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느때처럼 커피를 내리기위해 세븐일레븐 커피를 꺼낸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세븐일레븐 커피의 향을 더욱 선호하는 그는
아직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조금도 동요치 않은채
묵묵히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오전 열한시 삼십 오분.
아침부터 잔뜩 찡그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함박눈을 펑펑 뿌릴듯한 기세다.
그는,
카키색 가디건이라도 더 걸치고 나올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어깨를 살짝 움츠린다.
"이런, 페이퍼가 딱 한 장밖에 없잖아. 또 깜빡했군."
그는 마지막 남은 페이퍼를 가위로 이등분해 반쪽은 아껴둔다.
"커피내리는 일은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어. 한국의 인스턴트 커피가 그립군."
벌써 몇년째 커피를 내리는 그는, 뭐라고 혼잣말을 하며
조금 오래된 시디플레이어 버튼을 누른다.
건너뛰기 버튼으로 몇 곡을 거슬러 올라가
그는 avalon의 we will stand라는 곡부터 듣기 시작한다.
sometimes it's hard for me to understand...
음악과 동시에
커피메이커에서 끓는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한다.
구수한 커피향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구수한 커피향도 이제는 지루하기만해.'
커피가 내려지는 사이, 그는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사실, 그는 무언가를 읽는게 아니라 헤드라인과 사진만 보는거였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꼭 눈이 올것만 같아요. 그쵸?"
커다란 블랙 노스페이스 배낭을 멘 금발머리 여인이 시끄러운 문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예, 안녕하세요?"
그는 보던 신문을 치우고 서둘러 커피가 내려지는 곳으로 돌아갔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더이상 못 돌아다니겠어요.
커피랑, 콘 머핀, 브라우니, 그리고 시나몬 크림치즈베이글 주세요."
"여....행중이신가봐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낭은 여행자 배낭인데 인상은 여행자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다.
여행자,라고 치기엔 그녀는 너무 약해보였고 또 착해보였다.
그녀는 배낭에서 동전을 찾다가 그를 한 번 슬쩍 보고 씨익 웃더니
"뉴욕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거든요."
라고만 대답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 예..."
그는 그녀의 미소가 참 예쁘다, 라고 아주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미국사람은 아닌것 같아. 유럽 어딘가에서 온 것 같은데.'
그는 커피가 다 내려졌는지도 모른채 그녀에 대해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커피 다 된거 아니에요? 빨리 주세요!"
"오! 예,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커피를 따르는 그의 뇌릿속에 여전히 그녀의 미소가 또렷히 박혀있어서
사실 그는 커피를 따르고 있는건지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커피숍이 참 예뻐요. 직접 꾸미신거에요?"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두 손으로 컵을 웅켜쥔 채 커피숍 내부를 한 번 훑은 후 물었다.
"예."
그는 뭔가 더 부연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는 무언가를 부산하게 정리하는 척 하면서
사실 아까부터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혼자...여행하시는 건가봐요...?"
"네. 왜요? 혼자 여행하면 안돼나요?"
"아뇨, 뭐 그런건 아니지만...여자분 혼자서 다니시기에 위험하지 않나 해서요."
"뉴욕 정말 굉장해요! 제가 사는 런던 시내보다도 더 멋진데요!"
그녀는 그의 대답을 묵인한 채 대화의 화재를 돌렸다.
사실 그 때부터, 그러니까 정확하게 그가 그녀에게 혼자 여행하느냐고 물었을 때부터
그녀의 표정은 조금 슬퍼보였다.
심지어 뉴욕 정말 굉장해요, 라고 조금 오버해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도
슬픈 기색이 역력함을 그는 눈치챌 수 있었다.
"런던..에서 오셨군요. 저는 런던에 꼭 한 번 가보는게 소원인데."
그는 자신이 방금 만들어낸 거짓말이 스스로도 우스운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한 번 다시 씨익 웃더니
갑자기 서둘러 배낭을 챙겨들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건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고,
그녀의 마지막 미소는 전의 그 어떤 미소보다도 더욱 강력해서
그는 일분정도 눈의 초점을 잃은채 그녀가 앉았던 테이블만 응시했다.
그녀가 나간 뒤로,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방의 온갖 소음이 눈에 흡수되어
더욱 고요해지고
차분해져가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