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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정의 영웅 레굴루스

안진혁 |2007.02.25 22:58
조회 248 |추천 0
심심한 휴일을 흥미진진하게 보내는 노하우로 많은 분들이 미국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듯합니다. 케이블 TV에서도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요즘 주말에 케이블 TV를 보면 인기있는 하나의 미국드라마를 24시간 편성해서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 드라마 '로마'에서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암살당한 카이사르

 

예전에 흥미롭게 보던 미국드라마중에 '로마'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도 미국드라마의 전형적인 전개답게 시즌 2가 나왔는데, 시즌 1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 죽는 장면으로 끝나서 이후 더 있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된 장면에서 시작해 그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와 부관이었던 안토니우스의 대결로 이어집니다.

 

      ▲ 이집트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도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군인출신도 아니고, 전쟁에서 자주 패해 카이사르도 걱정했던 옥타비아누스가 노련한 군인인 안토니우스를 어떻게 요리하여 결국 존엄한 자로 불리는 '아우구스투스'가 되는지 흥미롭습니다.

 

로마의 제정시기는 기독교의 전파, 그리고 동서로마의 분열과 같은 역사가 이어져 역사속에서 화려하게 다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로마 제국의 기반은 대부분 공화정 시기에 다져졌습니다. 군인 귀족 계급 출신이 대부분 이었던 공화정의 지도자들은 로마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며 국가를 다스린 것이죠.

 

때문에 이들은 명예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고, 전쟁에서는 잔인하고 타협을 모르거나 무모할 정도로 용맹성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화정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문명화된 사회였는데, 이것은 공화정의 최고 통치자가 신권이나 세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헌법의 통제를 받았다는 것 때문이겠죠.

 

      ▲ 원로원에서 연설하고 있는 19살의 옥타비아누스

 

이런 공명정대한 로마의 헌법정신은 이후 여러 나라가 이어 받았는데, 현대 국가들도 은근히 로마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때문에 로마의 상징이었던 독수리를 독일과 미국은 국가의 상징으로 이어받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왜 로마인들은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도시국가들이 난립하던 이탈리아 반도에서 목숨걸고, 로마의 권리를 지킬 수록 로마시민들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유를 위해 공화정을 그렇게도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2천년전 '자유'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가체계가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놀라운 것이 아닐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로마공화정을 공부하다 보면 피와 희생을 다했던 로마 공화정의 영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전설중에 제일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일어난 제 1차 포에니 전쟁때의 로마 집정관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우던 중 그는 적에게 잡혔고 그의 군대는 전멸을 당합니다.

 

로마인들에게 충분히 겁을 주었다고 생각한 카르타고는 두 가지 조건을 걸고 레굴루스를 풀어줍니다. 첫째는 카르타고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도록 로마 정부를 설득해야 하며, 둘째 만약 설득에 실패하면 카르타고에 돌아로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카르타고의 예상대로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는데, 원로원은 카르타고의 조건을 수락하게 되면 로마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와 한 약속과 달리 조약에 반대하는 연설을 해 로마인들을 감동시킵니다.

 

레굴루스의 열변과 애국심에 고무된 로마인들은 더욱 열심히 싸웠고, 마침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하지만 레굴루스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한 맹세대로 카르타고로 돌아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 레굴루스를 만류하는 로마인들

 

카르타고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를 잡은 로마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카르타고로 돌아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의 목숨보다 로마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망가든지 그냥 로마에 있지 왜 카르타고로 가려 합니까?" 라고 누가 묻는다면, "카르타고인들에게 돌아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비록 적에게 한 맹세일지라도 절대 깨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맹세를 지키면 나 혼자만 재앙을 겪으면 되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모두가 재앙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로마의 명예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명예의 상징 레굴루스이외에 로마 공화정 초기 집정관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밭에서 쟁기질을 하다가 전쟁에 나가 로마를 지킨 후 다시 돌아와서는 농부의 삶으로 돌아가곤 했던 킨킨나투스 같은 사람은 로마 공화정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때문에, 로마 공화정 역사를 세세하게 읽어보면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쉽게 빠져들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마'라는 드라마를 볼 때면 화면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

 

마지막으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로마의 제정시대를 여는 최초의 황제가 되었던 옥타비아누스가 남긴 유언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황제로서의 유언이라기 보다는 공화정의 권력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한 정치가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죽기 전 그가 남긴 말은...

 

"그래, 내가 이 코메디에서 내 역할을 잘 한 것 같소?" 였답니다.

 

                                                                             from 을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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