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모모야. 대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 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들은 심지어 여가 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았다.
그랬기에 축제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즐거운 축제도 그랬고, 엄숙한 축제도 그랬다. 꿈을 꾸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사방이 고요하면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면 밀물처럼 불안이 밀려 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적이 찾아들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요란하게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이 놀이터의 즐거운 소란이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듯한 이 불쾌한 소란은 나날이 볼륨을 높여 가며 대도시를 가득 채웠다.
"모모.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면 우선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기다리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아가.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그래도 하겠니?"
"보다시피 나는 이 꼴이 되었단다. 아무리 원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난 끝장이 났어. '기기는 기기인 거야!' 모모, 이 말 생각나니? 하지만 기기는 기기로 남아있지 못했단다. 모모. 얘기 하나 해 줄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 그렇지. 나는 더이상 꿈꿀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아주 옛날이야기 일지도 모를.
그래서 이미 지나버렸을지도 모를, 그렇지만 아직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
이 말이 처음엔 너무나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젠 알겠다.
나조차도 나도 모르게 조직화된 삶을 추구한다.
시간이란건 분명히 시계란 도구로 나누어 지는 것도, 몇 시간, 또는 몇 분으로 나누어 지는 것도 아닌, 온전히 나에게만 의미있는 나만의 것인데.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몇 시간 몇 분에 삶은 제약을 받는다.
분 단위로 작게 자른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삶.
그런 시간들이 지겹다고, 견뎌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조직화 된 삶을 나에게 강요하는 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나에게 더욱 의미있는 것을 찾는 것,
그것들로 나의 시간의 꽃을 싱그럽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건데.
마음을 놓고 조금은 편안해 질 것.
스스로의 시간에 충실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