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흘러 나와 '호외'의 개념에서 일반적이 되어버릴만큼 이상해져 있는 단어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는 반드시 죽는다.
죽음에는 타의에 의한 것(본인 의지와는 상관 없는 모든 것)과 자의에 의한 것으로 나뉘게 되는데 대부분은 죽고싶지 않아 하는 본인의 뜻과는 달리 타의에 의해 죽게되지만 간혹은 스스로가 죽음에 이르게도 된다.
대학 다닐 때 철학과 강의를 수강할 때가 생각난다. 5월이었고 따사로운 햇볕에 나무들은 푸른 옷으로 단장을 시작한 뒤였기에 아직 풋풋한 어린 잎사귀는 스치듯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고 있던 때였다. 한참을 나무들의 잎사귀들을 바라보시던 교수님께서 느닷없이 죽음에 대해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왜 죽음을 두려워 할까?' 5월의 푸른 어느 날, 강의 주제였다.
여러 학생들이 가지각색의 답변들을 내 놓았지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 상식을 깨는 말씀이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것.
내 부모, 형제, 사랑하는 내 아이들, 친구들, 내 사회적 지위, 내 값어치... 나를 치장해주는 아름 다운 옷가지들이며 장신구들, 좋아하는 CD와 아끼는 CDP, 심지어는 커피한잔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풍요롭게 딸랑이는 내 주머니 속 동전들까지...
"이 모든 걸 버려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피하려 만드는 것이다." 라고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를 정의 하셨다.
법학을 전공한 나는 이전 학기의 헌법 연구 속에서 막스의 훌륭하고 이상적인 공산주의 이론이 현실에서 왜 빛을 보지 못했는지에서 얻은 결론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
모든 인간이 소외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공평하게 분배하면 어느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은채 더불어 잘 살수 있다는 이상적인 이론은 '나만 좀 더 편히 일하고 동일하게 받자'는 개개인의 편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막스의 심각한 오류속엔 '인간의 욕심' 이 배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중용의 기본에서도 볼 수 있었던 거지만 철학 교수님의 그 말씀은 인간사에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의 것에서도 흐르고 있던 키워드 였던 것이다.
다시 죽음으로 돌아와 살고자 하는 욕심, 욕망은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 그리고 버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보고 그래도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을 맞춰보면 이렇다.
빼앗기지 않으려, 그리고 버리지 않으려는 어떤 것 조차도 없다면 노력이 필요 없어지게 된다는 것.
우리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죽을 용기 있으면 사는 건 더 쉬울 것이다' 라고 흔히들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욕심에 있는게 아닌 두려움에 있는 것으로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내 생각과는 한참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죽기전에 이거 한번 해보고, 또는 저거 한번 이뤄보고 죽는게 어떻겠냐고 그가 조금이라도 욕심내 볼만한 것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가진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다' 라고 합리화 시키는 사람들 내심을 보면 아무 것도 없으니 무언가를 갖기 위해 도전(도전의 경,중은 있겠다.)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게 지위가 됐건, 돈이 됐건 아니면 사랑이 됐건...
다시, 자살하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게 되버려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무엇이든 버리고 가야하는 죽음을 쉽게 받아들여 자살에 이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잃어 더이상 아무 것도 없다.' 는 자가당착을 탈피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한 거고, 그래서 '다 잃었지만 니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있지 않겠냐?'는 신념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딱부러지게 도출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는 말하고 싶다.
형법에서 보호자적 지위에 있는 자가 자살하는 사람을 모른척 했다면 자살 방조죄의 죄책을 물을 수 있지만 외의 일반인에게는 이 죄책을 묻지도 않고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내 감정에 영향이 미쳐지고 있는게 현실이고 이에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들에게 용기라는 단어보다 살아야 하는 욕심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어떤가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국가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양면의 날을 갖고 있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검토해 주었으면 하고 대비해 주었으면 한다. 당장의 효과는 없겠지만 자살이 일상의 언어가 되지 않게는 만들 수 있으리라...
p.s : 얼마전 100분 토론에서 이것과 관련하여 얘기가 오고 갔는데...쩝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들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살은 타의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영향이 있을망정 자신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것이거늘 논점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으니...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많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