아이바짱이 흥미있어 하는 것을 갖고 바보 실험을 반복한다. 매회 실험 결과를 총괄하는 아이바짱의 코멘트가 포인트) 가 시작되었을 때였을꺼야.

그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게 된게 그 코너로,

거기서 드디어 지금의 내 캐릭터가 겨우 완성된거야.

 

"천재!시무라 동물원"(닛테레 계 04년 4월부터 방송중) 도 맨 처음에는 굉장히 고민했었어. 매회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아!말해야겠다.'라고 생각은 해도 타이밍을 모르거나 했었어.

다운됐었어. 한마디 정도 밖에 말을 못하고 수록이 끝나면.

스탭한테서도 ' 좀더 말해야지' 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일단은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런거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구' 라고 마음 속에서는 생각했었어.

 

아라시 내에서 말할때는 내 역할도

확실하게 할 수 있으니까 안심됐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된 건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었던 거니까. 완전히 처음인 곳에서 단지 나 혼자의 힘으로

내가 있을 장소를 하나하나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힘듬.

그 어려움을 이 방송에서 배웠어.

 

새삼스럽지만 엄청 공부가 되었어.

그래도 말이야, 그런걸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거야.

어떤 상태에도 '확실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 이 일을 하는 능력의 최저라인이니까. 정말은 그런 곳에서 힘들어하고 있으면 안되는 거지. 원래는 거기서부터 재미있게 해나가기 위해서 나를 방송에

부른거니까 나는 이런 힘이 부족하구나-하고 생각했었어.

시무라 (켄) 상께 그런 이야기를 했어.

그때부터는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셨어.

 

그리고 스탭에게 '로케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어.

스튜디오에 있는 것만으로는 정말로 말을 못하니까

로케에 갈 수 있다면 그걸 계기로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로케에 갈 수 있게 되었을때는 정말로 기뻤어.

그것도 1회 뿐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코너가 생겨버렸잖아. ('아이바의 동물원수행'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곳에서 유니크한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몸을 던져 수행중) 호랑이라든가 사자라든가 과격한 것들도 많지만 전혀 멀쩡해.

물려도 괜찮다는 기분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말이야.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것들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뒷부분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TV 안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이니까.

저럴 떄 뒤에서는 어떤 걸 생각하고 있다 라는 건

별로 알게 하고 싶지 않거든.

 

 

 

★ メンバーへの手紙 멤버에게 편지

 

그런 식으로 혼자서 일을 하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때가 아주 많았어.

아라시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에 대한 기쁨이라든가

아라시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라든가.

나, 아라시 엄청 좋아해. 지금 내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평소에도 나도 모르게 말해버리고 말아.

 

'멋져 아라시.너무 좋아' 라든가.(웃음)

"24시간 테레비"에서 내가 쓴 멤버에게의 편지같은 것도 그랬고. 그래도 그걸 쓰는 건 상당히 고민했었어.

대학 노트 1권 사용했었는걸. 

맨처음엔 문장이 아니라 데뷔 때부터 있었던 일이라든가

기억에 남는 걸 조목조목 썼었어.

 

그거 쓰는데 1권을 사용하고, 그떄부터 문장으로 만들었으니까.

노트 2권이 된거지. 그건 아무한테도 안보여줄꺼야.

여러가지가 쓰여져 있어서 부끄러운걸.

쓰고 있으려니까 잊어버렸던 것들도 여러가지가 떠오르더라구.

쓰면서 울뻔하기도 했으니까.

 

"HERE WE GO"투어는 깊은 추억이 있어.

매일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1시간 정도 밖에 못자면서 콘서트 했었는걸.

지금이라면 절대 안해.(웃음)

"미안해. 콘서트에서 다치는 거 무서우니까 자게 좀 해줘" 라고

말할꺼야.(웃음) 그떄는 정말로 모두들 절박했었어.

위기감은 느끼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야좋을지 모르겠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할까, 굉장히 불안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일 절대 불가능하지.

데뷔 하고 1년 정도는 "쟈니즈의 새로운 그룹"이라는 것만으로도 주목해 주잖아. 그게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면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를 내보이지 않으면 점점 주목하지 않게 돼. 

 

좀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룹 자체에 매력이 없으면 무언가를 내보여도 주목해주지 않아.

우리 사무소의 선배들 그런부분에서 굉장하다고 생각해.

각자가 점점 힘을 모아서 다시금 새로운 것을 해나아가잖아.

아라시도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어."라는

생각은 강해. 그렇기 때문에 "대단하구나"하고

한마디로 끝낼 문제가 아니야."지면 안돼!"정도의 이야기야.

 

나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어.

그것도 아라시가 된 덕분이지. 점점 목표같은 것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어.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으니까. 욕심도 있지만,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을 클리어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든가,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다 라든가,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었으니까.

