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식을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내동댕이쳐지게 마련이다. 반항아들은 늘 따돌림받고, 그래서 그들은 슬프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 사회에 내재된 수많은 의식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항상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상식이라는 것은 참 우스울 때가 많다. 상식은 별도의 고민 없이도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내면화되는 속성을 지녔지만, 막상 이것을 가만히 뜯어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줄 아는 사람의 판단력으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일례로 이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기묘한 상식 중 하나는 '우리 한국인은 반드시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만 도덕적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한국인은 반드시 누군가를 폄하할 때에만 바른 역사의식을 갖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철통같이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물론 20세기 일본 군국주의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라는 복합적 집단을 편협한 일부 가치기준의 잣대질을 통해서만 평가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고, 37만 평방km의 땅에서 2천년간 이루어온 인간의 총체적인 삶의 모습, 그 면면히 이어내려온 역사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 자체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과도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 세상에 선물한 무한한 상상력과 미(美)적 역량,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전통을 아름답게 꼴지워낸 특유의 문학적 즉물성, 그리고 그들이 아시아 세계에 제시한 성공적인 근대성 이식 모델은 실로 소중한 것이다. 허나 그런 것을 다 차치하고라도 1억 2천만의 인민이 이루어나가는 삶의 공간 그 자체로서 일본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 일본을, 1억 2천만에 달하는 일본인 전국민을 전범 조상의 더러운 피를 타고난 후손으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변태적 성행위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즐기는 인간 쓰레기들로, 인륜과 예(禮)를 모르고 살아가는 섬나라 오랑캐 원숭이 떼 정도로 도배질하고 매도하고 비아냥대고 언어의 폭력으로 박해해야만 전격적으로 '진정한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이 빌어먹을 상식에, 이 따위 상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참으로 무수히 욕을 먹고 나가떨어졌다.
한국은 세계의 일부가 아닌가? 한국이 공히 세계의 일부라면, 한국시민은 자연히 세계시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가지 명명백백한 사실은 한국인으로서 세계시민이 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반도 너머의 외계에서, 참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의 상식을 통용해달라고 어거지로 떼를 쓰다가 비웃음을 받으며 비참하게 세계사회의 변방으로 추방당해왔다.
한국인의 당당한(?) 일본조롱이, 사실은 역사적 컴플렉스로 인한 수치스러운 집단적 정신 외상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얼굴들을 마주한 나는 일종의 정신착란증세를 느낀다. 과공(過恭)을 거두고 말하자면 그들은 미친놈이다. 그리고 나는 미친놈들 틈새에서 나 스스로도 미친놈이 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전부 미친놈이고 나 혼자 제정신이라면 과연 나만 제정신인 것인가, 아니면 나만 미친 것인가. 최소한의 판단능력마저 상실한 더러운 편가르기에 합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국노' 운운하는 불쾌한 독설의 창끝에 찔리고 저주의 몽둥이에 얻어맞아야 한다면, 과연 이 따위 사회에서 나는 계속 살아갈 수나 있을 것인가.
모르기는 몰라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 같았으면 이 대목 쯤에서 담배 한 까치를 입에 물었을 것 같다.