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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양정숙 |2007.03.01 09:21
조회 49 |추천 0

작년 대림특강때 정태현 신부님의 진국 같은 말씀중에서도 내가 살아가

 

면서 꼭 기억하고 싶은,내 삶의 이정표로 삼아도 좋을 두가지 말씀을

 

기억한다.

 

 특강은 흔히 우리말로 거룩한 독서나 성독으로 번역되는 렉시오 디비나

 

(이태리어 Lectio Divina) 였다.

 

내가 기억하는 두가지의 말씀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곧 말씀이며 절대 우연이 아니

 

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홍해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설명하시면서 말씀하신

 

기적의 개념이었다.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씀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사건이라는 뜻도 된다.

 

우리들의 일상의 사건들은 말씀의 빛으로 조명되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기적 또한 자연법에 어긋나는 절대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을 두고

 

흔히 말하고,일부의 신자들 또한 그런 기적을 쫒아 다니는 걸 좋아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크게 드러난 사건

 

이라고 하셨다.

 

 결코 기적이 믿음을 키워주는 것이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일으킨다는것

 

이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요즘의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갑자기 만난 진흙구덩이 였고, 그곳에 갑작스레 발을 딛은 나는 놀라고

 

당황했으며, 빠지면 안된다는 위급함에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

 

었다.

 

그러나 애를 쓰면  쓸수록 발은 더 빠지는 것이어서 그나마 나를 지탱하

 

고 있는  다른 한 발 마저 비틀거리면서 내 몸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하느님은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라는 억울함이 마음 저

 

아래에서 밀려 올라왔다.

 

그 옛날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리며 고

 

통을 받으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듯, 나 또한 왜?  도데체 왜? 라

 

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풀이 하고 있었다.

 

내 상황들은 사방이 벽에 둘러싸여 탈출구 없는 감옥과도 같이 나를 가

 

두었다.

 

시어머니와 시댁은 나를 몰라주고 나를 억울함과 분노의 벽으로 몰아가

 

고 있는 것 같았고

 

남편의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인 압박감은 불안과 초조함의 벽으로 내 앞

 

에 떡 버티고 서서 나를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막고 있었다.

 

사춘기의 딸아이는 제일 만만한 엄마인 나를 수시로 절망감의 벽으로 밀

 

어냈으며

 

내 몸의 갱년기는 이 모든 상황을 우울하게 받아들이면서 갑자기 불면증

 

으로 나를 가두어 버렸다.

 

사방이 새하얀 벽이구나.  난 이제 어디로 나가야 하는건가?

 

이런 고통 안에서 안절 부절 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나가고 있는 한 모

 

임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께서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다.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문자 메시지 였는데, 사실 그 당시 그 문자 메시지

 

는 나를 더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사랑?  지금은 사랑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닌데요. 

 

나는 지금 내 몸도 추스리기 힘든데, 누굴 사랑할까요?

 

아니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기는 하신단 말인가요?

 

내안에서 어떤 소리가 그렇게 속삭거렸다.

 

그래서 그냥 무시해 버렸다.  답장도 할 힘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문자가 날아왔다.

 

답장을 보냈다.   저 많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

 

요. 그런 답장을 보낸 건 일종의 용기였다.

 

사실 그분을 나의 고통에 동참시킬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내 경험으로 볼 때  내가 털어

 

놓은 고통들은 상대에 따라서는 그들을 더 힘들게 했고 그것이 그들과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른 고통과 아픔을 내게 주었으므로 또 다시 나는 이런 실수

 

를 되풀이하면 안된다고  굳게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하느님께만 말씀드려야 한다  몇번의 나의 실수와 아픈 경험들은 내게

 

그런 가르침을 주었다.

 

하느님만이 나의 상처를 치유할 힘이 있다는게 내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엔 내곁에 고통만 있을 뿐 하느님은 계시지 않았다.

 

곧바로  날아온 답장은 고통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믿으셔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날 더 힘들게 했다. 

 

뭘 믿으라는 건데요. 도데체.  하느님은 참 너무하시네요.  절 이제 그만

 

괴롭히시면 좋겠어요.

 

그만큼 아팠으면 이제  좀 편할 날도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더 아

 

파야 하나요?

 

또 다른 목소리가 내 귓속을 간지럽혔다.

 

또다시 문자가 날아왔고 사랑하는 안나 많이 기억할게요 가장 힘들 때

 

예수님 안나 곁에 계세요.

 

사랑?  사랑하는 안나?  조금 전까지 난 지금은 사랑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는   소리에 귀를 솔깃해 했으면서,  나에게 누군가 사랑하는 이라

 

는 형용사를 붙여 준 그 한 순간에  내 마음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묘한 일이었다.

 

다시 휴대폰이 울리고 난  이미 사랑이란 말에 무너져 있는터에 무슨 말

 

을 할 수도 없이 눈물만 흘렀고 울먹이기만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고통안에 더 크고 깊은 하느님의 사랑이 있음을 체험하시길 기도할게요.

 

정말 믿으셔야 해요. 그 분의 마지막 문자의 글귀

 

정말 이라는 말과 믿으셔야 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정말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어떤 강한 힘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네 믿을게요.  라고 대답하자

 

또 다른 조용하고도 여린 소리가 지나갔다.  다시 한번 믿어 볼게요.  믿

 

어 보지요 뭐 .