그렇게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내 안에서 부적같은 것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어.

 

 

 

 

★ 病気のこと 병에 걸렸을 떄

 

그런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아라시가 되고나서 2년 후 정도.

한번 그렇게 되면 엄청 열중하곤 했어.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해버렸어.섹스폰 같은 것도 역시 그랬었어.

그걸로 인해 병에 걸렸을때가 가장 힘들었어.(02년 3월. 갑작스럽게 "자연기흉"이라는 병에 걸려서 입원, 수술했다)

사실은 어렸을때부터 몸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아서

병이라는게 먼 존재는 아니었어.

 

의사선생님과 친구가 되버릴 정도로,

어릴 떄는 자주 병원에 다녔었어.그래도 입원은 한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입원했을 때는 정말로 무서웠어.

아라시의 비디오("아라시의 비디오 'ALL or NOTHING'.02년 6월에 발매. 멤버 각자의 레벨업을 위해서 이러저러한 것을 도전하는 모습을 쫓는 , 반 다큐멘터리 형식의 비디오) 를 찍기 위해 섹스폰 라이브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계속 연습했었어.

 

그 날도 연습하고 있으려니 '아프다'는 생각이 들더니

바로 걷는 것만으로 아프게 됐어.

전조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놀랐어.

그 상태로 수술하게 되어서, 5일간 입원했었으니까.

 

부모님이 굉장히 걱정해주셔서 고마웠지만,

혼자서 병원에 있으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구.

떄마침 "ナイスな心意気"(02년 4월에 발매된 8번째 싱글. 嵐와는 다른 그룹인 アラシ로써 7대3가르마와 안경낀 양복 컨셉으로 음악방송 등에 등장) 의 프로모션 시기였는데도 그것도 할 수 없게 되버러셔, 솔직히 '아라시 짤릴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입원 중에 한번 뿐이지만 음악방송 수록에

갈 수 있었을 떄는 굉장히 기뻤어. 막 수술한 뒤라서 아팠지만.

그래도 아프더라도 나갈 수 없는 것보다는 나았어.

멤버라든지 주변에게 폐 끼치는게 제일 괴로웠어.

병원에서 계속 블루하츠의 곡을 들었어.

 

가사가 긍정적이라서 굉장히 좋았어.

지금도 블루하츠를 들으면 그떄의 기분이라든가

병실의 공기까지 떠올라.

그게 너무나도 선명해서 반대로

들을 수 없게 되버린 시기도 있을 정도로. 

 

섹스폰은 중학교떄부터 동경해왔었어.

武田眞治상이 부는 것을 보고 나,음악실로 뛰어갔었는 걸.

그래도 열쇠가 채워져 있어서 만질 수가 없었어.

멋있어. 섹스폰은. 그건 (세계가) 깊어.

손가락으로 누르는 부분이 같더라도 부는 방법에따라서

다른 음이 나와. 연습하는게 즐거웠어.

 

병 떄문에 섹스폰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었을떄는

정말로 속상했어. 벌써 뮤지션분들에게도 부탁해두고,

촬영장소도 결정되었었는데. 그걸 위해서 굉장히 연습했었는데.

스탭에게 "1번만이라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엄청나게 부탁했었지만 안된다는 소리를 들어서.

속상했었지.비디오도 내 부분만 그냥 인터뷰하는 걸로 되어버렸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5일간의 일은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떨어진 위치에서 아라시를 볼 수 있었고.

그떄까지도 일은 좋아했고 소중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어.

가슴에는 지금도 그떄의 수술자국이 있어서,

매일 볼때마다 그떄의 기분을 떠올리며 '힘내야지'하고 생각해. 

 

그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그떄의 기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지나치게 열중해버리는 것도 스스로 세이브 할 수 있게 되었어.

확 하고 뛰어가는 것도 싫어하지 않지만.

그걸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되어버린다면 큰일이잖아.

그런 부분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  

 

 

 

 

★5周年について5주년에 대해서

 

작년에 5주년을 맞이하면서 여러가지 감상등 묻거나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 되돌아볼 시기가 아니라서.

반대로 되돌아보거나 하면 기운이 빠지게 될 꺼 같아서 무서웠어.

기세라는 건 중요한거야. 나름대로의 경험과 테크닉이 몸에 붙어있다면 기세가 없더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서도

아직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것은 갖춰져 있지 않은걸.

 

어쩄든 지금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어.

여러가지 일을 해보고 여러가지를 흡수해서.

언젠가는 '이거라면 아이바'라고 하는 걸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그게 뭔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깨닫게 되버려서 그것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도 뭔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모처럼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들이 어떤 10주년을 맞을 지는 지금의 노력에 달려있어.

