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이라...중등 교육의 끝.
반 친구들도, 다른 모든 고3 학생들도 다들 고등학생 시절에서 벗어나 성인이 된다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는 듯싶었다. 그런 밝은 면면을 보고 있자니, 학생으로 남고 싶어하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집에 와서 교복을 벗었다. 이제 내겐 입을 자격이 없어져버린, 추억으로 간직해야만 할 옷이니까. 지나간 시간이 담긴 그 옷을 옷걸이에 걸어 치워 놓으며, 문득 나는 내가 지난 12년간 부대껴왔던 그 모든 교실들을, 사람들을 돌이켜보았다.
설레었던 매일 하루,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만남, 새로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입학과 진급. 떨리는 가슴으로 내가 짝사랑하던 아잉에게 고백 편지를 주었던 어느 날, 주자마자 거절당하고 나서 걸어다니던 교정, 1년여가 지나고 나서 다시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운동장, 학교 건물 뒷길, 처음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갔을 때는 너무 크고 넓어 보였지만 오늘의 내 자신에게는 어느새 낮은 천장과 짧은 길로 변해버린 복도, 교실 책상 사이, ...
이제 내가 그러한 모든 만남들을 기다릴 수는 없을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나는 그저 어릴 수 없는 20대로 접어들어 버렸으니까.
차라리 나의 때로는 지겹기도 하던 10대에서 벗어났음을 자축하며, 누구처럼 축하 맥주를 마시고 누구처럼 외박을 하고 누구처럼 활개치며 20대로서 살아야 할까? 시간은 흘러갔고 이제 다시 나는 세월을 흘려보내야 하기에, 순리대로라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또는 지금의 나처럼 자주 과거를 회상하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전에는 '미련'이라는 단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굵어져가는 글씨로 남는다.
나의 10대로서의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다시 내 일기장에 적힌 미련을 키웠다.
그리고, 아마도, ...
내일부터, 그리고 그 다음날, 다음 다음날, 그 뒤로 또 계속되는 언젠가부터, 또다시 나는 새로운 미련을 키울 터를 닦는 또다른 새로운 추억들을 쌓아갈 것이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거닐게 되는 이 겨울날의 거리에도 곧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차츰 더워지며 녹음의 여름이 찾아오리라. 다시 낙엽이 저무는 가을이 오면 나와 우리들 모두는 가만히 앉아 차라도 마시며 1년 전, 2년 전, ...등등 면면을 회상하고, 다시 겨울이 왔을 때, 또다시 그 한 해 동안 각자의 일기장에 쌓아 놓은 추억이 이전의 아쉬움에 더한 미련으로 변해 있음을 보며 씁쓰레하게 웃음지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새로이 찾아오는 봄을 맞이하며 이어지는 기억도 추억도 그려가겠지.
나는 오늘, 졸업장에 담긴 내 미련을 그린다.
그리고 내일부터, 언젠가는 다시 아쉬움을 낳으며 나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언제까지나 숨쉬게 해 줄 새로운 기억들을 쌓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