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일전 반가운 사진한장을 이메일을 통해 건네받았다.
울 아부지의 유일한 어릴때 사진 .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린이 시절의 사진은 단 한장도
남아있지 않아서, 아주 귀한사진 이다.
이 사진도 동창모임의 인터넷 동호회에서 수소문을 하여 찾은거다.
난 처음으로 아빠의 어린모습을 보았다 .
여전히 빛나는 외모 , 동자승처럼 머리를 밀고, 앞으로의 삶이 어떨
지 모를 순수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 때 당시엔 최신모델이라고
자부하는 카메라를 아빠는 바라보고 있었겠지.
아빠도 이 사진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듯,
나랑 잠시 대화를 멈추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아직 어린 여동생은 아빠의 모습이 웃기다며, 까르르 웃어대고,
엄마는 당신은 역시 자연산이였다며, 뜻하지 않은 기쁨(?)을
표현했다. 나 역시 엄마의 장난에 맞장구를 쳐주며, 웃었다.
사실 사진한장이 뭐가 대수인가.. 해서 그냥
아무소리없이 앉아만 있었다.
아무튼 사진한장으로 우리가족은 바쁜일상에 빼앗긴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의 상자에 보관하게 되었다.
그 날밤 - 모두가 잠든사이, 가만히 나 혼자서 생각해 보니,
아까와는 다르게도 눈물이 났다.
뭐랄까 .. 어떤이유든, 누구의 자식이든 예뻐보이기 마련인데,
단 한장의 사진도, 그림도 남겨두지 못한 여유로움의 한탄이랄까..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통을 알아서 그런거 였을까 ..?
왜 내가 그런기분이 느껴졌던걸까 ?
사진이란 정말 소중한 존재중 하나이고,
인간의 인생을 기록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데,
아빠는 소중하게 기록해 오던걸 잊어버리고 훼손되어,
그저 복잡한 인생에 한가닥의 실처럼 자기혼자 기억되어
오고 있었던거다.
슬펐다 . 안타까웠다 .
눈물을 닦고, 다시금 생각해 보니, 아빠는 자기를 돌볼
시간조차 없었다.
17살 어린나이에 충청도에서 홀로 서울로 상경해서
사회에 발들여, 하고싶던 공부도 못하고,
건축기술을 배웠다. 그 때당시에는 귀한 기술이여서, 아주 어렵게
배웠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잘라 시골에 있는 부모님과,
3명의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어야 했고,
한창 꿈을 가져 펼칠 25살 때, 엄마를 만나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22살의 나이에 나를 낳았고, 턱없이 부족히 모아둔 돈이 있
었어도, 우리 세식구는 물도 안나오는 쪽방에서 2년반을 살았었다.
그저 이렇게 끝이 났음 좋았을걸, 없는살림에, 어린 나까지 건강이
좋지않아 대학병원을 수시로 다녔다.
우리 가족은 남모를 고통과, 어려움에 산전수전
고생을 다 했었다. 제일 큰 희생양은 엄마였지만, 그걸 바라보던
아빠또한 힘들어도 강하게 버텨나갔다 .
내가 조금만 착하게 태어났더라도, 이런 고난은 없었을텐데,
이런 자식을 바라보던 애비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고 ...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었고,
나 또한 지금 만큼이나 건강이 좋아졌었다.
어느정도 기반이 잡혀있던 해에 결혼식 조차 올리지 못하고 살
아오시던 부모님은 결혼식을 하셨고, 다음해에 내 동생이 태어났다.
그 뒤론 아버지의 사업은 우리 지역 건설업체에서 아빠이름만 대도
알만큼 크게 커졌었다.
이 많은일들을 일궈내는동안 복이 없던걸까, 운이 없던걸까 -
왜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던걸까 -
겉으론 단 한번도 탄식하지않던.., 아빠 .
그래도 아빠도 사람인데, 유일한 도피처는 국선생이였는데,
아빠가 가끔 국선생과 놀다오면, 신경질만 부리고, 불같이 화만
냈었다.. 난 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화난암소마냥 거칠어
졌었는지 - 왜 이게 효도를 둔갑한 불효였다고 알아채지 못한걸까 ?
정말 열심히 살아오고, 노력하던 아빠였는데, 너무나 많은걸 이루어
낸 아빠였는데, 왜 항상 이거밖에 못하냐고, 매몰차게 내쳤던걸까 ..
아주 싸가지가 오가지 없게도, 난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후회할 일을 왜 했던건지, .. 마음이 씁쓸해진다 .
아빠는 국선생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때로는 슬퍼 우는지, 화가나 던져버리다가도,
비단천으로 어루만져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불혹평생 그랬듯, 도피처인 국선생과는 아주 친하다 .
몇년 전 내가 알려준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만나고, 또다른 세상에
묘미도 알아가고 있다.
몇년에 한번씩 기내식도먹고, 인어공주와도 만나고, 무전기와 통신
을히고, 마음속으로 사고싶은차를 그려보기도 한다 .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항상 조금씩
발전시키고 있다.
또 갖고싶던 가전제품을 하나하나 모으고,
가끔 인생한방을 노리는 분노의 번호찍기^^; 놀이도 한다.
아빠의 시간 .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 아버지는 생각조차 못하던 일이였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게 일궈낸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
물론 엄마도 고생을 많이했지만, 가장이란 이유때문에 힘든내색
하나 못하던 아빠는 대단했고, 멋있었다. 아니 지금도 멋있다.
이제서야 아빠는 조금늦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고있다.
오늘도 힘들게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아빠에게
그저 부끄럽고, 담배냄새가 진동해서 나 혼자 인색했던
사랑표현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