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너 vs 세컨드 러너
1915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다. 석사학위를 막 받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세상으로 나가서 의사가 되어 부유하게 살아가는
삶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지도교수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두 학생을 연구실로 불러서 물었다.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연구는 무척 중요한데, 한 명이 남아서 나와 함께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어떨까?"
두 사람 모두 연구직에 남는 것을 내심 꺼렸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의사로 부유
하고 안정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구직이란 예나 지금이나 앞날을 확신할 수가
없지 않은가? 고심하던 두 사람은 동전을 던져서 한 사람을 뽑기로 결정한다. 이 때
찰스 허버트 베스트가 뽑힌다.
당신이 베스트의 처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베스트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수많은 갈림길에 서며 불가피한 선택속에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게 된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교정을 떠나는데 성공한 베스트의 친구가
현명했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다수가 가는 길을 가려고 한다. 무리로
몰려다니다 보면 맹수의 습격이나 기타 다양한 위험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생존본응에 따른 자연스런 습성
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본능적' 행동이 유효할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별로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내놓고 있다. 에사키 레오나 시바라 공대 총장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와세대 대학에서 행한 '21세기를 위한 창조적 자기 발견'
이라는 강연에서 미래를 대비하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개념의 짝', 즉
바로 '퍼스트 러너(first runner)'와 '세컨드 러너(second runner)'를 제시했다.
퍼스트 러너는 창조적인 실패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발견에
전념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세컨드 러너는 전례, 선례, 관례 혹은 본보기와 같은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화
단결이나 협동심을 중시하며 언제, 어디서나 헌신을 통한 도전과 모험을 극도로
자제하는 사람들이다.
에사키씨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는 퍼스트 러너가 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함께 움직이는 집단 구성원에서 홀로 떠나는
모험가로 진화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셈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부산의 모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그는
'인간의 능력 한계와 도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이 젊은 날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했던 고민의 리스트를 제시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 가운데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이런 질문을 젊은 날에 던져보았을까?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 청소년들, 심지어 어린이들 대부분은 남다른 길이 아니라 남과 똑같이
몇몇 대학과 몇몇 직업을 향해 달려가느라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과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허비하고 있다. 아마도 에사키 총장이 제시했던 고민을 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머리좋고 스마트한 부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더 효과적으로
그런 자리를 차지할 방안을 찾느라 바쁠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어차피 그런 자리는 너무나도 제한된 기회일 뿐인데...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런 자리보다 훨씬 매혹적인 기회의 장이 펼쳐질텐데..
창의력과 자립성을 길러주지 못하는 우리 교육이 요즘처럼 원망스러운 때도 없다.
그저 좀 우직하고 손해를 보는 듯이 살아왔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후회없고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것만을 위안거리로 삼을 따름이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찰스 허버트
베스트는 불운의 동전 뽑기로부터 8년이 흐른 1923년에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에사키 레오나 총장은 1973년에 초전도
현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초전도 현상은 향후 몇 십년을 좌우할 최첨단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http://wepas.com/mai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