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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찾기,

조유리 |2007.02.25 18:28
조회 173 |추천 3

지뢰찾기는 컴퓨터라면 어디에나 탑재되어 있으며

1~9까지의 숫자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추리력 등의 '고등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과

몰입하지 않으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공부와 아주 많이 닮아있다.

또한, 어느정도 잘 하기 전까지는 '무수한 패배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클릭, 클릭, 클릭, 펑.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지뢰찾기의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480개의 회색빛 칸으로 구성된 '정갈한' 지뢰판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어디를 눌러야 이놈의 지뢰판이 홍해처럼 갈라지는지,

신의 계시라도 받고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도 나는 480개 중 어느 하나의 칸에 클릭을 해야만 한다.

첫번째 클릭의 결과는 언제나 신의 뜻에 달려있다.

지뢰가 나오든, 숫자가 나오든, 홍해처럼 촤라락 갈라지든,

그건 오로지 신의 뜻인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3억만분의 1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난자에 진입한 위대한 한 마리의 정자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인간이 480개의 회색칸들 중 첫번째 클릭을 했을 때 지뢰가 나와서 펑-하고 터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도 할 수 있다. 

 

 

 

첫번째 클릭,을 무사히 넘기면

그때부터는 운과 실력, 이 모두 필요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른바 '스테이지 2'랄까.

 

다시 클릭, 클릭, 클릭, 펑.

또다시 클릭, 클릭,클릭, 클릭, 펑.

또또다시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펑.

또또또다시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펑.

 

'클릭'사이의 간격이 만들어 내는 리듬, 

좌뇌의 뉴런들에서 흘러나오는 숫자들이 어우러진 피의 향연.

어느새 나는 난자를 향해 질주하는 3억마리의 정자 중 한 마리처럼, 마치 모든 지뢰를 완벽하게 찾아내는 것만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지뢰찾기에 열중한다.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좌라락,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좌라락,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펑.

클릭, 클릭, 펑.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좌라락, 클릭, 클릭, 클릭, 펑.

...........수십번의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그리고 펑.

그러다보면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뢰가 터지면 내 마음도 터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누르던 회색칸들을 아무렇게나 누르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했는데도 결국에는 지뢰가 터지고 만다면, 그리고 그것이 수십 번이나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은, 겉보기완 달리 무척이나 소심하고 무기력한 마음이다. 

 

- 사실, 노력따윈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닐까.

그런 상념에 빠져들며 회색칸들을 누르다보면, 어느 순간 운좋게 촤라락, 하고 홍해처럼 지뢰판이 갈라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때, 하필이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그만, 뻔히 지뢰가 있을 회색칸을 누르고 만다. 처음에는 '악'하고 소리가 나올 일이지만 수십번의 '펑'을 거친 인간은 아무런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스마일'을 누를 수 있게 된다.

 

 

스마일은 '다시 시작하기 기능'을 수행하는 버튼이다.

회색칸에만 집중하느라 몰랐던 사실인데,

이녀석은 내가 클릭할 때 마다 이런 표정('o')을 짓는다.

정말이지, 나를 놀래키려는 건지, 놀리려는 건지, 아무튼 맘에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지뢰를 만나면 자존심을 접고

스마일을 누를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지뢰찾기를 때려치우든지.

 

사회적 동물들이 꾸물꾸물 모여있는 이 사회에는 어째서 '스마일 기능'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사회는 '잘못 만들어진 지뢰찾기게임'같은 게 아닐까. 살다보면 무수한 '지뢰'를 만나지만 스마일을 눌러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지뢰를 만났다는- 엄청 짜증나지만 또한 엄청 하찮은 - 이유로 삶을 때려치울 수도 없고, 스마일을 꾹 누르는 심정으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으니까.

 

 

사실, 내가 스마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스마일은 내가 '펑'할 때마다 인상을 찌뿌린다.

단지 그뿐이다.

나의 실패를 안타까워 하지도 않고, 그저 입을 비쭉 내민 채 인상을 찌뿌릴 뿐이다. 

내가 다음에는 어디를 누르면 좋을지 힌트를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 그는 단지 방관자일 뿐이다.

웃고 있지만, 나의 '클릭'에 반응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나의 실패에 인상을 찌뿌리기만 하는-그러면서 속으로 우월감을 맛보는-방관자인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스마일'들은 나에게 "오늘도 스마일"따위의 말들을 건네지만

막상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내게 지어보이는 건 늘 난감한 표정의 스마일.

'다시 시작하기 기능'을 잃어버렸더라도,

최소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힘을 주는 기능'은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지뢰'에 맞서 싸우는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런 나를 보며 웃어 주고,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척 했던 것일지라도, 

나는 그런 것들을 진심이라고 믿어버리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나는 상냥한 '스마일'들이 더 싫다.

지뢰보다도, 지뢰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회색빛의 군상(群像)들보다도.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 사회의 무수한 '스마일'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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