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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서로 오해와 불신을 야기하는가?!

강대경 |2007.02.08 22:01
조회 19 |추천 0

 양심의 테두리 안에 있는 본질...

 

 

사람들은 서로 왜 못 믿는 것일까? 그리고 왜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이런 말 하는 거 자체가 두렵기도 하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사랑, 이제 알겠는데, 무엇이 이리도 서로를 가리는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마음을 가리는 그 무엇인가가 더듬어진다. 다른 이와 나 그리고 모든 이들은 이미 상처받은 가슴, 다른 가슴으로 살고 있다. 내가 아~라고 말하면 다른 이는 어~라 듣게 되는 이러한 서로간의 불일치, 바로 이것이 서로에게 불신을 주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나의 온전한 진심이 다른 이에게 그대로 전해지게 하려해도, 그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나의 진심도 나의 다르고,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왜곡되어서 나가겠지. 그 반대로, 그 사람의 진심을 내가 온전히 받지도 못하겠지. 본질이 다르게 느껴지는 현상은 이러한 가슴의 다름, 양심의 테두리의 다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난 지금도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심은 다르다. -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은 양심이라 표현하나, 나는 그 안의 영혼이라는 부분을 본질이라 생각한다. 양심과 영혼은 다르다. 영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양심이라 생각. 적어도 인간의 영혼의 다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태초에 인간은 같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 현재까지는)


나의 향기가 묻어난 마음은 다른 이에게 그대로 안착될 수 없다. 난 처음에 본질이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실재를 모르는 원론적인 이야기 일뿐이었다. 더 이상 아~라고 하면 아~ 라고 듣는 세상이 아니니까. 나는 그 심연 속에 있는 그 마음속 소리, 영혼에 뜻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의 선한행동은 같은 감동에서 나올 거라고 믿었거든,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 각기 달랐어. 누구를 위한 선한행동인가? 라는 부분에 도달하게 되었어. 신, 영혼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나, 다른 이에게 다가가기 위해인가? 모든 것이 다 달랐어. 나도 달랐어. 다른 이 도 달랐어. 모든 게 달랐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저 억누름이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것을 나의 향기와 흔적이 묻어나지 않게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온전해야 그 사람도 최대한 가깝게 느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다른 이의 마음이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드리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은 대단한 거였어. 수 천년동안 사랑에 대한 영화, 소설, 말씀, 명언들이 계속 사람들에게 들려져 왔고, 지금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어. 이미 그것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 되었다면, 서로가 하나의 마음, 하나의 뜻으로 되어졌다면, 에덴동산이 재현되었겠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는 불가능해졌지.)

        

        난 순수한 사랑이면 모두가 하나로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내가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다가가도, 그 사람에게는 나라는 인격체의 향기가 드리워진 사랑으로 받아드려졌겠지, 그래서 거부당한 것이겠지. 그런 일이 수차례 있었지만, 난 그래도 언젠가는 나의 뜻이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반대로, 다른 이가 나에게 그러하게 다가왔어도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소금의 짠맛에서 설탕의 단맛을 찾는 것처럼 애매하고 드물었다. 그리고 짠맛이 더 느껴지면, 단맛은 나의 착각이었나 하는 실망감과 바보 되어 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순수한 믿음의 사랑이 아니었다. 옳다는 신념이 강하게 내포된 사랑이었다. 그러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받아드려질 수 없었던 것이고, 나 또한 평안을 얻을 수 없었어. 믿음의 사랑이었다면,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난 정신적 특성을 강화시키고 싶었다. 쇼팬하우어가 정신의 세계를 알려주었지, 난 그의 철학의 불완전함을 “이 세상은 무“라는 것에서 느꼈지.(쇼팬하우어는 신의 존재를 우주론적 사고라 하여 비판함.) 그래서 다른 정신적 특성,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사상을 같이 잡았지. 서로는 너무 이질 적이야, 난 두 정신세계에 함께하고 있었어. 현실은 쇼팬, 이상은 톨스토이. 혹자의 말처럼 말과 행동이 맞지 않고, 말과 말마져 맞지 않게 되었지. 현실을 이야기 할 때는 쇼팬의 영향에 가까웠고, 이상을 이야기 할 때는 톨스토이쪽의 영향에 가까웠지. 난 서로 융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서로 융화될 수 있는 것일까? 지금도 그 부분은 의아스럽다. 방향이 다른데, 어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에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 놓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내 삶의 가치관으로 두고 있었어. 그러다보니, 그 순간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모순된 행동이고 모호한 행동인지...