 

 

어머니를 모시고 평일 미사에 갔다.

 

미사가 끝나고 난 성당 레지오 회합을 하러 계단을 올라가고 어머니는

 

집으로 가시기 위해 계단을 내려 가시고 계셨다.

 

얼마 전 어머니와의 일련의 사건 후에 고백성사도 보고, 하느님께 나의

 

잘못을 말씀드리고 용서를 청하고 어머님과도 화해하였지만, 나의 감정

 

은 계단을 내려 가시는 어머니와 마주치기 싫어 하면서 어머니를 피했다

 

지금은 내 감정에 충실해야 해 . 너도 사람이야.  또 다시 어떤 소리가 내

 

귀에 속삭였다.

 

얼마 전 성당이 분가해서 시골 공소 같은 우리 성당의 불편한 길 때문에

 

승용차에 어르신들을 태워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다른 한 소리는 내 마

 

음 안에서 어머니를 차에 태워드려야 한다고 염치 없다는 듯 들릴 듯 말

 

듯한 여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두소리는 내 마음을 아주 잠깐 사이에 갈등하게 했다.

 

그 때 휴대폰이 경쾌하게 띵똥 하면서 나를 불렀다.

 

현 순간 하느님의 뜻을 구체화하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순간 나는 돌아섰고 조금 멀리 내려가시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불러

 

세웠으며,

 

급하게 뛰어내려갔다.

 

"어머니 잠깐 기다리세요." 

 

"안나, 지금 어디가?  "  아녜스 형님이 내게 물었고,  마침 빈차로  막 떠

 

나려는  아녜스 형님 남편의 차를 불러  세웠다.

 

어머님과 함께 미사에 오시던 어르신 3분까지 모두 태워드릴 수 있었다.

 

어르신들 모두 " 아이구 고마워요." 하신다.

 

그 이후로 내 마음 안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전의 공식대로라면 어머님의 뒷모습은 흔히들 말하는 시어머님의 뒷

 

꼭지만 봐도... 뭐 이런 공식으로 흘러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 뒷모습에는  호산나 하면서 자신을 환영했던 바로 그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님께서 함께 매달려 계셨다.

 

역지사지라는 것을 기억했다.

 

못 먹고 못입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가난한 시절의 어머님의 세월은 예전

 

에도 흔히 듣고 , 귀에 못 박히게 들은 상투적인 말들이었지만, 그 상투

 

적이고도 흔한 이야기들이 나에게 지금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

 

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내게 하느님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니까 부모니까 사랑을 해 드려야 한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때, 너 갑자기 천사라도 된거냐?  언제는 미워 죽더니만 지금은

 

사랑을 해드려? 라는 닭살돋는 듯한 머쓱한 소리가 내 고개를 갸웃거리

 

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순간은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쌍화차를 끓여 감기에 좋으니까 드시라고 하면 어머님은  과일을 갈아서

 

 내게 내미시면서 얼른 마셔라.  하신다.

 

얼마전 가스레인지 위의 기름 때를 닦았다.

 

그때 그때 닦으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매일 요리를 하며 더러

 

운 걸 쳐다 보면서도 저걸 닦아야 하는데 닦아야 하는데 하면서 시간만

 

지나갔다.

 

오래 오래 기름에 절어 눌러 붙은 기름때는

 

약품에 담그고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벌게지게 용을쓰면서 닦아

 

내야 했다.

 

닦고 나니  팔이 떨어질 만큼 아프고 어깨가 욱신거렸다.

 

어머니와 내 마음안에 오래 오래 쌓여 달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상처

 

의 딱지들이 이제 서서히 떨어지고 있음을 쌍화차와 과일쥬스가 말해주

 

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어머니가 담가 놓으신 깍두기를 보면서 ,20년을 함

 

께 살면서 한번도 제발로 성당가자고 나서주지 않던 남편이 함께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면서   왜? 라는 질문을 하느님께 수없이 던지던

 

내게 또 다른 작고 여린 소리가 지나갔다.

 

그들이 너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야.    버림받았던 내가 바로 그들안에

 

서 아파하고 있어. 

 

네가 힘든것 나에게 좀 나누어 다오 .  아니 나에게 내려 놓아라. 제발

 

네가 할 수 없어.  내가 해 줄게.  너는 그저 너의 잔을 나에게 내 밀어라.

 

내가 나의 사랑을 너에게 흘러 넘치도록 부어줄게.

 

그런데  네 마음의 잔이 너무 지저분한 것들로 꽉 차 있구나.

 

먼저 잔을 비워라.  그리고 좀 닦아 내거라. 

 

그래야 내가 너의 잔에 나의 사랑을 부어줄 수 있지 않겠니?

 

네 마음 안에 조금 남아있는 너의 그 사랑 부스러기를 딱딱 긁어 모아서

 

억지로 사랑하려고 안간힘 쓰지 말고, 너의 잔에서 흘러넘치는 나의 사

 

랑을 그들에게도 흘러가게 그냥 두려무나.

 

내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이며 절대 우연이 아니었으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께서는 물처럼 아무 맛도 없던 나를 포도주

 

로 변화 시켜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 주신

 

것이다.

 

아멘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게 지금 오십시오.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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