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무신(武神) 치우천황
치우천황은 그 후 수도를 지금의 중국 산동반도에 있는 청구(靑丘)로 옯겼다.
역대 단국 성조들께서는 치우천황의 큰 법력과 천지를 흔드시는 진취적인 기상을 기리시어 소도(蘇塗)에
상을 모시고 받들었다.
또,치우천왕의 위용은 위력적인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진(秦).한(漢) 때의 백성들이 해마다 10월에 산동성에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에 있는 높이 7장(丈)의 치우릉에 제사를 지내면 붉은 기운이 반드시 뻗치므로 치우기(蚩尤旗)라고 불렀다.
한고조 유방도 자기고향의 풍속을 따라 동방 무신(武神)의 원조인 치우천황에게 제사지내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 후 5년간 항우와의 초한전에서 끝내 승리하여 제위에 오른뒤에는 치우천황의 사당을 장안에 짓고 더욱 공경하였다.
이 때문에 그도 10월을 세수(歲首)로 정했다.
치우천황의 신하된 헌원은 동방배달의 청구(靑丘:치우천황의 수도, 후대에 동방조선의 별칭)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가다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紫府)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음부경] 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 받아갔다.
이처럼 신교의 대도를 전수받아 헌원은 `황노학(黃老學)이라 불리는 도교의 시조가 된것이다. 당시에 헌원뿐 아니라 공공,
창힐,대요등이 모두 동방배달에 와서 자부선사로 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이처럼 배달의 치우천황(B우리의 14세 환웅천황으로 신시(神市)의 전통을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을 대통일하여 신교(神敎) 문화권
으로 통치하였다. 자오지 천황(慈烏支 天黃 , 치우천황),
그는 동방 무신(武神)의 원조이며 우리민족의 불세출의 대영웅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천왕의 머리엔 뿔이 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치우천왕은 뿔이 두 달린 투구를 쓰고 전장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최고위층 사람을 우두머리라 하고있다. 우두란 소머리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