 

어떤식으로라도 달라져 있겠지.

작년에 "24시간 테레비"를 맡은 것으로 아라시는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는 느낌이 들어.

지금부터 다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하고 생각해.

 

 

 

 

★ 友達 친구

 

내 생각이 바뀌었던 건 또 한가지.

20살이 넘어서 알게 된 친구들의 존재가 컸어.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래도 모두들 목표를 확실히 갖고

자신의 필드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개방적인 사람이 많아.

 

'어쨌든 움직이기만 하면 밥은 먹을 수 있잖아'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 나, 꽤 낯을 가리는 편이야.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은 사실 그다지 말을 못해.

그래도 익숙해지면 왠만한 일에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래도 사람에 관해서는, 그릇이 작다고나 할까

여유가 없는 사람과는 안맞는지도 몰라.

일이 바쁘니까 그만 나 자신만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때는 있지만 

창끝을 친구에게 향하거나 해서 친구를

상처입히는 일이 되버리면 안되잖아?

 

나도 여유가 없게 될 때는 있지만,

그때의 창끝은 스스로에게 향하게 하니까.

그런 나를 친구가 변명해주거나 할 때는 있지만서도. 

 

그런 친구랑은 장난아니게 바보스럽게 놀곤해.

한번은 똑같은 티셔츠라든가 파카.모자. 스트랩까지 만든적이 있어. 만든것 까지는 좋은데 어디서 입을 꺼냐는게 문제지.

바보지?(웃음)

 

그런걸 하고 있어도 "여기다"라고 할때는

제대로 결과를 내는 사람들이야.

분명히 만나지 않을때 어딘가에서 엄청 노력하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나 말이야, 그 친구들이랑 만나기 전까지 "결과가 전부가 아니야. 열심히 한다는 의식이 있어"라고 생각했었어.

그치만 열심히 한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니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자든 여자든. "열심히 안하고 있어요"라는

상태 쪽이 이상한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얼마나 나 스스로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더라도

결과가 따라와주지 않으면 그건 단순히 "생각"으로 끝나는 거라는 것도. 그건 굉장히 꼴사나운 일이야.

 

그런 사람, 아무도 신용해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제대로 결과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비하면 아직까지도 

"열심히는 하고 있어요"라는 건 말할 수 없는 거니까.

당연히 '재능'이라고 하는 벽에 부딪칠 시기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단어를 변명으로 쓰거나 하면

안되겠지. 뭔가, 그런 것들을 알게 해준 친구들이야.   

 

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그런 친구들과의 시간이라든가 아라시에서 떨어져 있을때

공부할 것도 많아. 그렇게 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늘려서

위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이

 

아라시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연애도 그런 의미로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거기서 다시 여러가지 곤란한 경험을 하고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웃음)

 

동네 친구들과는 지금도 사이좋아.

말하자면 "피칸치"의 다섯명 같은 존재니까.

같은 곳에서 자라고, 어렸을떄부터 서로를 알고 있어.

그런 친구들은 소중해.

 

몇년전에는 매일 아침까지 볼링을 했던 시기도 있었고.

모두 금방 뜨거워지거든. 기본적으로 나랑 닮았어.

그런 친구들 중에서 결혼한 녀석이 생겼어.

그래도 역시 결혼을 하면 확실하게 하게 되더라.

놀더라도 제대로 가족에게 신경을 쓰고.

 

아침까지 볼링은 이제 할 수 없게 되버렸구나 하는 느낌.

그건 조금 쓸쓸하거나 하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굉장히 행복해보여. 애기 사진을 보여주거나 하는걸.

그떄의 얼굴이 또 엄청 기뻐보여서 말이야.

 

힘든 일도 있을 꺼라고 생각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지켜야만 할 것을 만들어간다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난 아직 무리지만 말이야. 나만으로도 힘에 부치니까.

그런, 아내와 자식까지 돌볼 여유가 없어.(웃음)

아라시도 언젠가는 결혼하는 멤버가 나오겠지만서도.

어떤 느낌이 될까? 그것도 아직 상상 불가능이야.

지금은 어쨌든 열심히 여러가지를 한다.

 

일에서도 노는 것에서도, 어중간한게 제일 싫어.

그럴꺼면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하고 싶다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고. 멍하게는 못있어.

골프도 지금 즐거워서 어쩔 수가 없어.

취미의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가지지 않는 다는 것. 일을 하면 좋아한다는 것 가지고는 안되잖아.

 

거기에 덧붙여서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가지 경험을 하거나 해서,

그것이 나 자신을 향상시키는 게 되고,

아라시를 위한 것이 된다면 아주 좋은 거잖아.

그렇게 해서 지금부터 또다시 해 나가고 싶어.

아직은 계속해서 달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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