        

        톨스토이의 저서는 가치관의 성질이 아니다. 그는 인생관, 가치관, 정신세계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신앙, 믿음, 영의 세계를 이야기 한 것 이었지. 난 톨스토이의 사상을 따르기 보다는 그의 말이 신앙과 영의 세계를 이야기 한 것이기에 그의 책을 본 것이다. (언젠가부터 사상이 되어버렸지만) 사랑은 사상이라는 테두리에 들어갈 수 없음을 사랑은 정신의 것이 아님을 이제야 재발견하였다. 사랑은 영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사랑을 정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니, 신념이 되었고, 그 사랑은 본연을 잃고, 나의 향기로 짙어지게 되었다. 이제, 영의 세계로 다가가고 싶다, 그 사람의 정신을 다가가는 게 아니라, 영에 다가가고 싶어. 정신은 나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마젠타, 사이언, 엘로우, 블랙의 정도의 차이를 분별하고 그 채도와 명암, 깊이가 다른 것을 판별할 수 있으며, 그 수준도 가늠할 수 있겠지. 그리고 어떤 다른 이들은 내가 생각지 못하는 사유의 과정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영은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신의 판단만 있을 뿐이다. 내가 어찌 할 소관의 것이 아니다. 비교적 뛰어난 자들이 지향하는 정신의 세계로써 무엇,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라는 깊은 정신의 세계?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데? 어줍지 않은 우월성을 뛰어넘어, 고고한 경지에 오른다. 워낙 어줍지 않으니까. 우월적 증상만 강해지고 있으니, 우스운 경우지. 난 삶과 영을 알고 싶다. 물론 계속 정신세계에 고고하게 되어지면, 성철스님 같은 노자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얻은 깨우침을 온전히 못 전하지 않는가(정신의 수준에 따라 받아드리는 정도가 다른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은 사랑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까? 그들이 우리들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온전히 전하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옳은 길로 간 것일까? 자신의 생각마져 온전히 전할 수 없는 인간의 고고한 경지. 우리는 그것을 꿈꿔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 에덴이었다면, 온전히 전해졌겠지만, 지금은 에덴의 시절이 아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있지. 육체, 정신, 영혼, 어느 하나 소홀히 둘 수 없어. 육신을 억압해서 정신, 이성을 고고하게 하는 것이 맞다면, 신은 우리에게 육체와 영혼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영혼에만 다가가도록 하려는 것이었으면. 육체와 정신을 주지 않으셨겠지. 영혼에 우선을 두는 삶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삶이 바른 삶 같아. 삶은 환락경도 아니야, 천국도 아니야. 어떤 이의 말처럼 유희가 더 가까운 말일 수도 있어. 신이 준 것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인간에게 준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나는 나만을 위한 사랑과, 다른 이를 위한 사랑을 구분 졌었다.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한 사랑에는 자기희생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간과하고 지나간 게 있었어. 그것은 “내 몸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것이지. “내몸...” 나에 대한 올바른 사랑. 나를 사랑하듯이 너를 사랑하는 거야.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너에 대한 그 누구에 대한 자기희생은 의미 없어. 그리고 자기희생자 그 방향이 존재해야 할 것이야.(더 생각해봐야 할.. 신으로의 방향..?)


사랑의 실천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유일한 사명일 것이다.  God only knows...


영(靈)으로 다가서야 한다. 영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갈급하다. 세상에 나가야 한다. 나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더 감동스런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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