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어이없는 핑계에 치가 떨린다!
오늘(13일)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규탄 기자회견이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있었다고 한다.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칭)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는 이주노동자와 이주인권단체 참가자 100명이 참가했다 한다.
http://www.vop.co.kr/new/index.html
http://www.newscham.net/
지난 주말 일요일 아침 인터넷 뉴스속보로 접한 여수보호소 화재참사...나는 너무 놀라 무엇이 어떻게 된건지? 무엇이 문제인건지? 왜 철창에 갇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속속들이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고 이제서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시고 자시고도 없이, 이전부터 문제제기 되어온 법무부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강제추방조치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노동에 대한 차별,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예견된 참사가 아닐수 없다.
Korean Dream을 꿈꾸며 한국땅을 밟았던 젊은 이주노동자들을 쫓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한국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들은 이제 주검이 되어 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말 안타깝고 고향에 있는 유족들에게 참말로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도 없이, 싸늘한 주검이 된 이주노동자들을 또다시 방화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언제까지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차별적 노동과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아 세울것인지? 그러고도 무슨 선진국이니 세계일류국가, 인권국가, 선진법치국가라 떠들어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http://www.moj.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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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de story...
내가 처음 이주노동자와 만난 것은 2002년 1월이었다.
당시 대학교 3학년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에 들어간 때였다.
방학기간 동안 부모님께서 힘겹게 마련해야 할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나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지가 일하는 한 공장(알루미늄 샤시 제조)에 아르바이트를 봄학기 개강전까지 한 적이 있다. 사실 아르바이트라기 보다 위장취업에 가까웠다.
그렇게 2개월 동안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하면서 나는 조선족 교포와 베트남 이주노동자와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중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베트남 이주노동자 2명은 추운 겨울을 공장에 기숙사가 없고 달리 자취할 곳도 마땅치 않아 차디찬 콘테이너박스에서 전기선 난로에 의지해 밤을 지새워야했다. 식사는 근처 함박식당에서 해결했다. 저녁에는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녁에 달리 할일도 없어 잔업수당이라도 벌 요량으로 일을 하곤 했다. 정말 그 친구들은 힘든 일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한국말은 서툴지만 참 인상이 좋았던 그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동안 담배를 나눠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친해지자, 왜 한국에 왔는지? 베트남에는 누가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이가 어린 친구는 베트남에 부인과 아이가 있다며 사진도 보여주었고, 다른 한 친구는 한국에서 돈 벌어서 베트남 가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싶다고 말해준 것이 기억난다.
여하튼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소식에 이 두 친구가 갑자기 눈 앞에 떠올랐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한국땅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베트남으로 무사히 돌아갔는지 궁금하다. 제발 한국땅에서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와 잘 살고 있길 바래본다.
- 나라 경제 팔아먹는 한미FTA를 반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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