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여호수아부터 에스더에 이르는 성경 열두권은 보통 "역사서(the history books)"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역사(history)"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자초지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상황들을 뜻한다. 히브리 백성들을 그들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의주시하고 그 사건들에 참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 세상과 그들의 공동체와 그들 각자의 삶 속에서 인격적으로 살아 움직이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일심(日蝕)이나 염소 간(肝)의 반점, 땅의 갈라진 틈새에서 솟아나는 수증기 소리와 같이 아무리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들을 통해 삶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천문학적, 생리학적, 지질학적, 심리학적 현상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뜻을 행하시고, 사람들을 부르심으로 이끄시고, 믿음을 주시어 순종하게 하시고, 예배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며,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고 죄를 심판하셨다. 이 일 중 어느 하나도 "대략적"이거나 "막연히"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매우 특정한 시간에, 매우 구체적인 장소에서, 지명된 사람들에 의해, 다시 말해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성경의 등장인물들에게 하나님은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이념이나 성직자들이 조작하느느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연구와 관찰과 관리의 대상인 피조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그분은 인격체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때와 장소 안에서 예배하거나 반항하거나, 믿거나 거부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이 책들이 우리를 특정한 시간과 사건들, 인물과 환경들, 즉 역사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평범하고 특별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역사로부터 도피해서, 소위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까? 성경 속의 믿음의 조상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렘브란트가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재료로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시는 재료로 역사를 사용하신다. 혼란스러운 역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는 절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히브리인들은 역사 안에서 자신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며, 하나님께서 그 역사 속에 임재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의 이러한 뿌리 깊은 역사관은 그들의 말과 글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들은 당시 고대 사회의 흔한 전통에 따라 근사한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지어내거나 꾸며내지 않았다. 그들의 글들은 단지 흥미나 설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세상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실존하는 인물들이 실제 사건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실존하는 인물들이 실제 사건 에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지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보여준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세속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었다. 전혀 없었다.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인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곳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하나님이 별로 언급되고 있지 않기에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이시진 않지만 항상 이 모든 사건들 속에 조용히 임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게 된다면, 이 책들에 어떤 이야기가 쓰여져 있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쓰여져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줄거리 안에 항상 계시고 언제나 그 중심이 되신다. 역사서의 저자들에 관한 한 그들이 인물과 사건에 주목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단지 하나님을 향해 깨어 있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이런 사고방식을 체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 속에 항사아 개입하시고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소위 역사가와 학자,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작자들로부터 역사적 지식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또는 신물과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또한 인간적 흥미나 환경적 요인에 관하여만 역사를 이해하도록 철저히 길들여졌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그런 관점들이 마치 신앙적인 것인양 포장하여 하나님을 들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서 에스더에 이르는 성경의 역사서들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매우 신선하다. 이 책들은 역사를 우리 자신과 주위 사람들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해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 유진 피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