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학교 (Our School, 2006)
감독 : 김명준
"이곳은 영원한 '우리학교'입니다"
아름다운 눈빛이 있는 그곳, 우리학교를 만나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빨래도 널고 머리도 감고, 꽤 시간이 흘렀다.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보는데 아직도 코끝이 빨갛다. 그도 그럴 것이, 2시간 남짓 되는 러닝타임 내내 나는 계속 울었다.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데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있으니 영화 속 그 아이들이 떠올라 또 눈물이 차 오른다. 그리고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가슴이 뭉클하다. 또 코끝이 찡해진다. 내일 아침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하겠군.
일본에 있는 조선 민족학교의 1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한국 관객과 눈도장을 찍긴 했지만, 아직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았다. 현재 전국을 순회하며 상영회를 하는 중인 모양인데, 오늘 인천에서 한 시민단체의 주관으로 소극장 '소풍'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원래는 김명준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우리학교(지금부터 '우리학교'는 재일 혹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를 말한다)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 급히 일본에 가야 하는 바람에 제작자인 고영재씨만 왔다. 아니, 일본의 조선 민족학교에 우리글로 씌여진 책을 보내는 후원동호회 '뜨겁습니다'(
http://cafe.daum.net/feelsohot) 회원들도 왔다. 이들은 영화 시작 전 재일 조선 민족학교에 대한 대략의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민족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같은 잡지를 통해서, 그리고 작년 5박6일간 민족학교를 방문하고 온 어린이도서관 관계자들을 통해서, 이래저래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인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도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한번쯤 봐두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부득이하게 우리학교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화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쓰나 고민하다가 이 영화에 대한 언론보도와 리뷰를 죄다 찾아 읽고 우리학교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ourschool06)도 찾아가 보았다.
몇 개 안 되는 관련 기사와 정말 몇 개 안 되는 네이버 영화 리뷰만 읽었을 뿐인데, 어떤 영화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특히 씨네21의 김명준 감독 인터뷰는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카메라를 든 관찰자가 아닌 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과 섞여 살면서 '내재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제목이 왜 '우리학교'인지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
오늘 우리학교를 직접 만나고 나니 어림짐작의 느낌으로 썼던 내 글이 부끄러워졌다.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는 짐작대로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카메라를 든 감독과 카메라에 담겨진 인물들이 관찰자와 피사체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처럼 느껴졌고, 인간적인 카메라의 시선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보기 전 짐작 그대로였다. 이것은 잘 만들어진, 감독의 애정이 담긴 다큐멘터리에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의 눈물샘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너무도 일찍,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2시간 내내 울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날 울린 것은 다름아닌 우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교복을 입은 우리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평상시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치던 한국의 청소년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헤어스타일도 한국서 좀 노는(?) 청소년들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아이들이 말간 표정으로 더듬더듬(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는 말, 시인들이나 지껄이는 관용적인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조국'이라는, '조선사람'이라는, '자랑스러움'이라는 단어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지금껏 들어본 최고의 아름다운 단어였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마음, 이 모든 것들은 솔직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순수 그 자체였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 일본에서 "짐승같은 조선놈들,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일상적 협박을 감수하며 사는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었는지...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고급부(고등부)에 편입한 한 아이의 말대로 그 아이들은 우리학교가 없었더라면 일본사회의 배타적 차별 속에서 폭주족이 되고 소년원에나 갔을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비록 일본이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일본대학에 가려면 학교를 졸업한 뒤에 또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얻지 못한 자존감을 우리학교에서 배운다. 이전까지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왔던 아이들이 우리학교에서 우리말, 우리글, 우리역사를 배우며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 자신의 동포에 대한 무한한 자랑스러움과 그를 통한 자기애를 얻는다. 우리학교 아이들의 얼굴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샘이 터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 사람이 정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인간은 원래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 처음으로 깨달았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야"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이럴 줄이야!!!) 성적이나 외모, 재산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마음과 자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으로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이상적인 그래서 현실감은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가치관이 인간사회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급부 3학년 아이들이 졸업여행으로 귀국여행(조국인 '공화국'으로 수학여행 겸 졸업여행을 떠나는 것)을 다녀와서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
"조국의 동포들은 너무 아름다워요." (감독이 뭐가 그렇게 아름답냐고 묻자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 "눈빛이요."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의 눈빛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의 눈빛을 읽을 줄 아는 우리학교 아이들의 눈빛이야말로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 때문에, 그 눈빛을 키우는 교사들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일본인이면서도 박봉에 일본사회의 대우도 좋지 않은 우리학교의 체육교사가 된 축구코치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22명의 고급부 3학년들이 12년을 다닌 우리학교를 졸업하는 날, 졸업생들은 교사들, 동급생들, 하급생들에게 12년 동안 고마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고, 담임교사 또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이곳은, 우리학교는 영원한 우리들의 모교라고.
그래, 우리학교는 나에게도 영원한 우리학교다. 인간의 아름다운 존재를 일깨워준 우리학교야말로 영원한 나의 모교다.
또 눈물이 난다. 너무 아름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