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문화예술재단 예술기획부장 김형석
세계 4대 패션도시라면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이라던가?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 중심가에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의 작품이 있다. 실물 크기보다 수백 배를 확대한 대형 바늘에 오색실을 꿴 조형물인데 국제적 패션중심도시의 위상을 간단명료하게 상징화한 예술가의 독창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예술의 권위주의에 저항한 팝아트의 가벼움과 대중성이 좋다. 유럽으로 출장 갈 때, 한국 언론에서 청계천 공공미술로 시끄럽던 논란의 당사자가 올덴버그의 작품이었기에 더욱 시선을 끌었다.
올덴버그/nail and thread,2000
"스프링처럼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항상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환경과 예술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서울시에 34억 원의 작품을 기증한 KT 기업의 문화마인드는 감동이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확대, 재해석해 도시에 유쾌한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작가 올덴버그...... 물과 빛이 어우러진 조형탑을 통해 생명의 근원인 ‘샘’의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올덴버그의 조형물 ‘스프링(Spring)’을 대한민국 특별시, 서울에서 만난다는 건 너무 유쾌하다.
대중들의 심리를 관통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문화를 활용한 상술과 서구 중심적인 미술사조에 이견은 있다. 그리고 환경과 투명성을 명분으로 공공미술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낸 미술인들과 단체의 진정성에 의문표를 달려는 것도 아니다. 문화적 사대주의자니, 명품이나 좋아하는 ‘된장남’이란 소리를 듣더라도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들처럼 “세계속의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도시라면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불멸의 대가 작품 한 점, 소장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라고 반문해 본다.
작년, 포항국제불꽃축제 광고를 보고 찾은 경북 포항시 북부해수욕장에서 70만 인파가 몰려 백사장에는 발을 디뎌보지 못하고 자동차 통행을 제한한 도로 위에서 발돋움질로 본 불꽃쇼는 환상이었다. “포항시가 주최하고 행사예산 13억 5천만 원 전액을 주관측인 포스코가 제공했다... 지역 문화마케팅 기대효과도 크고 관광객 유치로 하루 동안 150억 원 정도의 관광수익을 창출한다”고 포항시청 축제계 공무원은 말했다. 포항, 광양에서 펼치는 포스코의 각종 문화활동으로 ‘한국 메세나 대상’ 수상 기업으로 선정돼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는데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상황에 지역민들의 예술 향유를 위한 기업의 문화 참여 확대의 좋은 본보기인 것 같아 흐뭇했다.
대통령 선거 등 변수는 있지만 올해, 해양문화관광도시 거제시의 성장동력의 한 축인 향토기업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여 새 주인을 찾는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은 당연히 기본이겠고, 메세나 대상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거제시민들의 ‘좋은 이웃’으로 이사 왔으면 하는데 경남, 거제시민들과 함께 문화마인드 있는 기업 유치를 위한 시민 캠페인이라도 펼쳐야 하나?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투명성’을 위해 문화의 하향평준화가 목도되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의 시대! ‘무능해서 슬픈 대통령’이란 보수언론의 노처녀 한탄 같은 사설을 읽어야 하는 권위가 실종된 우울의 시대! 돈사(豚舍) 같은 현대인의 삶에서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 일지언정 작은 위안이 ‘예술’이다. 배부른 돼지로 살기도 싫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로도 살기 싫다. 문화라는 기댈 언덕이 있고 그 복(福)을 나누어주는 돼지들과 함께 살고 싶은 게 소시민의 작은 바램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황금돼지 해라는 정해년(丁亥年), 부자 3대 없다는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12대를 만석꾼으로 산 경주 최부자집 가훈이 가슴에 다가오는 새해 아침이다.
...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주역(周易)에서 인용했으며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